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그 이후로 형에게 설명하는 데에는 정확히 삼십 분이 더 소요됐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능청스레 받던 형은 내가 진지하게 경위를 설명하자 점점 얼굴이 굳었다. 그렇게 설명하는 데에 이십분이 들었고, 계속 같은 질문을 던지는 준상이형을 진정시키는데 나머지 십분이 들었다. “정말 그냥 들어와도 된다고?”
형에게는 굳이 내 환상을 들려줄 필요가 없었다. 이제 퇴근하고 술마실 사람 없다고 불평 안해도 돼, 외로우면 아무 집에나 인터폰 한 번 두들기면 돼.
이렇게 세입자가 한 명 늘었다. 어차피 유지비도 안 들고 세금도 안 드니까. 그저 아파트가 조금 덜 외로워진 셈이다.
사실 나도 아직 실감이 잘 안난다. 이 아파트가 통째로 내 것이라니! 하지만 오래전부터 만약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늘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스타워즈의 광선검이 실제로 생긴다면 어떨까, 슈퍼스타 케이에 나갈 정도의 노래실력이 생긴다면 어떨까, 해리포터의 마법 학교에 다니게 되면 나는 무얼 해야 할까, 하는 공상들과 함께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늘 자리잡고 있던 환상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힘겨운 근무시간을 지나 수당이 잘 나오는지 확인조차 안 되는 야근을 하며 해가 진 뒤 한참 뒤에야 집에 돌아오는 힘겨운 일상. 어디서든 투덜대지 않으면 도무지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 나만의 시간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직장인의 삶.
그래도 그런 삶을, 그 때 그 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풀어갈 사람들이 함께 산다면 버틸만 할 것 같았다. 예고도 없던 야근을 마치고 퇴근한 밤에도 치킨을 시켜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그 날 회사에서 받은 굴욕과 모멸감을 토로하며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사람, 때로는 갑작스런 휴가에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 연락하기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편한 사람들끼리 한 곳에 모여 살 수 있다면.
시험이 어려웠어도 끝나고 난 뒤 모두가 어렵다고 불평하면 기분이 나아지고, 그 힘든 행군도 양 옆에서 똑같이 헉헉대며 걷는 동기가 있으면 견딜만 해지곤 한다. 그런 것처럼, 어차피 견뎌내야 할 현실이라면 똑같이 현실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다면 삶이 더 쉬워지지 않을까, 양념 팍팍 친 닭가슴살처럼 덜 팍팍해지지 않을까…….
아무튼, 이제 첫 세입자를 맞이했으니. 이제 또 누구를 모셔볼까?
띠링.
『야』
마침표도, 쉼표도, 하다못해 자음 한 글자의 이모티콘도 없는 메시지가 갑자기 날아들었다. 스마트폰 메신저를 하다보면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상대가 누구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뭐라고 답장을 해야할지 알 것 같은 느낌.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다.
『ㄱㄱ』
메신저의 내용처럼 서둘러 집 근처 피시방으로 향하자, 이미 내 자리를 맡아놓은 뽀글머리의 남자가 의자를 뒤로 기울인 채 열심히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도수 높은 검은색 뿔테안경 너머의 눈이 숫자 3 모양으로 퉁퉁 부어 있는 것으로 보아 또 잠을 설친 듯 했다.
“뭐해?”
“어, 여자친구랑 잠깐.”
대답하자마자 호준이는 바로 몸을 일으켜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 이 친구도 나도 나이가 서른에 날로 가까워지는데, 피시방에서 만나는 건 날로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큰일이다. 버릇이 되어간다기보다는 그냥 둘 다 피시방이 점점 편해지는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 달 전 새로 나온 온라인 게임을 같이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직장인이다보니 호준이보다 늦게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하는 게임에서 호준이는 나에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맘 편히 게임을 함께 할 수 있는 건 이 친구의 둥글둥글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이 친구도 게임을 그렇게까지 잘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게임할 때만 그런 건 아니다. 몇 달 동안 연락이 없다가 만나도 갑작스럽지 않고, 한 시간 넘게 둘이 아무말을 안해도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친구. 서로의 생존 여부만 알 수 있다면 십 년 뒤에 보아도 서운하지 않을 우정, 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친구.
그런데 이 친구는 왜, 그토록 게임에서 빨리 성장했는가 하면…….
“아, 진짜 사는 거 왜케 어렵냐.”
“왜 또.”
