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 땅 위의 별
[Web발신][부고]
인재개발부 김학철 부장 빙모상
◆ 빈소: XX동 XX병원 장례식장 7호실
◆ 발인: 20XX년 X월 XX일(수) 오전 8시
◆ 연락처: 김학철 부장(01X-0000-000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직원으로서 평소 노동조합의 노고를 느끼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간혹이나마 그 수고를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경조사 알림 문자를 받을 때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다. 사실 경사든 조사든 받는 순간에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내가 가야 할만한 친분의 사람인지, 날짜는 언제고 간다면 언제, 누구랑 같이 가야하나, 부의는 얼마나 해야 하나,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부서원들은 대충 알림을 확인하고 자기 일에 몰두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아이고, 이 양반 빙부상이네.”
“박 차장님 아시는 분이세요?”
“아 왜, 나 전에 홍보팀 있을 때 같이 근무하고 그랬지. 아마 본부장님도 가실 걸? 오늘 간만에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 했더니만.”
그런 말을 하는 박차장님의 얼굴에는 오히려 안도감이 깃들어있었다. 사실 그는 평소에도 퇴근을 일찍 하는 편은 아니었다.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 스크롤만 넘기면서 시간을 때우기 일쑤고,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냐고 여쭤 봐도 별다른 답 없이 앉아있다가, 아홉시가 넘은 시간에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가 다반사였다. 일개 주임으로서 어찌 그 이유를 다 알겠냐만은, ‘상관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혼을 내는 사람의 부하 직원으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우 주임은?”
“네?”
“네? 가 아니라, 우 주임도 갈 거냐고.”
“아, 전…….”
간만에 일찍 퇴근하려고 했는데요. 나는 웅얼거리는 소리를 애써 누르며 다른 부서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대부분 파티션 아래로 숨어서 보이지가 않았고, 남 대리님도 어느새 눈을 내리깔고 자기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우 주임도 잘 알지 않아? 처음 들어올 때 교육 받았을 거 아니야.”
“아뇨, 그 때 부장으로 계시긴 했는데, 연수 때는 한 번도 뵙질 못해서......”
말 그대로 만난 적이 없는 분이었다. 신입사원 연수의 실무는 인재개발부 차장님과 대리님께서 주도를 했던 터였다. 입사 동기가 모인 오십 명이 넘는 채팅방도 오늘은 조용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건 엄연히 부고다. 각별히 친한 것도 아니고 연락을 따로 받은 것도 아니면 찾아가는 것이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자리니까.
“이럴 때 가서 얼굴 도장도 찍고 그러는 거야. 잘 몰라도 이럴 때 가서 인사드리고 하면 다 나중에 인사도 한 번 더 할 수 있고 좋지 않겠어? 회사 혼자 다니는 거 아니잖아. 이런 게 진짜 사회생활이라고.”
뿌듯하게 설명하는 그의 생각은 나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아직 서른 살의 내게 장례식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함께 추억하고 떠나보내는 곳이지 누군가를 만나서 인사하고 관계를 넓히는 친교의 장은 아니었다.
“오늘 저녁에 일정 있어?”
“아, 그건 아닌데......”
“그럼 따라와.”
물론 내 생각을 이 사회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사는 것이지,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건 선구자도 뭣도 아니고 그저 만용일 따름이다.
“......네, 알겠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물고기다. 나도, 저토록 노력하는 차장님도 결국 물고기일 따름이다. 진정 이 사회에 낚시꾼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무릇 낚시꾼이라면 애써 살아가는 물고기를 측은히 내려다보며 미끼를 드리우고, 가벼운 달콤함에 속아 넘어간 어린 물고기는 놔주고, 절실함에 미끼를 붙든 큰 물고기는 매운탕의 재료로 만들며 그것을 풍류라 하겠지. 잠시 물 위로 올라와 뻐끔거리는 물고기처럼,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차장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 시간 뒤, 나는 박차장님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휴, 슬슬 추워져서 그런지 노인네들이 많이 가나 보네.”
“가서 좀 눌러 있다가 나와야겠다.”
“이 차가 벌써 10만을 넘었네, 어휴. 바꿀 때가 됐나.”
