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삶의 영점 만들기, 산책
요즘 비 소식이 잦긴 하지만 맑은 날에는 저녁식사를 하고 반짝이는 조명이나 은은한 달빛을 보며 산책하기 좋은 시기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저녁 바람은 한낮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고, 안달복달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는 속도를 늦추라고 읊조리는 것 같다.
낮에 보았던 풍경은 어둠으로 가려지고, 몇몇의 필요한 빛들만 비치는 밤 풍경은 나를 위한 무대 같다. 그 위에선 모든 것이 2배속으로 느려진다. 마치 독립영화나 아주 짧은 단편영화 속 주인공 같다.
칸트나 괴테 등의 철학가나 사상가들은 산책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며 생각을 확장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서재가 집안이 아니라 야외에 있다고 했다. 산책을 하며 마주하게 되는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 무한의 영감을 선사했다.
누군가의 삶이 증명하지 않아도 산책이 영양제처럼 좋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가 있다. 마음이 답답하고 복잡할 때,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할 때, 삶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절로 밖으로 걸어 나가 걷게 될 때가 그런 순간이다.
큰돈이나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어디서든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가만히, 천천히, 느긋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뭐든 해도 되는 삶의 영점을 만드는 시간.
그러고 나면 인생도 산책처럼 천천히 음미하며 느긋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