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숲세권 메리트
흔히 아침이면 새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풍경을 동경하는 분들이 많다. 지금 내가 사는 곳도 요즘 주거형태에 끼워 맞추면 부끄럽게도 숲세권이다.
10여 년 넘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부동산 매매 공고에 우리 아파트 소개란에 '숲세권'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 큰 소리로 웃은 적이 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 이후로 우리 집이 어떤 숲세권의 조건인지 조용히 따져봤다.
집 뒤에는 산이 있고, 숲이 우거져있다. 등산로가 있어 가벼운 산책부터 적당한 강도의 등산이 가능하다.
체육공원이 조성돼 있어 다양한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고 갈수기에는 보기 힘들지만 비가 내릴 때면 우렁찬 물소리도 들린다.
그중 숲세권이라면 일상이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둠이 물러나고 빛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하면 사방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새소리가 알람 소리 같아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뜬다.
실제 창문을 열면 사계절 변화를 감지할 수 있고 초록의 푸른 산, 파란 하늘, 흰구름이 어우러져 설레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붓으로 유화 그림을 그리듯 벚꽃이 분홍점을 찍어대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때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산 전체가 밝은 연둣빛으로 물들어 갈 때도 가슴이 벅찰 만큼 좋다.
푸른 오월에는 창문을 열면 달큼한 향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주인공은 아카시아 꽃이다. 자연 방향제가 따로 없어 그런 날에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뱉었다를 하며 한참 동안 향기에 빠져든다.
초여름밤에는 개구리, 소쩍새,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화음을 이루며 울어댄다. 여기에 낮에는 느낄 수 없는 푸른 숲 냄새가 언뜻언뜻 나기 시작하는데 딱딱했던 심장이 말랑말랑 해지는 듯하다.
그럴 때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기분이다. 바쁜 도시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에 안심이 된다. 이런 이유에서 '숲세권'이라는 주거지역은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
헌데 새소리도 매일 들으면 익숙해져 들리지 않는다. 집중할 일이 있을 땐 아름답고 평화롭다 생각했던 새소리가 오히려 소음처럼 느껴져 귀를 막게 된다.
봄날이 오면 꽃가루와 노란 송화가루가 구석구석에 찾아와 내려앉는다.
여름에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 고백하는 매미들이 서로 다른 높낮이와 크기로 울어댄다.
매번 이런 불만이 좋은 매력들을 잊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내하지 않으면 삶이 괴롭다며 엄살도 부린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인 나의 입장이었다. 본래 이 터의 주인은 그들인데 적반하장 격으로 구르는 돌인 인간이 들어와 자연을 탓했다.
자연에게는 인간의 주거공간이 침입자이자 방해꾼인 셈인데 나는 가끔 내가 마치 이 땅의 오랜 주인처럼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그들이 나의 삶을 흔든 게 아니라 인간인 내가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음을 잊고 살았다.
내가 서있는 자리를 이제라도 알았으니 자연을 탓할게 아니라 내가 잘 어울릴 수 있게 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불만을 가지진 말아야겠다. 인간의 욕심과 편리만 고집할 게 아니라 자연의 배려에 감사하며 더불어 사는 것, 이것이 숲세권에서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