운전하는 박차장님은 혼잣말이 많았다. 나는 아, 음, 정도의 감탄사나 추임새를 넣으며, 애써 시선만 오락가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대화가 오래 갈리 없었고, 박차장님도 결국 말을 멈추고 조용히 핸들을 돌릴 뿐이었다.
“우 주임.”
그러기를 한참. 따뜻한 시트에 익숙해져 노곤하게 쏟아지는 잠과 이삼십 분 정도를 싸웠을 무렵, 평소와는 다른 낮게 깔린 목소리로 박차장이 말을 걸어왔다.
“예?”
“우주임은, 저……. 부모님 건강 하시지?”
“예? 예. 건강하십니다.”
“또 다른 가족은? 없어?”
“아, 형이 있습니다.”
“형?”
“예.”
운전에 집중하던 박차장이 무슨 일인지 나를 흘끗 쳐다봤다.
“다 건강하셔?”
“네. 건강히 잘 계십니다. 아, 그.....”
“왜?”
“할머니도 계십니다.”
“어디, 외가쪽?”
“네. 어머니 쪽.”
운전 중인 박차장님이 이 쪽을 흘끗 쳐다봤다. 내가 종종 그의 자리로 찾아갈 때마다, 모니터를 쳐다보던 초점없는 흐린 눈과 똑같은 눈이었다.
“근데 할머님이 왜?”
그렇게 질문이 이어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나서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소같으면 굳이 나누지 않았을 이야기를 나는 그 때 아무렇지 않게 꺼내놨다.
“요즘 좀 안 좋으십니다.”
“어떻게?”
“그냥, 뭐. 예전에는 혼자서 장도 보시고 요리도 하고 그러셨는데, 요즘에는 방 밖으로 나오기가 힘드시대요.”
대답은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를 이상한 충동에 고민을 털어놓은 셈이긴 하지만, 나도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기실 그렇다. 어색한 사이와는 차라리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는 법이다. 다만 길었던 몇 초간의 공백은 다음 말을 생각하기 위함이었는지, 박차장님은 또 끊어질 법한 대화를 한참 뒤에 이어갔다.
“속 썩이지 말고 잘 해드려.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나는 울컥하는 마음을 억눌렀다. 박차장님의 말 중 걱정하는 마음만 받기로 생각하면서, 나는 겨우겨우 대답을 목 안 쪽에서 끄집어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나는 졸음을 이겨내려 애쓰며 살며시 박 차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나이를 먹으면 다 그렇게 변하는 것인지, 아까 혼잣말을 할 때나 지금이나 박 차장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 헐렁한 안경, 얼굴 곳곳에 자글자글한 주름과 처진 눈매, 신기하게도 늘 깔끔하게 정리된 눈썹과 그 눈썹에도 섞여있는 하얀 새치. 이렇게나 자세히 박차장님의 얼굴을 살펴본 것은 그에게 혼날 때 빼고는 없었다.
“차장님.”
“어?”
“차장님 가족은 잘 계세요?”
무슨 충동이었는지, 나는 그렇게 무턱대고 말을 꺼내버렸다. 차라리 조용하게 가면 좋았을 것을 왜 겨우 끊어진 대화의 퍼즐을 이어나갔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박차장님은 지난 몇 분간의 대화처럼, 한참이 지나서야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어갔다.
“아 잘 있지.”
어느새 도시 고속도로를 지나 시내로 들어온 자동차는 빨간 신호 앞에 멈춰섰다. 이제 장례식장도 머지않은 모양이었다. 박차장님은 차가 멈추자마자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면서 끄응, 소리를 냈다.
“아유, 힘들어, 집에만 가면.”
“왜, 왜요?”
저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게는 항상 타박, 구박, 아니면 질책만 하던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준 건 처음이기도 했거니와, 내가 던진 사적인 질문에 대답이 이어지는 것도 처음이었던 것이다.
“와이프가 미국 가고 싶대.”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버릇처럼 남긴 ‘아아~’ 하는 추임새는 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다시 차가 앞으로 미끄러져 나갈 때가 되어서야, 나는 박차장님을 흘끗 쳐다봤다.
“왜요? 친척이 있거나 아니면 사업 같은 걸…….”
