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강쥐 Jun 14. 2023

사촌들과 놀던 여름 밤이 그리워요

30살, 퇴근 후 사촌동생을 만난 저녁


어린 시절에는 종종 할머니와 고모가 사는 양재동에서 사촌들과 함께 놀곤했는데, 특히 다운언니와 보라언니와 자주 놀았다. 정확히는 언니들이 나를 놀아줬다. 우리는 요즘 같은 여름밤이면 속옷만 입은 채 침대에 가로로 누워 길게 자란 머리를 밑으로 늘어뜨려 그사이 누구 머리가 더 자랐는지 재봤고, 얼굴에는 오이를 붙인 채 누가 더 예쁜지 이야기했다. 그 시절 어린 여자애인 우리들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되겠네"라거나 "나중에 일찍 시집가겠다"였기 때문에, 우리는 '더' 예뻐지기 위해 함께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로 목욕을 했고, 코를 손으로 잡아 세웠다. 언니들은 몰래 훔친 엄마들의 파우더로 내 속눈썹까지 두드려주며 '신부화장'을 해줬다.


그러다 예뻐지는 게 지겨워질 때면 그녀들은 이불 속에서 내 손을 잡아주고 여고괴담 시리즈와 주온 등을 보여줬고, 밤 12시가 되면 운동장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칼의 위치가 바뀐다는 등의 학교 전설을 들려줬다. 공포영화뿐 아니라 교양도 쌓았다. 우리는 사운더 오브 뮤직을 보며 함께 노래를 불렀고, 나홀로집을 보며 미국 문화를 익혔다. 날이 좋을 때는 돗자리를 가지고 나가 양재동 근린공원에서 우유에 죠리퐁을 말아먹었고, 피구와 탈출을 했다. 밖에 나가지 못했을 때는 집에서 미미와 제니와 함께 인형놀이를 하거나, 역할극 놀이를 했다. 가끔은 노래방에 가서 컨츄리꼬꼬, 클론, 이정현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언니들에게 인생 첫 경험에 대해 엄청난 것을 겪은 듯이 공유하곤 했는데 "이제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거나 "바이엘을 끝내고 피아노 체르니 100번에 들어갔다"라거나, "우리 학교에 어떤 애는 미국에서 살다 왔는데 미국은 2학기가 1학기더라"등의 이야기였다.


그러는 사이 세월을 흘렀고 우리는 모두 직장인이 됐다. 2호는 아직도 hotmail을 쓰는 여행사의 김차장이 됐고, 3호는 기자가, 4호는 1년에 한 달은 베트남에 출장을 가있는 대기업 책임님이,  6호는 여초라는 한 대기업 보험사에서 엑셀을 다루는 마케터가, 7호는 세계적인 공유 오피스의 일잘러가 됐다. 양재동 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8호는 해병대가, 9호는 대학생이, 10호는 고등학생이 됐다. 그리고 나는 기자를 그만두고, 간 스타트업에서 누구 말에 따르면 "이것저것"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다.


세월은 흘러 미스코리아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끔 서로의 얼굴을 화장해준다. 5살부터 받았던 신부화장은 여전히 그 누구도 실전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종종 애인을 소개시켜주고, 피구 대신에 함께 술을 마시며, 여고괴담 대신 오징어게임을 같이 본다. 인생의 첫 경험을 공유하기에 너무 바빠져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끔은 삶을 공유한다.


오늘은 퇴근 후 회사 앞 을지로에서 7호인 한글이와 초여름 밤바람을 맞으며,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공유했고 문득 양재동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일상의 중요하고도 일상적인 시시콜콜함을 알려줬던 1호가 보고 싶어졌다. 엄청 많이. 언니가 새삼스럽게 너무 너무 너무 그리워지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10번 출근 뒤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