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하.... 하,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무서웠다.
솔직히 무서웠다.
생전 사람들하고 싸워본 적도 없었다. 차라리 맞고 끝나는 게 낫지, 싸우는 건 너무 무서웠다. 더군다나, 이런 폐공장에서 정장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런데도 내 발을 딱 붙이고 있던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야, 이 새꺄. 내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왔지만 너같은 새끼는 또 처음본다. 사과하라고? 누구한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아, 워낙 많아서 바로 하기가 힘드실 수도 있겠구나. 일단 조작으로 오인받은 걸그룹부터 시작할까요?”
박 대표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하게, 저 사람이 여유를 보일수록 몸에서 열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걔네들한테 못할 짓을 하기라도 했어?”
“그럼 아니에요?”
박 대표는 천천히 공장의 가운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왜소한 체구의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남자가 따라 걸었고, 여전히 덩치 큰 아저씨는 내 몇걸음 앞에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박 대표는 전등이 내리쬐는 밝은 곳까지 나온 뒤에 두 팔을 벌려보이며 말했다.
“뭐가 문제야? 걔네 아무 잘못 없는 거 다 밝혀질 거잖아?”
“하지만 평생 씻지 못할 오점이 생겼죠.”
“오점...... 그 정도 오점은 연예인하면 누구나 갖고 가는 거야.”
이상하리만치 여유가 넘쳤다, 박 대표라는 사람은. 그가 여유가 넘칠수록, 얼굴에 미소가 가득할 수록 점점 나는 반대로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내 안에 뭉쳐져있는 뭔가가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걔네 팬들은 여전히 걔네 때문에 돈을 쓸 거고, 그 덕분에 행복해할 거고. 걔네는 여전히 돈을 잘 벌겠지. 뭐, 몇 명은 음모가 있다고 끝까지 인터넷에서 씨부리겠지만 그냥 신경을 끄고 살면 되는 거잖아? 걔네들이.”
“애초에 왜 그런 고생을 해야 하는 건데? 당신 돈을 위해서?”
“뭐 이 새끼야?”
“맞잖아? 그렇게 루머를 퍼뜨려놓고, 타이밍 좋게 탈락자 위주로 아이돌 그룹을 편성해서 내놓는다. 적당히 사람들의 관심도 사고 당신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아냐? 오랫동안 데뷔를 못했다는 연습생들 심리를 이용해서 수익 배분도 거지같이 해놓고.”
박 대표는 내가 말하는 동안 계속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정장차림이 불편한지 자꾸 어깨를 돌리면서 셔츠를 정리하다가, 내가 말을 마친 다음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걔네는 오래 못가. 반짝 벌어들이고 마는 거지.”
“그럼 당신의 그 반짝 수익을 위해서......!”
“그게 나빠?”
그는 팔을 벌린 채, 나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인마. 생각해봐. 오랫동안 못 뜨던 애들이 반짝이라도 빛을 보게 하는 건데, 그게 나쁜 거냐고? 애들은 떨어진 다음 절치부심했다는 이미지로 데뷔에 성공해, 그동안 빛을 못봤던 작곡가 곡도 세상에 발표해줘, 나는 내 나름대로 오디션에 떨어진 애들도 챙긴다는 이미지도 챙겨. 뭐가 나빠?”
“그 반짝을 위해서 누군가는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입었지.”
“조까고 있네. 상처? 이미 몇 십억을 벌었을텐데? 그리고 걔네 팬덤은 이런 거에 흔들리지도 않아. 그냥, 막연히 이리저리 휘둘리던 대중들의 관심을 우리 애들이 좀 나눠가진 것 뿐이야. 덕분에 걔네는 빛을 봤고, 원래 잘 먹고 잘 사는 놈들은 변함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뭐가 문제야?”
박사장은 몸을 돌려 천천히 공장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아까부터 돈돈돈하는데, 정말 돈이 다야? 여기서 이득을 보는 게 정말 나 혼자냐고? 돈 잘 벌던 애들은 계속 벌어, 못 벌던 애들도 조금이나마 벌어, 팬들은 여전하고 없던 애들한테는 팬이 생기고.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얼마나 이득이야? 어? 안 그래? 결과적으로 보자고. 데뷔 못했던 애들은 잠깐이나마 돈을 벌었어. 그 전에 인기를 구가하던 애들은 잠깐 주춤했을 뿐 결국 결백이 밝혀질 거야. 자, 여기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누구야?”
“전부 다.”
이제 나를 계속 쳐다보는 덩치 큰 아저씨도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는 박대표 쪽으로 한걸음 다가서면서 다시 말했다.