그리고 이어진 한숨. 스물 아홉 살의 대한민국 남성인 정호준씨는 현재 백수다. 정확히는, 퇴직 한 지 육개월이 갓 지난 백수. 일학년을 마치고 다녀온 군대, 휴식기 없이 칼같이 복학. 그리고 내리 여섯 학기를 휴학한 번 없이 다니더니 졸업하자마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의 자랑이 무색하게, 입사 후 약 일년 뒤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오게 된다.
누구도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정작 본인은 고민이 많다. 여태까지 부모님께 순종, 또 그게 적성에도 맞는 것 같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까지 했는데 그 길이 아니었던 거다. 날이 갈수록 자신이 평생 있을만한 곳이 아니라는 확신만 강해졌다고 한다. 그건 지금의 나와 똑같다. 다만 나는 회사를 나가기에는 간이 작았던 거고, 호준이는 행복에 대한 확신이 나보다 절실했던 거다.
회사를 나온 뒤 후회는 없다고, 그는 하루에 한 번 꼴로 메신저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겼느냐면 그건 아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나왔고, 남은 건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 뿐. 그 돈이 동나기 전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데, 문제는 어느 직장을 가도 이전의 회사와 다르지 않을 수도, 어쩌면 더 맘에 안 들 수도 있다는 것. 더군다나, 취업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으려던 호준이에게 아버님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고 한다.
“내가 너한테 물려줄 건물이나, 사업이나, 그런 게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나도 너처럼 퇴직만 앞두고 있는데, 네가 그러면 어떡하냐…….”
가슴 아팠다. 내가 입사 후 한 달만에 고민하며 그려봤던 퇴직 후 모습을, 이 친구는 현실에서 걸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진짜 성공하고 싶다.”
“성공 할 거야.”
버릇처럼 대답하지만 내게도 확신은 없다. 오히려 마음속에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성공이 뭘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할만큼 부를 충분히 축적했으며, 어디든 집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건 성공한 걸까? 내가 하루종일 야근하고 피곤하고 행복과 불행을 따질 시간과 여력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 가족과 부모님이 자랑할 수 있다면 그건 성공한 걸까…….
“성공보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지 않냐? 하고 싶은 일 하는데.”
호준이가 회사를 나와서 하고 싶었던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작가.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래서 호준이는 인터넷에 사이트를 하나 개설해서 시, 수필, 소설, 여행기,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는 중이다. 성격에 안맞는 SNS도 열어놓고 홍보를 하는 걸 보면 꽤 열심히 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냐는 물음에는 한숨으로 대답하곤 했다. 지금처럼.
“야, 솔직히. 수능도 잘 쳐서 대학도 잘 붙어, 군대도 멀쩡히 다녀와, 대기업 들어갔어…….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네 능력은 충분히 증명한 거 아니냐?”
자신감을 주고 싶었는데, 호준이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쉰다. 그 한숨이 고스란히 키보드 위의 두 손에 얹혀진 듯 손가락이 더디게 움직인다. 글을 쓸 때도 저런 모습일까?
“결국에는 나왔으니까. 어떤 사람은 도태됐다고 하더라.”
할 말이 없다. 화가 나거나 기가 찬 게 아니라, 정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럼 네 삶이 도태된거냐, 화를 내기도 어려웠고, 그 말이 맞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었다. 나는 어느 쪽의 대답에도 수긍하지 못하고 멍하니 마우스만 휘적거렸다.
“이번에 새 이야기를 써보려고.”
“뭔데?”
별로 대단한 소재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 하려고 애를 쓰는 기색이 보인다. 하지만 목소리는 게임에서 오더내릴 때보다도 빛나고, 안경 너머 부었던 눈두덩도 초롱초롱해지는 걸 보니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다.
“나한테 섬이 하나 생기는 거야. 근데 그걸 내 아내 이름으로 만드는 거지.”
“그래서?”
“그럼 나중에 외계인이 지구를 보면, 지구 이름을 내 아내 이름으로 지을 거 아냐?”
오. 그것 참.
“여자친구한테 그 얘기 해줘봐. 좋아할 것 같은데.”
줄거리를 통해 얻은 감상을 말해주자, 호준이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알멩이없는 목소리로 어 그것도 괜찮겠다, 라고 하며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기운 없어 보이다가도 글과 여자친구 이야기만 하면 살아나니, 참.
“요즘 아버님은 별 말씀 없으시고?”
“왜 없겠냐. 하루에도 세 번씩 물어보시지.”
“뭘?”
“준비는 하고 있냐, 뭐 하냐. 토익한다더니 잘 되어가냐…….”
게임에 집중한 탓일까, 이번에는 다행히 한숨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어휴, 고생많다며 무미건조하게 대답을 하고 있자니,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호준아.”
“어?”
“집에서 나와보고 싶진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