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의 한강은 추웠다. 그것도 다리 한 가운데는. 애초에 걷는 사람도 많이 없을 뿐더러, 걷더라도 그리 쾌적한 환경은 못 된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는 바닥, 차 소리, 한강의 칼바람까지. 그런데도 굳이 다연이 이 곳에 또 나온 건 약속을 해서 그랬다.
“금방 오셨네요?”
“너는 여기가 뭐가 좋다고 계속 오냐?”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다연에게서 조금 떨어져있는 난간에 팔을 기댔다. 검은 코트, 검은 바지, 검은 운동화, 심지어 눈과 코를 가리는 보호대까직 검은색이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먼저 기다리고 있던 다연은 발목까지 덮는 하얀 치마와 두터운 스웨터 차림으로 이어폰을 한 쪽 귀에만 꽂은 채 서 있었다.
“뉴스 봤어요.”
“그래, 뭐.”
“잡혀들어갔던데.”
“그렇더라.”
남자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마스크에 가려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그 사이, 다연은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의 음량을 키워서 남자 쪽으로 내밀었다.
[...... 지난 30일,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 영상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던 박만기 LSP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박 대표는 해당 영상은 강압에 의해 촬영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며, LSP의 직원과 자신을 폭행하고 협박한 인물이 바로 블링크라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현재 수사중인 부분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다만 이미 자백 외의 이면계약서, 녹취록과 금전거래 기록 등 명확한 증거자료들이 공개된 점을 미루어,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박대표의 이러한 발표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
“어떻게 했는지 안 알려줄 거죠?”
“어.”
“자백은 어떻게 찍은 거에요? 좀 때리고 그랬나?”
“안 알려준다니까.”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날 왜 그렇게까지 도와줬어요?”
남자는 슬쩍 다연을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한강쪽으로 돌렸다. 그는 그렇게 한참동안 난간에 기대서서 한강을 내려다보다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아저씨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그 생각이 잘못됐다고 믿었으니까.”
다연은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시 그렇게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그녀는 다시 남자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럼 아저씨는 앞으로 뭐할 거에요?”
“생각 중이야.”
“흐음. 그래도 그런 초능력이 있으면 되게 할 거 많을 것 같은데.”
“많기는 무슨.”
“그래도 멋있어요. 뭘 할지 정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는 거.”
남자는 다시 고개를 한강쪽으로 돌렸다. 그는 그렇게 잠시동안 말없이 한강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다연도 굳이 그런 그를 방해하지 않고 눈을 돌려서 한강을 내려다봤다. 둘 사이에는 사람이 두 세명 정도 들어갈만한 공간이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다가서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남자는 입을 열었다.
“이제 뭐할 거야? 너는.”
“저도 생각중이에요. 근데 확실한 건 하나 있어요.”
다연은 그렇게 말하며 남자를 쳐다보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지는 않을 거에요.”
“그래, 제발 좀.”
남자는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놓이는 건 아닌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자신의 두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네 목숨 걸고 그런 짓은 하지 말고.”
“아, 아저씨. 앞으로 뭐 할지 생각 안해보셨다고 했죠?”
“그렇다고 네 계획을 듣지는 않을 거니까......”
“그건 어때요? 내가 아저씨를 촬영하고 인터뷰해서 유튜버를 하는 거에요. 나만 독점적으로! 왜, 만화에 보면 그런 영웅들도 꼭 있잖아. 사이드킥 같은 거. 나는 아저씨를 통해서 이슈도 만들고, 아저씨는 내 덕분에 대중들한테 이미지를 챙기고.”
“헛소리 하지 말고. 제발 부탁이다.”
“아 왜! 괜찮잖아요!”
“됐고. 아무튼, 그 약속은 꼭 지켜라. 죽지 않기로 한 거.”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처음으로 다연을 똑바로 쳐다봤다. 다연은 그제서야 남자의 눈동자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옷은 온통 검은색으로 맞춰입고 마스크도 검은색이면서, 마스크 아래에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밝은 갈색이었다.
“아저씨, 심심할 때 연락해도 돼요?”
“아니.”