“굳이 그렇게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야만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처음부터 공정하게, 애들과 정당하게 계약하고 잘 키워서 데뷔를 시켰으면......”
“..... 팬들이 생겼겠어? 그렇게 데뷔를 시킨다고 다 되는 줄 알아? 새끼야, 애들 연습 시키고 데뷔시키는 데 시간이랑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 아무리 노력해도 뜰지 안 뜰지는 미지수지. 그나마 나는 이 바닥에 이십년 가까이 있으니까, 그 사이 터뜨린 애도 있으니까 버티는 거지, 지금 그만치도 못하고 나가 떨어지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그렇게 했으면, 걔네 진작에 계약 해지하고 집에서 놀아야 해, 새끼야!”
박대표는 처음으로 흥분해서 침을 튀기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노력만 해서 되면 좋지. 끝까지 믿어줘서 결과를 가져오면 얼마나 아름다워.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거든.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이 말이야. 어? 평범하게라도 먹고 살려면 다른 사람들을 존나 찍어 눌러야 해. 안 그래? 너 대학은 나왔냐? 하다못해 성적은 다같이 좋게 받을 수 있었냐고? 너도 결국에는 다른 놈들을 찍어 누르면서 살아온 거 아니냐고. 과정이 공정한 거, 다 좋지. 그런데 너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 할 거 아냐?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 왜? 일단은 내가 살아야 하거든.”
그는 정장 자켓을 뒤로 펼치면서 두 팔을 허리에 짚었다. 그리고 어깨를 편 당당한 자세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전쟁이야. 인생은 전쟁이라고. 내가 죽거나, 살거나. 둘 중에 하나지. 그리고 더 절실한 놈이 이기고 살아남는 거야.”
순간 어디선가 그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냐고, 대의와 가치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군가는 그렇게 얘기 했었다. 결국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천천히 식는 기분. 어지럽던 머리도 진정이 되고, 심장도 다시 차분하게 뛰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안 절실한 사람이 어딨어?”
“뭐 인마?”
“세상에, 자기 인생에 절실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있냐고? 전쟁? 사는 게 전쟁같다고? 맞지. 그래. 누군들 절실하고 치열하게 안 사는 사람이 있어? 하지만 그 다음에는? 경쟁이 끝난 다음에는? 진짜 전쟁처럼 죽이고 끝나?”
목이 탔다. 물 한 모금이 절실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아닐걸. 당신도 사업가면 알 거 아냐? 경쟁이 끝나도 서로 얼굴을 볼 거 아냐. 경쟁 다음에는 또 경쟁이고, 그 다음에는 또 경쟁이지. 하나 끝난다고 다 죽이고 나만 살아있는 게 아니잖아? 경쟁했던 사람과 또 경쟁할 수도 있고, 평가했던 사람이 나를 또 평가할 수도 있지.”
숨이 찼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나는 겨우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킬 건 지키면서 살았어야지.”
“지킬 건 지키면서? 공정하게? 그렇게 세상이 이상적으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 그렇게 살아도 괜찮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이상적이라는 건, 경험이 없는 거야. 너 이 새끼야, 너. 어린 거라고. 이 새끼야. 그렇게 지킬 거 다 지키고 착하게 살면 누가 알아주는데? 넌 그냥 현실을 모르는 거야, 좀만한 새키야.”
박대표는 허리에 양 손을 짚은 채 나를 노려봤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꽉 끼는 듯한 셔츠와 벌어진 가슴이 앞 뒤로 벌렁거렸다.
“그러니까, 자. 네가 뭘 찍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핸드폰 나한테 주고 조용히 집으로 가라. 어? 어차피 여기서 너 나가지도 못해.”
아까 문이 닫힐 때 사실 이미 확인은 해뒀었다. 공장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은 모두 철문으로 굳게 잠겼고, 맨 위 쪽에 벽을 따라 주욱 늘어선 창문도 잠겨있었다. 나가려면 문을 열든지, 창문으로 순간이동해서 창문을 깨고 나가든지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곧바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세상을 진짜 아름답게 만드는 게 뭔지 알아?”
“뭐?”
“인사.”
“뭔 소리 하는 거야?”
“인사라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고생하면 고생한다고. 당신이 어떤 이득을 봤든,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이 갔든, 미안한 게 있으면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이 새끼는 아까부터 은근슬쩍 반말을.....”
