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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Dec 14. 2021

포르투

포르투에 도착한 건 점심시간을 좀 지난 뒤였다. 리스본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서 전철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 정도 가면 상벤투 sao bento 역이 나온다. 역에 내려 대합실로 나오니 여기가 포르투갈이라 소리치는듯한 아줄레주 타일 장식이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줄레주를 스쳐 지나가며 카톡을 보냈다. "저는 이제 도착했어요."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나처럼 여러 번 포르투에 온다는 누군가와 연락하기로 했었다. 자세한 정보가 없었지만 카톡 프로필을 보니 은근히 괜찮아 보여서 조금 기대 되었다. 답장이 왔다. "제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이따가 한 1시간쯤 뒤에 전화드릴게요." 얼굴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전화를 주겠다는 것은 뭐.


1시간 뒤 정말 전화가 왔다. 서로 전화번호를 모르니 보이스톡으로. "아 예 안녕하세요. 제가 그 여행 카페에서......" 뭔가 쭈뼛대는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대본이라도 읽듯이 유려하게 얘기했다. "제가 교수님들을 돕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제가 없으면 일을 못해서 이렇게 해외에 나와서도 뭘 해줘야 한답니다. 어디쯤에 계시다고요? 아! 거기요,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9월의 포르투는 아직 늦여름이었다. 아줄레주 빛깔인 파란색이 더해진 스트라이프 무늬에 어깨와 치맛자락이 공주처럼 풍성한 스타일의 원피스, 조금만 일렀어도 무더위에 더 간결한 차림이 되었어야 하고 조금만 늦었다면 옷을 몇 겹 더 입는 차분한 차림이 되었어야 했을, 그런 옷차림에 다소 지나치기 직전의 화장을 한 그녀에겐 포르투의 9월은 탁월한 시기였다. "에그타르트부터 먹을까요? 리스본에 거기도 맛있다지만 저는 여기가 더 맛있더라고요." "그래요." "그나저나 저기 보이는 저 건물이......" "저도 한 번 와 봤거든요, 어지간하면 알아요."



그녀와 나는 이틀 동안 그리 한참을 돌아다녔다.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에는 와인을 마셨다.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그린 와인 vinho verde부터 일반적인 화이트, 레드 와인도 마시고, 포르투에 갔으니 포트 와인까지 맛을 야 했다. 공원이나 식당에서도 마시고 먹거리를 챙겨서 숙소에서도 마셨다. 술을 마시니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한참을 말했고 별 거 아닌 일에도 박장대소했다.


마지막 날, 이제 더 이상 돌아다닐 곳이 있을까 싶어 물었다. "포르투 와서 저쪽 바다에 가보셨어요?" "그런데도 가나요?" "안 가보셨어요? 은근히 괜찮아요." 관광객들만 타는 1번 트램을 타고, 지겹도록 보이는 도우루 Douro 강가를 따라 바다로 달렸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았는데 트램이 속도를 더할수록 원피스 옷자락이 나풀거렸다. 앞쪽에서 바람에 날린 그녀의 향수 냄새코 끝을 스칠 무렵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후 그녀는 그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해두고 몇 년 동안 바꾸지 않았다. 그 사진이 유독 마음에 든 것일까, 아니면 어떤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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