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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Apr 23. 2020

비수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성수기와 비수기를 신경 쓰게 된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중간은 없는가. '평상 시' 정도가 중간에 위치할 수 있다. 다만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신경 쓰는 것은 성수기 여부이지, 비수기와 평상 시를 굳이 나누지는 않는다. 성수기는 매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미리 정해져 있다. 직장인의 여름휴가가 집중된 7월 말과 8월 초, 이른바 홀리데이 시즌이라는 12월과 1월 초 정도이다. 넓게 보면 학생들의 방학 시즌도 성수기에 들어가는데 앞서 말한 여름, 겨울의 두 기간은 극성수기라 하여 굳이 한 번 더 구분을 한다. 아마도 더 비싸게 받기 위해서다. 그 외 매년 공휴일에 따라 황금연휴라고 하여 변동하는 성수기가 있다.


나는 비수기 여행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잠깐 의문이 들었으나 경험했던 빈도로 볼 때 비수기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홀로 떠남에 있어 비수기는 대접받는 시기이다. 성수기 붐비는 식당에서는 혼자 여행객을 반기지 못한다. 마음이 그렇다면 친절을 꾸며낸들 뜨뜻미지근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친절하지도 않다면 박대까지 당한다. 몇 차례 그런 경험이 있다면 성수기를 조심하게 된다. 그런데 인터넷을 실컷 찾아보고 들어간 유명 관광지 식당 아무도 없을 때, 몇 달 전 예약이 필수이던 관광지에 예약 없이 들어갈 때, 갈 길을 고민하지 않아도 교통과 숙소가 모두 여유 있을 때, 그럴 때 나는 비수기를 직감한다.


성수기 해수욕장에 헐벗은 인파들로 가득할 때 나는 먼발치에서 갈 길을 조용히 떠난다. 제주도 올레길은 일부러 그리 만들었는지 루트를 돌리고 돌려 인기 관광지를 여럿 지난다. 챙이 넓은 모자와 팔토시 등 몸을 단단히 싸맨 내 모습은 헐벗은 인파들의 꼴과 달라 머쓱하다. 반면 비수기에 같은 곳을 지날 땐 마음이 편안하다. 아무도 없는 해변 중심을 거닐며 그저 수평선을 바라만 보는 게 그 주변 제일 기운 넘치는 활동.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 되는 비수기에는 마음도 편해진다. 저들처럼 물속으로 들어가 봐야 되지 않을까, 파라솔을 펴고 햇볕을 쐬며 머물러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비수기의 한 때.


삶에도 비수기가 있을까.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그런 시기. 그런 때가 있다면 그저 조용히 지나가려 한다. 나 좀 보세요 소리치며 팔을 쭉쭉 펴본들 좋은 시절이 찾아올까. 평소 하지 못했던 일을 해 보자. 좋은 재료를 준비해 식사를 만들기도 하고, 조금 한가한 시간에 한강 둔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무작정 삼겹살 집에 들어가 2인분을 시켜 소주를 한 잔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쓸쓸하고 외로운 심사는 어쩔 수 없어라. 비수기를 잔뜩 이야기하고 성수기를 바라는 건 어떤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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