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봄 Jul 17. 2023

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널 위해 숨 쉬고 있을게 #4

진주는 마음이 답답하거나 어머니가 그리워질 때면 망양정을 찾았다. 망양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자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진주는 급하게 나온다고 맨발이었다. 발은 상처투성이었다. 순간 서러움이 더 복받쳐 눈앞이 흐려지며 아득해졌다. 한참 울고 나니 발 앞에 다홍색의 새 운동화가 놓여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니 소년이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주는 못 본 척 정자에서 내려오려는데 소년이 진주의 손을 잡았다. 손을 뿌리치려니 소년의 힘이 더 세게 가해졌다.  

- 아파.  


  소년은 무릎을 꿇더니 맨발인 진주의 발을 털어내고 신발을 조심스럽게 신겼다. 진주는 소년의 행동에 부끄럽긴 했지만, 자신을 바라봐주는 소년이 밉지 않았다.  

-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 나도 여기 자주 오는데, 그럴 때면 네가 여기서 넋 놓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더라. 난 그런 너를 바라보다 돌아가곤 했지.   

  두 사람은 다시 정자로 올라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말없이 바라봤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바다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두 사람은 부쩍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 여긴 올 때마다 너무 아름다워서 말을 잊게 해. 괜히 관동팔경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 말론 월송정도 관동팔경 중 하난데 그곳 경치도 무척 아름답대.  

- 나도 들었어. 평해 쪽에 가면 월송리 바닷가에 월송정이라고 있대. 비가 오고 난 후 맑게 갠 밤에 달빛이 소나무 그늘에 비칠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더라.  

-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 집을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 그런 집은 지어서 뭐 하게?

- 뭐 하긴 너와 같이 살고 싶어서 그러지.  

  진주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망양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월송정을 상상했다. 월송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솔숲 위로 바닷물이 넘실거린다는데, 이곳이 망양정인지, 월송정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진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재문과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하지만 그러다 바라본 재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진주를 불러 보따리를 내놓으며 재문을 따라나서라고 했다. 진주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재문을 따라나섰다. 몇 걸음 앞서 걷던 재문은 가끔 뒤돌아보며 진주를 기다렸다가 얼굴을 마주하면 미소만 지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기 했지만 그곳이 어디든 재문과 함께 간다는 것이 진주에게는 더 중요했다. 굽이굽이 계곡과 어우러진 기암바위를 보고 진주는 감탄했다. 그럴 때면 재문은 쉬어가자며 계곡 주변 풍경을 함께 바라봤다.


재문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불영사 계곡이라는 곳인데 특이한 모양의 암석들이 어우러져 자꾸 쉬어가게 된다고 했다. 진주에게는 그저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쉬엄쉬엄 걸어가며 다다른 곳은 불영사였다. 의상대사가 절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해 천축산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앞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아홉 마리 용을 주문으로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구룡사라고 불리었는데 그 후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 그림자가 절 연못에 비친다고 하여 불영사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절로 들어가는 길에는 붉은 줄기의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마치 소나무가 절을 호위하는 듯했다. 재문은 진주와 대웅전에 들어서 아버지가 주신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 안에는 술과 과일, 떡이 있었다. 재문이 상을 차리더니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진주는 재문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제를 올리고 난 후 절 마당에 나와 연못을 보며 재문이 말했다.


-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곳이야. 내가 열 살 때쯤 두 분이 돌아가셨는데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아.  

그러더니 재문은 광목 손수건을 꺼내 펼치더니 그 안에 있는 은반지를 진주에게 건넸다.  

- 어머니께서  남기신 건데, 네게 주고 싶어.  

- 이렇게 귀한 걸? 내가 받아도 돼?

- 응. 그래서 오늘 부모님께 너를 소개한 거야. 이번에 봉화에 다녀오면 정식으로 청혼할게.

재문은 진주의 손가락에 은반지를 끼워줬다.  

- 실은 나.....이번엔 좀 오래 걸릴 것 같아.  

- 건강하게만 돌아와. 나는 늘 여기 있으니까.  

  재문이 진주를 가슴에 안고는 등만 토닥토닥거렸다. 진주는 그 품이 따듯해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재문이 봉화로 떠났다. 대개 3박 4일 정도면 돌아오곤 했는데 그 시간이 기약이 없을 줄은 몰랐다. 서너 달이 지나도 재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고, 아버지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난 놈을 왜 기다려.  

  아버지는 진주의 짝으로 재문을 생각했다. 재문이 일도 잘했지만 아들처럼 아버지에게도 믿음을 줬기 때문이다. 아버지 대신 가장이기도 했는데 돌아오지 않으니 진주네는 당장 먹고 살일이 걱정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는 입에 풀칠을 위해 서울로 가자했다. 혹시나 재문의 안부를 알까 진주는 장이 서는 곳마다 찾아갔다. 겁이 나긴 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 없어서 십이령을 넘어 봉화장에도 가보았지만 재문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울진과 봉화를 오가는 선질꾼이며, 주막에서도 재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재문이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절망에 빠진 진주를 지켜볼 수만 없었던 아버지는 진주를 끌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 진주도 재문을 잊고 살려고 했지만 그리움이 분노가 되어 틈만 나면 울진으로 내려와 재문의 흔적을 묻고 다녔다. 매번 허탕이었다. 진주는 그제야 재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저 선질꾼, 바지게꾼 주재문이 진주가 아는 전부였다.  



 =========>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