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형! 여기!”
짧게 소리를 지르자 저 멀리 육중한 몸집의 사내가 몸을 돌렸다. 흰 선 두 줄이 그어진 검은색 트레이닝 복 바지 위로 두터운 남색 패딩을 입었음에도 커다란 몸집을 숨기기에는 무리인 듯 싶었다. 그 덩치 때문인지 180이라는 꽤 큰 키가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
“짐은 어딨어?”
“놓고왔지. 일단 한 번 둘러만 보게.”
준상이형은 내가 대학입학 후 만난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만화, 게임, 영화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모르는 게 없는 소위 덕후에 가까운 사람으로,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친해지고 나면 드립이 멈출 줄 모르곤 했다. 소심하다면 소심한 성격이지만 이 형은 항상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신경쓰고 배려해줘서 친구가 참 많았다.
“막상 보면 후회한다. 아, 짐 싸들고 올 걸……하고.”
이삿짐 준비해서 오라는 내 말에 체, 하는 헛웃음으로 대답을 넘긴 형이었지만 내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서울 역세권에 31평짜리 아파트라니까, 아파트. 그동안 형이 자취하면서 전전하던 여러 집들이랑은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고!
속으로는 이미 할 말이 많았지만 백문불여일견, 한 번 보여주는 게 더 낫다 싶었다. 사실 준상이 형이 이 아파트로 데려온 첫 손님이었다. 가장 편하고, 가장 친했으며, 가장 집을 필요로 했고, 다른 무엇보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으니까.
아파트 철문을 지나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르는 데도 숨이 가빠졌던 준상이 형은, 입구에 다다르자 예상대로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괜찮다는 말을 내뱉었다. 직장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그럴듯한 집을 마련했냐는 칭찬도 더불어서. 이번에는 내가 헛웃음으로 대답할 차례다.
형에게는 아직 이 아파트 전체가 내 것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일단 집 안을 구경시켜 준 다음에 놀래켜 줄 요량이었다. 막상 둘러보니 어때, 여기서 살면 어떨 것 같아……. 잠깐. 생각해보니 남자한테 프로포즈하는 느낌이네. 굳이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말해야 하나?
그래도 괜스레 뿌듯했다. 준상이형은 게임회사에 취직한 이후로 몇 달간은 거주할 곳을 찾지 못해 찜질방과 지인의 집을 전전하곤 했었다. 졸업 이후에도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었고, 도움을 요청할 가족은 멀리 해남에 있어서 자취방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형에게 이 아파트는 대학시절과 취직 이후의 내 응석을 받아준 형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어우야 집 좋다. 근데 새집 냄새가 장난이 아니네.”
“금방 빠지겠지. 아니 근데 휴지 한 통 없이 그냥 오냐?”
“집들이는 애들이랑 다같이 해줄게.”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며 형에게 물을 건넸다. 늘 뚱뚱했던 준상이 형은 회사에 취직한 이후로 몸이 더 불어났다. 그래서인지 겨울에도 조금 걷기만 하면 늘 땀을 비오듯 흘리며 시원한 물을 찾곤 했다. 그리고 그건 요 몇 달 못 본 사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일은 할만 해?”
“똑같지 뭐. 요샌 맨날 밤 샌다.”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을까. 굳이 말 안해도 모든 직장인들이 비슷하겠지 싶은 마음에, 나는 말없이 건배하듯 형의 물잔에 내 물잔을 부딪혔다. 예전같으면 어휴 젠장, 하며 욕을 내뱉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겐 내 삶이 달라지리라 믿는 구석이 하나 있으니까.
“형, 여기 살면 어떨 것 같아?”
“좋지. 새로지었다며. 물 새고 이런 건 걱정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한 번 집을 슥 둘러보며 형이 되물었다. 굳이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진 않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형은 아파트 살면 몇 층이 좋을 것 같아?”
“나는……. 1층. 아니 2층이 좋지. 다니기도 편하고 엘리베이터 고장나도 다닐 수 있고. 불나면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되고.”
“그럼 얼른 짐 싸가지고 와.”
혼자 피식하고 웃던 준상이 형은 이내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어쩐지 놀란 표정이 아니라 한심하게 내려다보는 표정이라 내가 더 놀랐다.
“뭐, 2층 집 비었어?”
“응. 지금 2층에 아무도 없어. 들어오면 돼 그냥.”
“좋네……. 근데 내가 돈이 어딨냐?”
아이 참. 정말 답답한 형일세.
“아니 형, 그냥 들어오면 된다고.”
“무슨 소리야, 아파트를 어떻게 그냥 들어와? 전세든 월세든 뭐든 계약을 해야지.”
“그냥 들어오면 돼.”
형은 정말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이 대답을 대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그리 오래 알았는데, 네가 이렇게나 세상물정 모르는 줄은 몰랐다, 실망이다……. 어쩐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그 얼굴을 계속 마주보기가 부담스러워서,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내뱉었다.
“형. 이 아파트 통째로 내 꺼야. 그냥 들어오면 돼.”
준상이 형의 눈이 그렇게 커진 건, 군생활 포함한 대학생활 6년, 그리고 취직 이후의 2년 중에 처음 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