“왜. 여자친구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남자는 말없이 다연을 쳐다보다가 눈을 다시 한강쪽으로 돌렸다.
“어? 있어? 아저씨 여자친구 있었어?”
“아 쫌! 몰라, 시끄럽고. 너 무슨 오디션 본다는 건 어떻게 됐어?”
“아 그거......”
다연은 부끄럽다는 듯, 자신의 배낭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잔뜩 찌푸린 눈으로 그걸 받아서 읽어보던 남자는 별안간 얼굴을 펴고 다연을 돌아봤다.
“어? 뭐야. 합격 했네?”
“아, 완전 합격은 아니고. 최종 오디션을 보러가면 된다, 뭐 고 정도지.”
“야이씨, 잘됐네!”
남자는 종이를 다연에게 건네고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하지만 그렇게 입꼬리를 올린 것도 잠시, 그는 다시 얼굴을 찌푸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앞으로는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해봐. 종종 보러 올 거야, 또 허튼짓 하나 안 하나.”
“음, 보러오는 것도 좋은데. 내가 연락하면 안돼요?”
“안 돼.”
“어차피 번호 다 알고 있는데?”
다연은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화면에 찍혀있는 건 여지없는 그의 핸드폰 번호.
“아...... 저장했냐?”
“그럼요. 무려 ‘블링크’의 번호인데.”
“아휴.....”
“혹시 살다가 너무 힘들거나 또 이상한 사람 만나면 바로 전화할 거에요. 나는 ‘블링크’를 안다고, 나 건드리면 ‘블링크’가 다 혼내줄 거라고.”
“아라한테 뒤지게 혼나겠네......”
“뭐라고 했어요?”
“아냐. 지우라고는 안 할테니까 너 함부로 전화하고 그러지 마. 받지도 않을 거야.”
“메롱. 몰라, 나 하고싶을 때 할 거야.”
“어휴, 걸려도 어쩌다가 저런 애한테 걸려가지고. 야, 간다. 맘대로 해.”
남자는 그제야 다시 몸을 돌리고 난간 위에 올라섰다. 불어오는 바람에 긴 코트자락을 펄럭이면서 잠시 서 있던 그는, 고개만 슥 돌려서 다연을 내려다보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무튼. 고생했다. 앞으로 열심히 하고.”
그리고 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는 꼭 옛날 TV 전원이 꺼지듯이 픽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굉장히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는데도, 다연은 아무렇지 않게 씩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열심히 하고’가 무슨 말인데, ‘열심히 하고’가.”
다연은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한참동안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 뒤, 다연은 최종 오디션 안내문을 쳐다보다가, 두 손으로 천천히 찢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뭉쳐서 한 번, 그리고 다시 모아서 또 한 번. 마침내 그녀의 힘으로 찢어지지 않는 정도가 되고 나서야, 그녀는 그 종이를 다리 아래로 미련없이 던져보냈다.
“내가 뭘 잘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희미하게나마 얼굴에 미소를 걸어두고 있었다. 그 미소를 지은 채 그녀는 핸드폰 화면에 떠있는 연락처의 삭제버튼을 눌렀다.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지.”
짐을 챙기는 건 금방이었다. 아라가 며칠 사이 갑자기 바빠져서 혼자 챙겨야만 했지만, 애초에 챙길만한 짐도 몇 개 없었다. 기껏해야 그리고 옷가지 몇 벌, 핸드폰과 지갑. 노트북은 회사에서 새로 지급을 해준다고 해서 챙기지 않기로 했다.
“아유, 네 아부지가 이걸 봤어야 했는데......”
할머니는 옆에서 속옷과 양말을 챙겨주시면서 또 눈을 빨갛게 물들이셨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합숙 연수는 육개월이고 그 이후에는 출퇴근 할 거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걱정돼서 우는 것이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셨다.
“네가 알아서 취직까지 했는데 내가 뭐가 불안하겠니. 너무 대견해서 그렇지.”
엄밀히 말하면 걱정은 내가 해야했다. 할머니께서 육개월은 혼자 집에 계셔야 하는 거니까.
