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소나기, 장맛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빗소리도 함께 연상된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빗소리에 마음을 뺏기게 됐다.
소설가 김연수는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라는 소설에서 함석지붕의 빗소리를 사월에는 ‘미’ 정도였고, 칠월엔 ‘솔’ 정도라고 했다. 계절마다 빗소리가 다르다.
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빗소리는 지상의 사물들을 만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다.
잠깐만이라도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빗방울이 떨어지는 대상에 따라 소리가 달라져 연주를 듣는 기분이다.
집 처마, 나뭇잎이나 화분, 아스팔트 위, 버려진 물건들, 웅덩이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는 소박한 규모의 실내악 선율처럼 감미롭다. 덕분에 보기 흉했던 것마저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밤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비가 그치면 사라질 모습이지만 꽤 큰 위로가 된다.
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마음이 가게 한다.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점점 빠져들다 보면 일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버리는데, 이 지점이 빗소리의 클라이맥스다.
포근함, 시원함, 애잔함, 후련함이 담긴 빗소리는 시끌벅적했던 세상에 평온을 찾아준다. 나지막하게 자장가를 부르시며 토닥토닥해주셨던 어머니 같다. 괜찮다, 괜찮다, 다~괜찮다고 쓰다듬어 준다.
비와 함께 했던 추억은 선명해진다. 그날의 풍경과 온도, 사람과 시간, 감정까지 하나하나 되살아 나는 것 같다.
비 오는 날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빗소리 때문에 비를 좋아하게 됐다.
나이, 세월. 시간은 싫어하는 것에 대해 호감을 갖게 만든다. 싫어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 내 사람이라고 했다가 덜어낸 사람도 빗소리 같은 매력이나 끌림 때문에 다시 좋아질 수 있었으면, 다시 그럴 수 있다면 사는 게 덜 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