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가던 도중 베로나에 들렸다. 베로나에서 자고 갈 계획은 아니라서 커다란 배낭을 기차역 짐 보관소에 넣고 조금 가벼운 걸음으로 나섰다. 베로나는 아주 작은 곳이라 특별한 관광명소는 없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훌륭한 작품 하나는 나 같은 관광객들을 영원히 베로나로 오게 만든다.
'아레나'로 불리는 원형경기장 앞 광장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넉넉하지 않은 배낭여행객은 스파게티 한 그릇만 시켜 알뜰하게 먹었다. 스파게티 이후 메인 요리를 먹어야 한다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생략했다. 적어도 음료는 시켜야 매너가 있어, 라던 누군가의 조언대로 어글리 코리안을 면하려 콜라는 한 잔 시켰다.
스파게티는 약 0.5인분 정도로 적은 양이었다. 맛집을 찾아 들어갔던 것도 아니어서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다만 이렇게 양도 적다니. 번개처럼 해치우고 미련 없이 일어서 '줄리엣의 집'으로 향했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배경이 된 이곳은 언제부터 줄리엣의 집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집을 정책적으로 줄리엣의 집이라 정해 놓았다. 허구의 인물이 살던 집인 주제에 입장료까지 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않을 관광객은 드물다.
줄리엣의 집 한쪽에 연인들이 이름을 쓰고 굳게 닫아놓은 자물쇠를 봤다. 아마 저 연인들 거의 전부는 지금 헤어졌을걸? 통계상 그렇겠지, 언젠가 남산에서도 같은 목적의 자물쇠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영원한 것은 없는 걸까. 영원을 약속하고 결혼까지 골인해도 유한한 인생을거스를 수는 없다. 언젠가 헤어지나 그 언제를 알 수 없다. 때로는 오늘이 마지막 만남인 줄 모른 채로 흩어지는 일도 있다.
짧게 피고 지는 벚꽃을 보며 말했다. "가장 좋은 시간은 길지 않아. 그래서 가장 좋은 시간을 가장 좋게 보낼 수 있어야 해." 가장 좋은 시간이 길어지도록,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아낌없이 보낼 수 있도록, 언젠가는 헤어질 운명이라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