“할머니는 걱정하지마라. 얼마나 건강한데. 그리고 아라도 종종 놀러올 거라고 하니까.”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코트를 걸쳤다. 편하게 입으라는 상급자의 조언이 있었던 터라, 나는 평소에 자주 입던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웬만하면 회사에서 아무리 편하게 입으라고 해도 아라의 조언을 따라 편안한 정장을 입었겠지만, 지금의 직장은 달랐다.
‘야, 나 입는 거 봐. 어차피 험한 일 할텐데 뭣하러 정장을 입냐?’
‘험한 일 하러 가는 거에요?’
‘이 새끼, 그럼 연금이 그렇게 쉽게 벌리는 줄 알아?’
정확히는 직장보다도 상급자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왜, 할미를 떠나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 뭐가 좋다고 그렇게 실실 웃어?”
“어? 아냐아냐, 갑자기 웃긴 게 생각나서요.”
나는 다시 한 번 짐을 점검했다. 합숙 연수고 어차피 훈련할 때 입을 옷은 챙겨준다고 했으니, 아빠가 물려준 코트 정도만 잘 챙기면 될 것 같았다.
“다녀올게요.”
“건강이 최고다.”
할머니와 그렇게 포옹을 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겨도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으려면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할머니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실컷 맡은 다음에, 나는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20인치짜리 트렁크를 끌면서 아파트를 나섰다.
“안녕하세요!!”
아파트 문을 나서자마자 터지는 고함소리에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서아씨가 위층의 할머니를 보고 단지 전체가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것이다. 조용히 하자고 말리고 싶었지만, 불과 지난 주에 봤던 충격적인 모습 때문에 한 마디 말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짐은 다 챙겼냐? 그게 다야?”
“네. 다 챙겼습니다.”
“총같은 건 없지?”
“아하하, 네. 총알이 없어서 두고 왔습니다.”
곧바로 호탕한 웃음과 함께 뒤통수에 충격이 전해졌다. 벌써 농담을 던진다며 쉽게 던진 손바닥이지만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웃자, 웃어야 한다......
“원래는 내 차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우리 팀장님 차로 갈 거야.”
한서아씨는 아파트 주차장 구석에 세워둔 검은색 SUV로 다가가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캐리어를 뒷좌석에 대충 던져 넣고는 조수석을 열어보였다. 나는 배낭을 앞으로 안은 채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아유, 새 차라 적응 안 되네.”
“누나 차는 뭔데요?”
“오토바이야.”
“네? 그걸 어떻게 둘이 같이 타요?”
“왜 못타? 여자친구랑 자전거 안 타봤어?”
여자친구가 있었는지부터 물어보셔야죠...... 라고 대답하려다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어째 그것이 더 효과적인 대답이 된 듯, 한서아씨는 갑자기 혀를 끌끌 차더니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으이구, 스물 다섯 먹도록 뭐했냐.”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사과하면 내가 뭐가 되냐, 어?”
그녀는 시동을 건 채로 의자를 조정했다. 아무리 해도 불편한지, 계속 뒤로 눕히거나 앞으로 움직이거나, 혹은 높이를 조절하면서 여기저기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지난 밤에 봤던 사람을 천장까지 날려보내는 그녀의 힘을 봤기 때문에, 혹시나 차를 부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안전벨트, 안전벨트.......
“가기 전에, 주의할 것.”
“넵.”
한서아씨는 내 앞으로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 코트는 들어가자마자 가방에 넣어놓고, 훈련 끝날 때까지 꺼내지 말 것.”
“네?”
“훈련은 내년 5월 말에 마친다. 그 때까지, 코트는 가방에 넣어두고 절대 다른 사람 눈에 띄이지 않게 할 것. 알았어?”
“그...... 예.”
어려운 지시사항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그렇게 당부를 따로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싶었다.
“이유는 묻지 말고.”
그러고보니, 참 신기한 코트긴 했다. 나보다 키가 훨씬 컸다는 아빠의 코트인데 내게 딱 맞는 건 둘째치더라도, 화재현장에서도 조금도 안 그을리는가 하면, 박대표의 비서에게 그렇게 얻어맞을 때도 코트가 가리고 있던 등은 조금도 아프지가 않았었지.
