'가까운 관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측정법
스스로 생각하길 나는 누군가에게 내 곁을 쉬 내주는 편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내 기준에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 낯선 사람과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금세 친근해지지만 내 안에서 그를 ‘친한 친구’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물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초면에 나눈 즐거운 대화들을 생각하고 금세 ‘친한 친구 관계’가 되었다고 판단한 상대방에게 ‘너는 나만큼 많은 비밀을 공유하지 않아 섭섭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사실 그럴 정도로 비밀이 많지도 않다). 게다가 친하다는 개념을 무언가 ‘항상 같이 해야 한다’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약간의 ‘배려있는 거리감’이 친밀함을 더 오래 지속시켜준다고 믿기에. 결혼 전에는 (직업적인 특성도 있었지만) 초면의 편안함을 무기로 남다른 인맥을 자랑한 터. 그럼에도 지금 와서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지인은 열 손가락 겨우 꼽는다. 그러나 그만큼 오랜 기간을 보아온 사람이기에 (처음 몇 번의 만남으로 상대를 단정 짓고 판단할 수 있는 초능력 또한 없기에) 그들과의 믿음과 유대감은 누구보다 두터운 편이라 믿는다. 그 대표적인 사람에는 남편도 들어있을 터. 장장 9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배우자가 된 남자 친구. 가끔은 ‘불같은 사랑’이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미열에 달구어진 냄비처럼 다져진 서로 간의 정은 그 못지않게 크다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서로 간의 믿음이 바탕되었기에 이제껏 결혼 생활 또한 큰 탈없이 평온하게 지속되지 않았을까.
“오늘 저녁에는 아빠랑 영화 보러 갈까.”
일주일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남편이 점심 무렵 깜짝 제안을 한다. 당연히 대 찬성. 저녁 전분터 마실 채비를 하느라 분주한 아이들.
“자기야 저녁까지 먹고 올 테니까 저녁시간 조용히 보내. 동네 언니들이라도 불러서 밥이라도 먹으러 가던지. 그리고 ‘존버!’”
피식 웃음이 난다. 아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주워 들어가지고.
낮에는 일한다고, 그리고 밤에는 공부한다고 그리 호들갑을 떨었건만 민망하게도 대학원 시험을 홀딱 망쳤다. 한숨을 이리 쉬고 저리 쉬고. 이를 본 남편의 ‘배려 어린 나름의 위안’ 이리라. 살가운 말로 남부러움을 사는 로맨틱 가이는 아니지만 처음 만난 그때의 그대로 무심한 듯이 챙겨주는 그만의 마음 씀씀이에 다시금 고마움이 밀려온다. 역시 오래 달궈진 열은 식는데도 오래 걸리는 법. 이 같은 서로에 대한 마음이 오래 지속되도록 나 역시 작은 배려심들로 종종 그 냄비를 다시 달궈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세상 누구보다 내 가까이에 있는 고마운 존재이기에 (그 사실을 종종 잊는다는 게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