그래. 말하는 태도에서부터 이미 느껴졌다. 이 인간은 애초에, 본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을 들켜서 당황한 게 아니라, 애초에 자기가 한 것은 모두에게 좋게 작용할테니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절대 사과도 하지 않을테고, 뉘우치지도 않을테지. 피해자를 대면해도 ‘내 덕에 네가 큰 거다’ 드립을 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더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다.
진심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절실하게, 아까 자신이 말했듯 자신을 위해서 거짓말로라도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다.
“현석아. 거 그 쫑알대는 새끼 핸드폰 좀 뺏어와라.”
역시나, 그 사람이 뱉은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덩치 큰 남자가 곧바로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무섭다.
무서워야 했다.
날 해코지할 작정으로 누군가 다가온다면, 나는 늘 무서워했다.
그게 정상 아니야? 애초에 폭력이라는 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대화 방식이다. 엄연히 불법으로 규정해놓은 거라고. 애초에 폭력이 있을 거라고 걱정하는 게 기우여야 하는 거 아니야? 누군가 인도로 자동차가 덮칠 것을 두려워해서 밖을 나가지 못한다면, 대부분 비웃거나 병원에 가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거다.
하지만 지금 내 몇 걸음 앞에서 다가오는 남자는 분명 폭력을 쓰려고 하고 있었다.
그건 명백했다. 나보다 머리 두개는 더 커보이는 사람, 어깨도 정확히 두배는 더 넓어보이는 사람. 짧게 민 스포츠 머리 군데군데 땜빵이 보이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흉터가 많이 새겨진 턱, 그리고 마구 구겨진 귀까지. 덩치도 두배고 인상도 험악하고, 심지어 그 강함의 상징인 만두귀까지 있는 남자가 내게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무섭다. 무서워야 했다. 평소의 우수하라면. 늘 그래왔으니까, 중학교 내내 그렇게 맞고 다녔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겨우 식혀놨던 열이 다시금 몸 안에서 쑥쑥 자라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대고 폐가 불어나는 느낌, 부족한 숨을 어떻게든 더 쉬려고 호흡이 가빠지고, 그 열을 몸이 받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멀미를 하는 것처럼 시야가 시계방향으로 조금씩 도는 느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쓰러질 것처럼, 에너지가 폭발하는 기분!
“흐아아압!!”
남자는 어느새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의 명치를 향해 세게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
“......”
남자는 말이 없었다. 아, 말은 그의 배가 했다.
‘그게 친 거냐’고.
“흐읍!”
그 다음은 미처 내가 뭘 할 새가 없었다. 순식간에 멱살이 잡히고, 공중으로 붕 떠서 바닥에 등부터 처박혔다!
콰앙-!
콘크리트로 된 공장 바닥에 등부터 세게 떨어졌다. 영화였다면 바닥이 패이고 여기저기 돌가루가 튀었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나는 바닥에 누운 채 몸을 꼼짝하지 못했다. 누군가 그랬다, 길거리에서 유도 선수나 레슬러를 만나서 바닥에 메쳐지면 끝이라고......
“어?”
그런데 어째 멀쩡했다.
“......?”
바로 앞에서 내 멱살을 잡고 날 누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나는, 곧바로 남자를 밀쳐내고 먼 바닥으로 순간이동했다!
“뭐, 뭐야? 저새끼, 뭐하는 새끼야?”
남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호들갑은 박 대표가 뒤에서 떨고 있었지만, 정작 날 업어친 다음에 툭툭 털고 일어난 남자는 실눈을 뜨고 날 노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왜 아프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덕분에 몸에서 열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방금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요행이다. 저 남자한테 또 잡히면 죽을 거라고, 단순히 내 기분을 타서 싸움을 붙으면 안 된다는 예감이 등골을 스쳐지나갔다.
“현석아 괜찮냐!”
“예. 잡을만합니다.”
나보다 덩치도 크고 싸움도 잘하는 사람을 쓰러뜨리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집에서 몇 번이고 했던 게임을 생각해보자, 레이드 보스다, 컨트롤로 혼자 때려눕힌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곧장 남자에게 달려들어갔다. 남자는 전혀 동요없이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곧바로 손을 내뻗었다.
“흐읍!”
나는 곧바로 그 남자의 다리 사이로 눈을 돌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그의 뒤쪽 바닥을 보고 순간이동을 한 뒤, 곧바로 뒤를 돌아서 남자의 다리를 걷어찼다!
빠악-!
“큭.....!”
그리고 남자가 뒤를 돌기 전에, 나는 곧바로 뒤로 몇 걸음 도망쳤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바로 눈 앞에서 내가 사라진 다음에 뒤에서 다리를 걷어차였는데도, 멀쩡하게 뒤를 돌아서 나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으윽!”
