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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조하 May 17. 2023

부산여행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부산이 여행이였지만 너에게는 일상이었다. 너는 나에게 공감하지 못했고 나는 그런 너와의 여행에 공허함을 느꼈다.


밥을 먹을땐 너가 찾아보지 않을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렇다고 아무곳이나 가기는 내 자존심이 상해서 이런저런 맛집을 예약하는게 원래 내 성격인척을 했다.

그러다 사실 맛집 예약을 자주 해본적이없는 내가, 제대로 예약하지 못한 식당에 도착해서 당황을 했고, 그걸 보면서 속도 없이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너가 나는 야속했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 야속하고 공허했다면 너를 더 쉽게 도려낼 수 있었을텐데

수업에 끝나서 피곤한데도 나랑 밤바다를 봐준 너에게 다정함을 느꼈고, 지하철에서 내가 졸려서 그냥 잠들어버리면, 그런 내가 깰까봐 너가 더 졸림에도 어깨를 움직이지도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모습에 나는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다. 너는 무심한 표정과 다른 섬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동기모임에 가서, 장거리에 공부하고있는 너얘기를 하자 2달안에 헤어질거라는 동기의 말에 너무 화가 났던적도 있다. 그날 그 말을 들으면 누구보다 속상해 할 사람이 너라는걸 알았지만 나는 화가 난 내 마음을 먼저 풀어야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너에게 다 털어놓았다. 너는 그런말을 들어서 기분이 상했을 나를 걱정했다.


사랑도 받아본 경험이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는것 처럼, 너가 누군가와 한번쯤 오랜기간 사랑한 경험이 있다는걸 어렴풋이 알았다. 너의 사랑은 뜨겁지는 않았지만 따뜻했고, 책임감이 어려있었다.


나는 너도 관계에서 사랑을 받아온 쪽이라고 생각했다. 배려많고 다정한 상대에게 받는 사랑을 해왔을거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아가 강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지 못하고 싸움이 일어나면 회피하고 외면하며 문제를 피해만 갔다.


빗겨가는 너와 나의 관계속에 방관한 3월과 4월에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너를 이해하려고 미친듯 공부를 해보기도 하고 운동을 해보면서 스케줄표를 가득채웠다.

그치만 너에게 나의 불안함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 날은 속절없이 상처를 받았다. 너는 말을 뱉어놓고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게 갖는 너의 의무감을 알아 그냥 내버려뒀다.


너가 시험기간이 되면서 점점 연락이 되지 않았다. 상처를 받은 상태로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험이 끝날때까지 나는 우리의 이별을 유예했다. 시험이 끝났고,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질 때 너는 나에게 마음을 굳힌거냐고 물어봤다. 어그러지는 관계를 우리가 함께 방관한지 한달이 넘었는데 나한테 마음을 굳혔냐니.

나는 대답을 피하고 지금 나는 이 전화를 건 것만으로 내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를 낸거라고 말했다.

이별에 아파할 내가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내가 이 관계의 서운함들을 언급하면 식어버릴 네가 더 무서웠다. 너는 갈등을 회피해야 사랑이 유지되고 나는 갈등을 피하면 시들어가는 사람이였으니까.


그냥 그때 나는 너와의 갈등 하나에도 관계의 끝을 생각할만큼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굳이 대답하자면 나는 끝까지 너와의 이별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너와 같은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 날 붙잡지 않을걸 안다. 관계의 끈을 놓는건 20대 초반처럼 번복하지 못한다는걸 난 어쩌면 너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너는 너의 상황에 나를 끌여들여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만남에서 너의 상황은 나에게 한톨의 영향도 주지않았음을 너는 몰랐다. 너는 나를 정말 하나도 몰랐구나.

어렴풋 자신의 늦은 연락에 헤어짐을 예상했었다는 너는 미안하고 그냥 지쳐보였다. 그런 너가 너무 버거워 보여서, 이별의 진짜 이유를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듯 해서, 나는 너의 그 변명들을 정정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이별에 취약한 사람이라는걸 알고있다. 알았음에도 너무 힘들었다. 정신을 놓고있다가 시재사고가 날까봐 회사에 휴가를 내고 친구들도 피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맺는 관계는 20대 초반보다 더 깊이가 생겼는데 왜 이별에 속시원하게 울어버리는건 더 창피한건지 모르겠다. 친구들한테 슬프다고 말하는게 창피할정도로 나는 이번 연애에 상처를 받았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면 한순간에 터져버리는 나를 알아서, 혹여나 그 터지는 감정들을 너에게 전하게 될까봐  그냥 마음편히 슬퍼했다. 그러니 좀 나아졌다.

너랑 짧게 만나서 다행이라 느꼈다. 다정한 너를 짧게 느끼고 미화할 추억이 적어서 오히려 좀 나았다.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라는 말에서 미안해도 내 대사가 아니고, 더 잘할게도 내 몫이 아니였다. 이럴땐 내가 연락하는게 말이 안된다는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행복했고 원망스러웠고 힘들었고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다. 일주일동안 그냥 온전히 슬퍼했더니 일주일이 아깝지않을만큼 딱 괜찮아졌다. 저녁은 맛있는 케잌이나 먹으러 카페나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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