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화

아파트 한 채가 통째로 내 차지라면

by 봄단풍

드디어 나만의 집이다.


해가 막 떠오르는 푸른빛의 하늘이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맑게 느껴지는 건, 오늘 하루 휴가를 써서가 아니다. 그토록 어렵게 직장을 구한 후 독립해서도 아니고, 운좋게 대출없이 집을 구해서도 아니며, 그렇게 구한 집이 역세권의 31평형 아파트여서도 아니다. 직장이 가까워서도 아니다. 물론 이 조건 하나하나 모두 축복이나 다름없는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이 외에, 정말 설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도로에서 아파트단지로 들어서는 철문을 밀어서 열자 야트막한 언덕길이 나왔다. 단지 내에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것으로 보아 주차장이 지하에 있는 듯 했다. 언덕을 넘자 두 개 동으로 세워진 15층짜리 아파트 두 채가 나왔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용 입구도 눈에 들어왔다. 요즘 신축하는 아파트들을 생각하면 높이 자체는 비교적 소박한 편이다.


잠시 쌍둥이처럼 꼭 닮은 두 아파트 사이에서 숨을 고르고 있자니, 한 쪽 건물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열린 문 너머에서 검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덩치 큰 남자가 시원스러운 몸짓으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아침 일곱시 반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옷매무새도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우승민씨 되시죠? 축하드립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아파트 카드키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앞 뒷면이 모두 하얗게 칠해진 카드로, 아무런 장식도 없는 단순함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에 남자는 양 손을 마주잡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몇 호로 들어가시겠어요? 전부 다 쓰시려나?”


단순히 아파트를 구한 것 외에도, 내가 설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 아파트가 통째로 내 것이다! 그것도 세금 없이, 관리 및 유지비 없이! 층별로 6호실 씩 15층, 총 90세대가 내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집이 된 거다. 나는 서울 한복판에 31평짜리 아파트 90세대를 가진 건물주가 된 셈이다! 어떻게 이런 좋은 기회를 잡았느냐, 하는 것은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운이 좋았다고만 하고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기회가 생기면 뭘 하고 싶었느냐다.


“……아무튼, 앞으로 두루두루 평안히 잘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정장을 입고 온 남자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한 채 뒤돌아섰다. 어쩐지 그 남자가 간 뒤에야 비로소 실감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저 멀리 남자를 태운 검은 차가 사라지는 걸 한참동안 보고 난 뒤에야, 나는 천천히 내 아파트로 몸을 돌렸다.


이삿짐은 아홉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깔끔하게 도색된 입구, 때 하나 없는 투명한 유리문, 그 너머 언뜻 숫자 1이 반짝거리는 엘리베이터를 살펴보다가, 비로소 카드를 대고 아파트로 들어섰다.


갓 지은 건물의 텁텁한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평소같았다면 단박에 눈을 찌푸렸을 냄새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 달콤했다. 이 냄새가 익숙해질 날이 오겠지. 그 때쯤이면 내 삶의 양상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참 행복해질 거야.


일층의 두 세대, 101호와 102호 사이에서 팔짱을 낀 나는, 며칠 후 시작할 내 계획을 상상하며 다시금 크게 페인트 냄새를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