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서야 알게 된 구립 도서관의 존재

by 그냥 해

아무래도 도곡 정보문화도서관에 Lauren Weisberger의 “Devil wears Prada” 류의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자꾸 이런 책들을 신청하는 모양이다. 군데 군데 꽂힌 책들을 보면서 피식 미소가 흘러 나왔다. (#jenniferweiner #mrseverything #kevinkwan #crazyrichasians #wednesdaymartin #primatesofparkavenue) 예전엔 이런 책들을 제법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시들해졌다. 하지만 목록은 여전히 꾀고 있음. 나름 NYT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니까…

지난 20년간 한달에 최소 서너권의 책은 사모았고 그 중 한두권은 읽어왔는데(쟁여두면 언젠가 읽는다는 게 나의 지론. 옷 사모으듯 책 사는 게 일상의 즐거움이었음) 천장에 가득 닿는 데다가 거실 한 벽면을 차지하는 책장 두 채가 책으로 가득 차자 결국 부모님댁에 책과 함께 통으로 보내버린 이후로는 책을 사기보다 ebook을 읽거나 빌려보는 것에 나를 적응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빌려온 책에 인상깊은 대목이 등장할 때마다 평소 하듯 밑줄을 긋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담배를 끊은 사람처럼 금단현상을 애써 참는 나날이다.

회사를 나와 시간이 많아지면서 처음 알게된 존재가 바로 구립도서관이다. 강남구에만 해도 27개의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다. 놀라운 숫자다. 구립도서관 모바일 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읽고 싶은 신간과 내가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곳을 골랐는데 바로 그곳이 도곡 정보문화도서관. 매봉역이라 우리집에서 자전거 타고 15분은 광란의 페달질을 해야 도착할 수 있지만 거의 교보문고 수준으로 소장 도서의 종류가 많은 데다가 외서조차도 신청하면 바로 들여와 문자로 알려주는 아주 기특한 곳이다.

오늘은 내가 신청해서 어떤 이의 손길도 채 닿지 않은 Walter Isaacson의 “Invent & Wander”와 윤가은 영화감독의(“우리들” “우리집” 등 한국 영화계의 안데르센이랄까) “호호호,” 그리고 최근에 유럽 가는 비행기에서 단숨에 읽어버린 “동해생활” 에세이집 작가 송지현의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빌렸다. 오늘밤부터 시작될 것 같은 열대야에 걸맞는 책 리스트라고 자평해 본다. 어릴 땐 봄 가을이 좋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강렬하고 명징한 여름이 좋다. 올해 여름엔 열심히 독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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