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인사
할머니가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난 건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던 겨울이었다.
매일 같이 올해의 최저 기온을 갱신하던 12월 말, 할머니는 입원실에서 삼 주간의 싸움을 끝내고 마지막 숨을 뱉으셨다. 입원하신 이후로 눈을 뜨고 고개만 몇 번 끄덕거리시던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으셨다. 내가 유치원에 다녀올 때, 학교을 마치고 돌아올 때,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 나왔을 때, 퇴근 후 한숨을 쉬며 들어올 때, 항상 방문 앞에 서서 미숫가루나 과자를 권하시던 할머니는 그렇게 말없이 눈을 감으셨다.
“폭설이래.”
할머니의 빈소를 차린 첫 날, 머리에 붙은 눈을 털면서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꽤 많은 물방울이 튀고도 아버지의 머리카락에는 여전히 하얀 것들이 달라붙어있었다. 할머니를 보내는 내내 우리 가족은 모두가 그렇게 담담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털어도 그 위에 내려앉은 세월을 털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담담하려고 해도 결국 할머니가 떠났다는 사실은 무겁게 빈소의 공기를 짓눌렀다.
그나마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분위기가 밝아졌다. 모두 똑같이 거무튀튀한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서 손을 잡고, 인사를 하고, 누군가는 곧바로 뒤로 돌아 휘적휘적 가버리고 또 누군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앉아 수저를 집어들었다. 꼭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같았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늘어날 때마다 빈소의 분위기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손님을 맞이하고 필요한 물품을 챙기면서 나는 연신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시종일관 눈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던 엄마의 얼굴에는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을지언정 표정은 밝았다. 사람이 찾아오면 눈물을 흘리다가도 결국 웃으면서 보내기를 반복하셨고, 그 다음 손님은 웃음으로 맞았다가 울면서 보내기도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을 억지로 꾹 참고 계신 건 아닌 것 같아서.
“고생한다.”
저녁이 되자 회사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남과장님을 필두로 부서원들이 대대적으로 찾아왔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회사에 알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공가 결재를 위해서였고, 알리더라도 외조모상이었던 터라 내 지인이 많이 올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밥은 먹었냐?”
“예.”
그리고 남과장님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심지어 박차장님이 인사를 건네고 자리로 가서 앉을 때는 꽤나 놀랐던 것이다.
“오는데 안 힘드셨어요?”
“어우, 지금 밖에 난리.......”
“뭐 그리 멀지도 않은데.”
박차장님은 남과장님의 말을 자르면서 슬쩍 맥주병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가 정작 손을 뻗어 가져간 것은 사이다 캔이었다.
“밥은 먹었어?”
“예, 저는 일찍 먹었습니다.”
박차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그 이후에는 남과장님을 비롯한 다른 부서원들이 한 마디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평소 회사 점심시간과 비슷한 분위기의 대화가 이어졌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 인사팀에서 뿌린 품위 유지에 대한 공문, 노조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대한 불만, 인터넷 검색어를 장악한 연예계 뉴스까지. 그 누구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몸조리 잘하고.”
“옙.”
“푹 쉬고, 좀. 나와서 피곤하다고 졸거나 그러지 말고.”
“옙.”
박차장님은 꼭 잡동사니로 꽉 찬 주머니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다른 물건들을 하나 둘 씩 꺼내놓는 것처럼, 한 마디씩 느릿하게 던지며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카로운 눈이었지만, 평소처럼 험한 말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모님 잘 챙겨드리고.”
“옙.”
“.......”
“.......”
“그, 다음 주에 보자고.”
“옙.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박차장님은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홱 몸을 돌렸다. 회사의 부서원들은 그렇게 한 시간을 채우지 않고 빈소를 떠났다. 마지막 사람이 등을 돌릴 무렵, 나는 후다닥 남과장님의 팔을 붙잡았다.
“혹시 내일 모레 시간 괜찮아?”
“왜?”
“그.......”
