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가는 기분
고민과 걱정으로 어지럽고 시끄러웠던 마음은 평화롭고, 고요해져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해진다.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만물은 서서히 밝아오는 빛 속에서 반짝거리며 생경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새벽이다.
어제 하루 동안 방전됐던 것들은 밤새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되고, 몸과 마음이 다시 출발선에 선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꿈속에서, 누군가는 간절한 기도 소리로, 누군가는 달콤한 휴식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 평화와 고요, 시작과 희망, 기도와 정화 등으로 조용하지만 힘 있게 하루의 워밍업을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류 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새벽 4시부터 글을 썼다.
처음 글을 쓰던 시절 두 아들이 어려 글에 집중하려다 보니 새벽 시간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던 이 시간은 습관이 됐고 삶이 됐다.
토니 모리슨처럼 해뜨기 전, 새벽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하고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다.
새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의 기가 가장 충만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것이며, 새벽에 깨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가는 기분이라고 한다.
느리고, 조용하고,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있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폭발력의 내공을 쌓아가는 시간, 마법 같은 시간이다.
미라클 모닝, 아침형 인간이 유행하는 이유도 새벽의 효과, 새벽 시간의 힘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나는 몇 년여 동안 새벽과 아침방송으로 기상 시간이 새벽 3시 30분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 깨어나는 타입이라 더 일찍 일어났다.
새벽 공기는 달콤했고,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막상 일어나면 스스로
대견스럽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기운이 생겨 앞으로 시작될 하루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충만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컸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자야 했고 하루의 중심이 새벽 기상시간에 맞춰지다 보니 모임이나 만남, 운동, 취미 등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자기 전에도, 자는 동안에도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서너 시간의 질 나쁜 수면은 만성피로로 이어졌고 생활리듬은 엉망이 돼 즐겁지 않았다.
사람마다 제 몸에 맞는 시간이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함부로 따라 할 게 아니다. 물론 나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새벽형 인간이 돼야 했지만 그 결과는 새벽 방송을 그만두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가끔 일이 아닌 우연히 마주하는 새벽 공기는 감미롭다. 그 느낌은 정말 미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