“아니, 아니. 우리 첫째가 미국에 있잖아.”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박차장님은 나를 흘겨보고는 다시 앞을 봤다. 그러고 보니 나는 박차장님의 가족 구성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건가?
“아, 자녀분이 미국에 혼자 계세요?”
“기숙사에 있지. 아니, 근데, 저 뭐야. 둘째가 지금 중학생이잖아. 근데 여기서 성적도 그렇고 적응을 잘 못하니까, 첫째 다니는 고등학교에 보내면서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하더라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회사에서 차장 정도 직급을 달면 자녀의 유학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는구나, 그런 생각. 그리고 두 자녀의 유학비는 어느 정도일까,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어머님이 뭘 도와주실 수 있을까? 그나저나 적응을 못해 유학이라니,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해가 갈수록 더 경쟁이 심해지는가 보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는데 왜 그러지……. 조용하던 연못에 돌덩이를 하나 던진 것처럼, 박차장님의 대답으로 인한 생각의 파문이 끊임없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힘들어, 힘들어.”
“아무래도 유학이면 돈이 많이 들죠?”
“돈도 돈이고. 다 가면 난 누구랑 사냐?”
지난 몇 분간의 대화와는 다르게 박차장님의 대답은 점차 빨라졌다.
“그걸 고민해야 한다는 게 미안한거지.”
“미안하시다고요?”
“속 시원하게 그래, 가라, 이렇게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그러질 못하니까.”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할 새도 없이 그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집사람이 그냥 보내달라고 했겠어? 애들을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을 한 거지. 나도 그걸 알지. 그런데 오케이를 못하겠다니까. 미안하고 그래, 미안하고.”
박 차장님은 그 이후로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박차장님을 유심히 살폈다. 희끗희끗한 눈썹과 옆머리, 눈가에 자글한 주름과 툭 튀어나온 입, 앙 다문 입과 턱, 저녁이 되어 까슬하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수염.
[너는 같은 부서잖아. 박차장님한테는 가족이지.]
[가족이요?]
[아니 뭐, 그 나이대 분들은 그런 마인드니까.]
뜬금없이 떠오른 남과장님의 말을 곱씹어보다가 나는 결국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차가 장례식장에 가까워지는 동안 나는 억지로 박차장님에게서 관심을 끄고 야경으로 의식을 돌렸다. 반짝거리는 야경, 시끄러운 도시의 한복판. 불과 몇 초 뒤, 내 의식은 바로 그 왁자지껄하고 화려한 서울의 밤거리 위를 떠돌고 있었다.
별 하나 없는 도시의 밤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이따금씩 웃어 보이는 달 한 조각이 덩그러니.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도로와 그 위를 눈에 불을 켠 채 기어가는 수많은 차들. 누군가는 그 안에 앉아서 셔츠를 풀고 야식을 고민할테고, 누군가는 버스 안에서 나처럼 내일을 두려워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겠지. 또 누군가는, 술잔을 넘기면서 그 순간의 즐거움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을 것이다.
인류가 발전해온 이래 야경이라는 것은 점점 화려해졌다. 그것은 땅 위의 별빛들로 하늘의 별빛들을 가리는 방향으로 화려해졌는데, 하늘의 별이나 땅 위의 별이나 자기 자신을 태우면서 빛을 내는 것은 비슷하다. 하나씩은 하잘 것 없더라도 결국 찬란하고 아름다운 야경의 일부다.
오늘의 수고를 훌훌 털어내는 사람들, 내일의 수고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하늘의 별을 가리고 땅에 떠오른 수많은 별들은 그들의 걱정과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셈이다. 하나씩은 하찮아도 결국 찬란한 야경의 일부. 굳이 먼 미래를 보는 눈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불빛일 거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자기를 태워가며 빛내고 있는 거다.
인류가 발전해온 이래 야경이라는 것은 점점 화려해졌다. 밤하늘은 매일 조금씩 어두워졌고, 그 어두워진 밤 하늘 아래 사람들로 가득 찬 땅의 빛깔은 더 찬란해졌고, 다채로워졌고, 그리고 더 눈물겨워졌고, 결과적으로 더 소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