사실을 말하자면, 당장 내일 모레 발인 때 운구를 도울 사람이 부족했다. 딱 한 명. 하지만 남과장님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나는 괜찮다며 한껏 웃어보였다.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았다. 거절한 사람이 미안해지는 상황은 나도 원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하루 더 있으니 주위에서 찾아보면 된다는 말로 어떻게든 남과장님을 안심시킨 나는, 그렇게 그를 보내고 다시 조문객들의 응대를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날 밤이 될 때까지도 나는 도와줄 사람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죠?”
“걱정 마라.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도 뾰족한 수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괜한 자괴감이 들었다. 내 부족함으로 가족에게 무거운 짐을 드린 것 같아서, 또 할머니께서 가시는 길도 제대로 못 챙겨드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 날은 눈이 뻑뻑해질 때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연락처를 훑다가 잠에 들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연락할 사람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잘 잤냐?”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마지막 날 아침, 빈소에 찾아온 건 다름 아닌 박차장님이었던 것이다. 위 아래로 새까만 양복을 입고, 새까만 넥타이에 구두까지, 그렇게 운구를 할 준비를 하고 박차장님이 빈소에 나타난 것이다. 놀란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인사를 드리는 우리 부모님께 그는 고개를 푹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나는 박차장님의 잘 잤냐는 질문에 하루가 다 가도록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누워계신 관을 들어주신 박차장님은 빈소를 떠나지 않고 말없이 나와 내 부모님 옆을 지켰지만, 대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뒤 할머니께서 다니던 교회 권사님들이 우르르 버스에 오를 때에도, 마침내 버스에서 내려서 화장터에 들어갈 때도, 화장터 직원 분들이 유리창 너머에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할 때도, 전광판에 할머니의 이름과 남은 시간이 떠오를 때에도 박차장님은 우리 가족의 옆에 있었지만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밥은 먹었냐?”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화장터를 나섰을 때 박차장님은 그 날의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나는 황망히 고개를 가로젓다가, 황급히 머리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앉자.”
화장터 건물의 밖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공원처럼 잘 관리된 잔디밭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건물들, 걷기 편하게 다듬어진 돌길과 군데군데 지어진 벤치까지. 나는 박차장님과 함께,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박차장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돌리며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그는 습관처럼 양복 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어색하게 손목을 털면서 빈 손을 다시 꺼냈다.
“말을 하지 그랬어.”
“예?”
“사람 없다고. 말을 하지 그랬냐고.”
박차장님의 그 말에, 나는 차마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 그, 저, 이런 말들로 입만 뗐다가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마칠 따름이었다.
그 후로 박차장님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까처럼 양복 주머니를 더듬다가 멈추고 한숨을 길게 내쉰 다음에는, 그냥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뿐이었다.
하늘은 맑았다. 나는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걷는 길이 맑고 화창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에는 머릿 속의 그림을 그리기가 참 쉬워서, 그 덕분에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금세 떠오르기도 해서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쉬어라. 푹.”
그렇게 몇 분 뒤 박차장님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일어났다. 나는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보였고, 박차장님은 부장님 앞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절도있는 동작으로 우리 가족에게 허리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화장터를 떠났다.
할머니를 보내는 일은 할머니의 마지막 흔적을 사물함 같은 작은 함에 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나는 오랜만에 서로의 어깨를 한 번씩 어루만지고는 버스에 올랐다. 할머니를 화장하고 모시는 내내 옆에서 찬송가를 부르시던 교회 권사님들도 우리를 따라 질서있게 버스에 올랐다. 꼭 이런 일이 직업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거지였다.
이틀 내내 내렸다는 폭설은 이미 검은 진흙으로 변한 채 도로에서 사방으로 튀기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렀고, 날카로웠던 바람도 한결 부드럽게 정장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한파가 마침내 등을 돌리고 멀어지려는 때, 한 겨울이 서서히 그 날갯짓을 접으려고 하는 때. 할머니를 보낸 그 때에, 나는 버스 창문 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