“아참, 사실 차를 탄 이유는 널 지키려는 것도 있긴 한데, 한 명 더 같이 갈 거라서 그래.”
“한 명 더요?”
“응. 너처럼 능력이 있는 사람.”
두근거렸다. 나 말고도 또 다른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다! 물론 한서아씨만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적어도 나처럼 헤매던 동기 한 명이 생기는 것이니 마음의 부담이 덜해지는 기분이었다.
“응. 원래 우리 팀에서 활동 했었는데, 쉬다가 이번에 복직하기로 했어.”
다시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원년 멤버구나, 그럼 결국 직장 선배구나. 나는 결국 혼자 입사하는구나...... 문득 방송사에서 혼나던 직원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팀장이 있는 것 까지 확인하고 빼냈으니, 그 다음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으니 별 일 없기를.
“뒤에 있으니까 인사해.”
“뒤요?”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았다. 아까 한서아씨가 트렁크를 던져 넣는 걸 봤기 때문에 누가 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어?”
하지만 뒤를 돌자마자, 나는 곧바로 머리가 멍해졌다.
“네가 왜 여기......?”
블링크; 내 눈이 닿는 곳에 - 끝.
에필로그
[약 반 년전,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조작됐다는 루머를 조성해 퍼뜨린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만기 대표이사에 대해 오늘 오전 징역 7년의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박만기 대표이사는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한다는 뜻을 내비쳤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김주현 기자,.......]
밤시간의 버스는 여러모로 피곤하다. 물론 정해진 시간대에 정해진 루트를 도는 것이지만, 요일에 따라, 또 시즌에 따라 손님들의 태도도 상이했던 것이다.
“읏차.......”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각, 텅 비어있는 교차로에서 빨간 불을 확인하고 정차한 뒤 그는 기지개를 켰다. 실로 몇 시간만의 스트레칭이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엉덩이를 앞으로 쭉 빼고, 팔은 위로 뻗고. 마침 버스에 손님은 없었다. 딱 한 명, 저 맨 뒤에 앉아있는 검은 코트 차림의 남자를 빼고는 -
“늘 이 시간에 운행하세요?”
“어이쿠!”
현수는 황급히 핸들을 잡고 바로 앉으며 뒤를 돌았다. 의자에 플라스틱 보호판까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맨 뒷자리의 남자가 기사석 바로 뒤의 앞자리로 온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대화가 고픈 손님인가 보군.
“아유, 돌아가면서 하죠. 보통은 이 때 하긴 해요. 저녁부터 쭉.”
“피곤하시겠어요.”
“에이, 매일 하는 건데요 뭐.”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핸들 위에 두 팔을 걸치고 엎드렸다. 아무도 없을 버스에서 맘 편히 운행할 생각에 설렜던 마음은 다시 착 가라앉았다. 문제는, 애매하게도 그 말을 끝으로 뒷자리 손님은 한참동안 조용했다.
“혹시 따님이 있으세요?”
“네? 아, 아...... 아, 있죠. 아, 지난 번에 보셨구나.”
남자는 그렇게 물어보고 또 한참 말이 없었다. 잠시 그와 대화를 이어갈 지 고민하던 기사는 한 정류장을 지나칠 때까지 남자가 말이 없자 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대화를 이어가려면 이어가든지, 아니면 아예 조용히 가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사가 그렇게 소망한 순간 이후 남자는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이따금씩 코를 훌쩍거리거나 헛기침을 하는 것이 아니면 뒤에 앉아있는지 모를 정도로. 그는 인기척도 없이 한참을 그렇게 조용하게 지나갔다. 마침내 버스가 회차지점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기사의 귀 근처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하세요. 늘 감사합니다.”
“어이쿠, 놀래라!”
기사는 곧바로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정작 버스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차를 세웠는데,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어?!”
기사는 황망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나와 다시 한 번 자리를 살폈다. 뒤쪽 이인석의 아래도 살피고 혹시 몰라 창밖도 살폈지만, 뒤에서 말을 걸던 남자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