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 성장기

눈물의 첫 라디오 오프닝 쓰기

by 봄봄

누구나 한 번쯤 라디오 오프닝에 마음이 끌려 라디오의 매력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라디오 작가만 할 수 있다면 말장난 같은 오프닝쯤은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감성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터라 말랑말랑하게 쓰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면서 라디오 작가를 하게 되는 일이 있을까? 라며 막연하게 동경만 했는데, 늦은 나이에 나는 지방 방송국에서 데일리 FM 라디오 프로그램의 담당 작가가 됐다. 하고 싶었던 일,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니 당연히 가슴은 벅찼고,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글들을 써내리라 다짐하며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첫 방송을 앞두고 나는 밤을 새웠음에도 단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라디오로 들었을 땐,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들을 1분 내외로 담아내 만만하게만 봤는데, 막상 글로 옮기고 보니 당최 맛도 없고, 멋도 없었다.


필력도 없으면서 오프닝을 쉽게 봤던 것이다. 막상 내 손으로 쓰려고 하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나 느낌, 일상을 글로 표현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감성적인 글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신문기사들을 찾아 밤새 읽었지만 내 글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날 나는 울면서 콘셉트나 주제도 없이 오프닝을 썼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그 첫날의 오프닝을 보면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다.


얼마 전 공원에 나갔다가

클로버들이 가득한 풀밭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네 잎 클로버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동해

아이처럼 풀밭을 헤매고 다녀봤는데요.

욕심이 앞서서 그런가

네 잎 클로버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찾기만 하면 반드시 소망하는 바가 이뤄지고

거기에 덤으로

생각지 못한 행운까지 안겨줄 것 같아

풀밭에 마음을 두고 풀잎을 뒤적이던 시간들.........

그 시간은 아마도 행운을

꼭 찾고 말겠다는 마음이었겠죠.


사실 긴 시간 동안 혹시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나.....

혹시 나에겐 행운이 없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그런 마음은 나이를 먹어도 변치 않는 것 같습니다.


철없던 시절엔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면

나의 행운이 혹시나 닳지나 않을까 싶어

책갈피에 고이 끼워두거나

꽃잎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정성껏 코팅까지 해가며

소중한 보물처럼 다루며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는데요.

그런 네 잎 클로버가

제게 어떤 행운을 주었냐고요?


정확히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요.

그래도 왠지 그땐 그 네 잎 클로버 덕분에

슬프거나 울적한 날에도,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불안하지 않았고,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위안을 받곤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네 잎 클로버가 제게 온 이후로

불행한 일이 없었던 것 같거든요.

또 그것을 볼 때마다 왠지 행복한 것 같았고.....

뭐 이런 것이 네 잎 클로버가

제게 준 행운이 아니었을까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당시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분명 공들여 쓴 것 같기는 한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청취자에게 좋은 말, 멋진 말만을 하려는 모양새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늘어지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 글을 라디오로 들었을 때, 청취자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바로 주파수를 돌렸으리라 짐작한다. 그 날 나는 방송이 끝나고 담당 PD이자 진행자였던 아나운서에게 치욕적인 말들을 들어야 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이었고, 라디오 작가가 된 것이 행운이 아니라 내 인생의 불운이라는 생각까지 할 만큼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 나는 아직도 라디오 작가를 하고 있다. 눈물로 썼던 그 날의 시간들이 내게는 약이 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