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가 돌아왔다

by 봄봄

공기의 정령이 되었던 인어공주는 슬픔에 빠져 오랫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삼백 년이라는 시간을 수없이 거듭한 후에야 사사로운 감정으로 가족과 바다를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어공주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신이시여, 다시 한번 인어공주로 살게 해 주세요.”


신은 과거와 달리 지금 바다는 끔찍하게 변했다며 인어공주가 되어도 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인어공주는 그래도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신은 인어공주를 대지에 내려 보냈다. 공기의 정령에서 빗방울이 된 인어공주는 수많은 물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다. 바닷물이 닿자마자 빗방울은 눈부신 인어의 모습으로 변했다. 몸 끝에 있었던 물고기 꼬리 대신 언니들처럼 아름다운 다리와 발이 생겼다. 기뻐할 새도 없이 지독한 냄새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어지러웠다. 가족들과 살았던 하얀 모래 밑 왕궁은 검게 변해있었다. 바다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형형색색의 산호초들은 하얗게 죽어있었다.

“어머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이 검게 변해버리다니!”


물고기들은 죽어서 둥둥 떠다녔고, 숲을 이루었던 해초들과 보석 같았던 조개들은 빛을 잃고 썩어 있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살아있는 것은 오직 인어공주뿐. 기억을 더듬어 눈물을 흘리며 왕궁 주변을 둘러보다 발이 걸리고 말았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발은 조여졌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어공주는 다시 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바다가 보이는 방에 누워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지만 태양처럼 빛나 보이는 남자가 인어공주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요. 아직 말하지 말아요. 물을 많이 먹어서 힘들 거예요. 그물 때문에 발목도 아직 아플 테니 당분간 누워있어야 해요.”


인어공주가 물을 많이 먹어서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잠이 들었고, 남자 얼굴을 보면서 눈을 떴다. 그렇게 며칠 후, 다시 눈을 뜨니 바다 위 하늘에는 별이 반짝거렸고 모래 위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다. 그 옆에서 남자는 이상한 물건들을 만지고 있었다. 인어공주의 발목에는 멍 자국이 남아있었다. 시큰거리기는 했지만 남자에게 걸어갈 수 있었다. 남자는 앉으라며 의자를 톡톡 쳤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졌다.


“아가씨를 발견했던 곳은 인어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인데, 지금은 쓰레기 무덤처럼 돼버렸어요. 이것 봐요. 그물, 낚싯줄, 낚시 바늘, 옷들이 그곳에 있었어요. 아름다웠던 바다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바다에 사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그때, 바다거북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다 생물들의 언어를 알고 있는 인어공주에게 그 소리는 살려달라는 말이었다. 남자는 하는 일을 멈추고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바다거북 옆에는 그물을 뒤집어쓴 물개가 있었다. 남자는 능숙하게 그물을 끊어주었다. 바다거북과 물개는 남자와 인어공주 주변을 한참 맴돌다 떠났다. 인어공주는 눈물이 났다.


“바다 거북이도 쓰레기 때문에 고생했는데 제가 구해줬어요. 그 뒤로 아픈 친구들이 있으면 이렇게 데려와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아마도 저 바다 어디선가 죽어갈 거예요.”

남자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바다가 지금 아프다고 했다. 바다를 지키고자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혼자 하기에는 버겁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들을 두고 바다를 떠날 수는 없다고 했다.

며칠 후, 발목의 상처가 사라진 인어공주는 남자를 따라 바다에 나갔다. 남자와 함께 하얀 모래 위에 뒤덮여 있던 오물들을 치워나갔다. 그러는 사이 남자는 점점 인어공주를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남자에게 우연히 왔듯 어느 날 갑자기 떠날까 두려웠다.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 인어공주는 남자에게 고백했다.

“내 마음도 당신과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꼭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놀라지 말아요. 나는 사실 인어공주예요. 당신이 알고 있는 인어 전설에 나오는 그 인어요. 이런 내가 당신 옆에 있어도 될까요?”

남자는 인어공주를 그윽하게 바라보다 말 대신 가만히 안아주었다. 남자는 인어공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과 달리 바닷속에서 오랫동안 자유롭게 수영을 했고, 바다에 들어가면 푸른빛으로 광채를 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들었던 인어 전설처럼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 그대로 바다를 눈부시게 만들었다. 바다의 모든 생물들은 그녀를 반겼고, 물고기들은 줄지어 그녀를 따라다니며 어울려 군무를 추었다.


인어공주는 남자 덕분에 깨끗해진 하얀 모래 아래 옛 왕궁으로 남자를 데리고 갔다. 남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가장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바다에 사는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남자가 도와준 친구들도 있었다. 옛 인어 왕궁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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