그리고 또 다시, 맞은 그 남자보다 때린 내 다리가 더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만 그렇겠지, 몇 번 더 하면 된다!
“희한한 새끼네. 어떻게 하는 거냐?”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남자를 향해 또 다시 뛰어가다가, 그의 뒤 쪽을 보고 순간이동 했다-
덥석-
“잡았다!”
순간이동을 하자마자 곧바로 목이 졸렸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현석의 팔을 잡았지만, 그게 내 목숨을 단축시키는 일이 될 줄은, 몸이 공중에 뜬 다음에야 알았다-
콰아앙-!
“큭...... 커헉!”
이번에도 등부터 떨어졌지만, 몸은 놀랍도록 괜찮았다. 하지만 곧바로 현석은 한 손으로 내 목을 붙잡고 바닥에 세게 짓눌렀다.
“컥!”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숨쉬는 게 힘든 건 고사하고, 저절로 기침이 쏟아져나오면서 목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 두 손으로 밀어내려했지만 현석은 덩치만큼이나 힘도 셌다. 더군다나 그는 목을 조르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른 한 손으로, 곧바로 내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커헉.....!”
배에 주먹을 한 대 맞았을 뿐인데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이 온 몸을 사로잡았다. 눈과 혀는 튀어나올 것 같았고, 위장 한복판에서 뜨거운 짬뽕을 엎은 것 같은 고통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까 내던져질때는 그렇게도 멀쩡했는데 왜......!
“뻔하지. 어차피 내 뒤나 옆으로 올 거잖아?”
그리고 한 번 더, 남자가 주먹을 치켜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또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큰일이다.....! 나는 남자의 어깨를 쳐다본 채로 눈을 감았다 떴다 -
“푸하하압!”
순식간에 목을 짓눌렀던 고통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단단한 현석의 등과 어깨가 느껴졌다. 저절로 튀어나오는 기침을 애써 참으면서, 나는 곧바로 두 팔로 그의 목을 졸랐다.
“컥.....!”
덩치 큰 현석이 휘청이며 균형을 잃었다. 물론 나도 콜록이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힘을 줄 수야 없었지만,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이익......!”
현석은 금세 몸을 일으켜세웠다. 애초에 내가 목을 조르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멀쩡히 일어나서는, 뒤로 손을 뻗어 내 머리채를 붙잡았다. 두피가 통째로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손과 다리로 현석의 등에 달라붙어서 세게 조르는 것 뿐이었다. 머리가 뽑히더라도 손을 놓는 것보다는 안전할 거다, 아니 덜 아플 거다!
“흐읍.....!”
다만 조르기에도 기술은 필요한 것 같았다. 매달린지 몇 초가 지났는데도 현석이 멀쩡한 걸 보면. 그는 한 손으로 여전히 내 머리채를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잠깐 잡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악수라도 한다면 몇 초만에 손가락 마디가 몇 개는 부러질 것 같은 엄청난 악력의 손이, 어느새 내 새끼손가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헉!”
안 좋은 예감. 나는 곧바로 대충 보이는 앞으로 순간이동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손가락이 하나는 반대로 꺾이거나 부러졌을 거다!
“콜록, 콜록!”
현석은 금방 몸을 일으켜세웠다. 내가 여전히 기침을 하고 있는 사이, 그는 목과 어깨를 몇 번 돌리고는 곧장 내게로 빠르게 걸어왔다. 꼭 싸우는 기계 같았다!
“또 해봐, 어디!”
현석은 성큼성큼 걸어서 순식간에 내 눈앞에 다가와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곧장 먼 바닥을 보고 순간이동했다. 문제는 공장이 텅텅 비어있었다는 거다. 숨을 곳도 없어서, 현석은 금세 뒤를 돌아 나를 찾아냈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나 보자!”
그 말대로였다. 계속 이렇게 도망치다가는 답이 없다. 결국 어떻게든, 일단 현석을 물리쳐야 박 대표에게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는 셈이다.
그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 그 싸우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런 말을 했었단 말이지.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나를 쳐다보고 서 있는 현석에게 곧바로 뛰어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잡고 나를 잡을 준비를 했고, 나는 또 다시 그의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고 순간이동을 했다.
“여기지!!”
현석은 곧장 팔을 뒤로 뻗었지만, 그곳은 텅 빈 허공이었다.
내가 순간이동을 한 곳은 그의 바로 앞이었다. 다리 사이, 뒤 쪽 공간이 아닌 그의 얼굴 아래! 이동을 하자마자 수그리고 앉은 나는, 현석의 고개가 다시 앞으로 돌아올 때쯤 곧바로 일어나면서 주먹을 위로 뻗었다!
