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의 교통사고를 수습하다

오지랖의 나이가 시작된 것인가

by 그냥 해

매주 토요일 3-6시에 양재천에 있는 실외코트에서 테니스를 친다.

86년생부터 65년생 기자부터 교수, 의사, 평범한 직장인으로 구성된 이들이

쉬엄쉬엄 랠리도 하고 게임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고... 물론 게임에서 이기면 더 기분이 좋고!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어제도 시간맞춰 나가느라 차를 몰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우리 아파트로 말할 것 같으면 30년이 넘은 구축 단지인 데다가 주민들의 차량은

빼곡하고 옆단지 차량까지 1차선 출구 양쪽에 꽉 차있는 탓에 나가는 길이 매우 험난하다.

나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올 때 나가는 차량이 보이면 입구에서 기다리는 편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책없이(혹은 예의없이) 밀고 들어온다.

어제도 그랬다. 하얀 렉서스 해치백이 밀고 들어오니 뒤로 두세대가 밀고 들어온다.

내 차 뒤에도 두세대가 서서 나를 따르고 있다.

이걸 어쩌나 생각하는 찰나 팔순은 족히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나타나시더니 (렉서스 차량의

동행이었음) 나더러 후진을 하란다. 후진이 불가능한데요.

제가 왼쪽 주차장길로 잠시 빠지면 될 것 같으니 일단

왼쪽에서 나가려는 트럭더러 후진해서 잠시 저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 말했다.

할머니는 돌아갔고 나는 왼쪽으로 차를 잠시 돌리던 중이었는데

백미러로 보니 어느 순간 할머니가 도로에 자빠져 계신다.

어제 뭐지? 할머니가 본인 동행의 차에 치이신 것 같다.

마스크도 못 낀 상태로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운전자도 렉서스에서 내리셨는데 이 분 또한 호호 할머니다. 이런 할머니가 운전을 하다니.

두 할머니는 서로 어떡하냐며 울고 불고...

보아하니 교통정리하시던 할머니가 아주 살짝 차에 받혀서 넘어지신 모양.

다행히도 차에 치이신 건 아니다.


길바닥에 누우신 할머니가 자꾸 일어나시겠다는데 어디가 골절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건 영 아닌 듯 하다. 만류를 하면서 일단 119에 신고를 했다.

그 사이 일방통행 아파트 출입구는 난리가 나고 차량은 빵빵대고

주민들은 나와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어떤 주민 아저씨는 자꾸 막무가내로 할머니를 일으키라고 잔소리하고...

다가와 궁금해하는 분들에게는 "저는 손녀가 아니라(딸이라고 했어야 마땅하거늘..) 그냥 지나가는 주민이에요"라고 몇번을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119 구급대원이 전화를 한다.

사고당하신 분이 혹시 코로나 중세가 있냔다. 발열이나 기침.

아니~ 그럼 증세가 있으면 안올껀가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할머니에게 물어봤고

흥분한 할머니는 그런 거 없다신다. 나도 마스크를 끼고, 내 차를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돌아왔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있을 수는 있는 상태셨다.

하지만 발자국을 못떼신다.

사고당한 할머니는 우리 아파트에 사신단다. 저도 여기 살아요.

운전자 할머니는 근처에 사신단다.

두 분은 탈북민을 위한 김장 담그기에 참석했다가 탈북민에게 나눠줄 김치를 싣고

오는 길이란다. 내 절친 하나도 탈북민이기에 나도 모르게 이분들에게 더 끌렸다.

사고당한 할머니를 "감사님"이라고 부르던 운전자 할머니는

("집사"를 잘못 들었나 몇번이고 다시 속으로 확인해봤지만 분명 "감사님"이라고 발음하심)

"아휴~~ 우리가 좋은 일 하려다 이게 왠일이래!!!" 라며 연신 통곡을 하신다.

이윽고 경찰차와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할머니들을 인계했다.

신고자이자 목격자인 나에게 정황을 물어보진 않고 그 정신없는 할머니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시더라. 이게 과연 옳은 방법일까 생각했다.

못걷겠다는 할머니더러 자꾸 걸어보라고 한다. 내가 "못걸으시겠대요"라고 하니

구급대원 하나가 나를 심하게 야리면서 "제가 알아서 할께요"라고 하더라.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건 또 뭔 태도인가.

암튼 앞뒤로 차들은 막혀있고 일단 렉서스가 한쪽으로 빠져야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질 것 같으니

경찰이 운전자 할머니더러 차를 움직여달라고 주문을 하는데 할머니는 나더러 차를 빼달라고 하고

나는 보험이 없어 할머니 차를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하고... 실랑이 끝에 할머니가 차를 잘 대심.

뭔가 정신력 갑 인텔리 할머니구나 싶다.

주민번호를 대시는 걸 보니 44년생이다. 울엄마가 48년생, 울아빠가 45년생인데...

내게 할머니가 아니다. 아줌마라 불러야 옳긴 할텐데... 아직도 나도 내 나이에 대한 자각이 쉽지 않다. 내가 나이든 것도 모르고 이런 할머니들을 보면 20년쯤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같이 느껴진다. 울엄마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렇게 늙어보일까 생각했다. 울엄마는 손주도 없는데... 아직 할미도 아닌데 ㅠㅠ (미안. 손주 못낳아줘서)

이제 어느 정도 수습이 되는 분위기라 할머니들한테 인사는 과김히 스킵하고 테니스장으로 나섰다.

괜히 연락처를 달라고 하시면 양쪽이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운전을 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타인의 불행에 대해 안타까워는 하지만 행동까지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나이먹은 탓이려니. 엄마를 닮아가는 것이려니.

울엄마는 길가다가도 불쌍한 사람을 보면 못지나친다. 캄보디아 여행 가서도 불쌍한 아이들에게

신발 모자 다 벗어주고 온 사람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들에게 마음이 더 갔던 이유가 있다.

팔순이 가까운 연세임에도 일방통행 도로에 나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교통정리를 하는 씩씩함.

집에서 가만히 있기보다 본인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남은 인생을 보내기로 한 선택.

젊어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본인이 속한 단체에서 적극성을 발휘하셨을 것임이 분명하다.

나의 40년 후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내가 추구하는 노년의 삶도 그러하기에.


본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 않는가?

내 오른손이 한 일을 자랑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해본 적극적인 오지랖을.



작가의 이전글(너무나도 식상하지만) 퇴사 결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