퍼억-!
“아악.....!”
분명 때린 건 난데, 아픈 것도 내 손이었다. 사람의 뼈와 부딪히는 불쾌한 느낌. 그래도 이 정도 충격이라면 그 덩치도 잠깐이나마 충격은 받으리라! 아니나다를까, 현석의 몸이 휘청이는가 싶더니, 그는 순식간에 한 손으로 내 멱살을 잡고 곧바로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컥......”
이번에는 비명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멱살을 잡힌 채로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 숨을 억지로 뱉어내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위장을 통째로 토해내야 할 것만같은 고통이었다.
“새끼......”
현석이 뭐라고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그는 곧바로 내 다리를 걷어차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배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다른 충격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누운 채로도 한참동안이나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야, 빨리 핸드폰이나 찾아봐라.”
“예.”
쉴 틈도 없이 억센 손이 내 코트를 양쪽으로 벌리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아무렇게나 내 안주머니를 뒤지는 게 느껴졌지만, 겨우 돌아온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것이 한계였다.
“형님, 일단 이것부터 확인해보시죠.”
뭔가를 던지고 박 대표가 받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바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은 찾지 못한 것 같았다.
“하아, 하아......”
겨우 숨이 돌아온 다음에 눈에 들어온 건 전등이었다. 하필이면, 내 머리 위에서 불이 꺼진 채 대롱거리는 전등. 고작 전구 하나가 끼워진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전등 위로, 얼기설기 얽힌 철골과 그 위에 슬레이트들이 얹어진 공장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폰 어디다 숨겼어?”
다시 한 번 멱살이 잡혔다. 정신을 차리려는 찰나, 현석은 다시 한 번 누워있는 내 배에 주먹을 내리찍었다.
“커헉!”
좋은 계획인지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배를 웅크리면서, 곧장 두 팔로 현석의 목을 끌어안고 - 곧바로 천장으로 순간이동했다.
“어!?”
그 다음은 평소에 산책을 하던 것과 비슷했다. 곧장 현석을 끌어안았던 팔을 놓고, 바로 아래에 보이는 바닥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순간이동.
“어어어어어어-!!”
바닥에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서자마자, 머리 위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가까워지고는 -
쿵!
바로 앞에, 거구의 현석이 등부터 세게 떨어졌다.
“아악! 콜록, 콜록, 크으으으.......!”
“어, 뭐, 뭐야?!”
현석은 팔다리를 심하게 떨면서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너머에 서 있는 황망한 표정의 박대표를 무시한 채 나는 곧장 현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누워있는 그의 멱살을 내가 움켜쥐었다.
“자, 잠깐!”
그리고 다시 한 번 천장으로 순간이동했다. 이번에는 한 팔로 철골을 붙잡은 상태로, 천장으로 이동하자마자 곧장 현석의 멱살을 놨다.
“어어어어어-!!”
콰앙!
철골을 놓자마자, 나는 곧바로 바닥을 보고 순간이동했다. 박 대표는 여전히 나를 보면서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현석은 바로 그 앞에 누워서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살아있다. 그는 다행히도 살아있었다. 그는 몸을 대자로 펴고 누운 채 꼼짝하지 못했지만, 가쁘게 숨을 쉬면서 팔 다리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몇 미터인지 가늠은 안 되지만 그래도 아파트 몇 층 높이는 되는 공장이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허공에서 곧바로 떨어졌으니 멀쩡할리는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하아, 하아, 하아!”
호흡을 가다듬기가 어려웠다. 다행히도 몇 번이나 바닥에 부딪혔던 등은 멀쩡했지만, 현석의 억센 주먹이 몇 번이고 꽂혔던 배는 멀쩡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었다면 곧장 게워냈을 것 같은 경련이 위장에서 계속 되는 느낌이었다. 똑바로 서있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박 대표의 앞으로 걸어갔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끓어올랐던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아직도 쿵쿵 뛰는 심장때문인지, 숨은 계속 천천히 쉬려고 해도 급하게 흘러나왔다.
“너 이 새끼......”
박 대표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 나는 쓰러진 현석의 위를 넘어갔다. 얻어맞은 배와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참을만 했다.
‘내가 경솔했지.’
따지고보면 나 때문이다. 내가 애초에 어설프게 다연을 돕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그래서 바로 잡는 거다. 그러니까, 내 실수니까 내가 직접 바로 잡으려는 거다.
“박만기씨,”
후우, 한숨을 내뱉고 다음 말을 이었다.
“사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