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4화

아파트

by 봄단풍


신림은 생각보다 멀었다. 행정고시 1차만 네 번째 준비중인 대호는 신림에서 그리 높은 급수는 아니었다. 그의 말로는, 신림은 점점 위로, 그러니까 말 그대로 위치에너지가 큰 곳으로 갈수록 신선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공부를 오래 한 것이며, 꿈을 위한 끈을 놓지 못한 것이며, 보다 싼 집값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신선이라 한다고.


늘 존경과 안쓰러움, 그리고 약간의 부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공간이었다. 그토록 오랜 기간 무언가에 열중하고 연구하는 곳, 허나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너무나 오랜 기간 머물게 되는 곳.


지하철 신림역에서 내려서 초록색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다 내렸다. 별반 달라질 것 없는 도심 풍경이었지만 그 안에 익숙한 인영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청바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린 패딩 자켓.


“이대호!”


대답대신 처진 눈과 입꼬리에 한껏 힘을 주어 들어 올리며 손을 드는 남자. 두터운 패딩을 입었음에도 여기저기 축 늘어진 세월의 흔적이 그의 왜소한 체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고, 아침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더 이상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얼굴에는 그늘이 심하게 져 있었다. 물질적, 심리적인 그늘 둘 다. 살아있는 거냐, 살아있지. 별 의미없는 짧은 인사 속에도 어쩐지 한 구석에 이슬이 맺혀있는 듯한 느낌이다.


“밥 먹었어?”

“이제 먹어야지. 기운이 없다 요새.”


얼마 전 네 번째 행정고시 1차 시험을 마친 대호는 요즘 집에서 요양중이라고 했다. 그의 본가가 아닌 신림에서. 지난 번 보다 가채점 결과가 훨씬 좋았는데, 예상 컷을 웃도는 점수였기에 드디어 몸과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은 듯 했다. 안 그래도 눈이 처져서 순했던 그의 얼굴이 생기까지 내려놓은 듯 더 암울해지긴 했지만.


밥 먹으러가자는 말 한 마디에 대호는 천천히 옆에서 걸음을 옮겼다. 나도 대호도, 어떤 주제로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시험 잘 봤다며, 응 잘봤지. 고생했다, 고맙다. 사실 다른 말을 굳이 더 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어색해 질 때 쯤 대호가 내 직장에 관하여 물었지만, 나도 그냥저냥……. 이라며 대답을 굳이 길게 이어나가지 않았다.


십 분을 걸어 신림의 삼성동 골목 어딘가의 작은 중국집에 도착해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놓고, 대호는 마침내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놓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탁자가 서너개 정도밖에 없는 작은 가게였지만, 그의 말로는 신림에서 탕수육이 맛있기로 소문난 맛집이라고 했다.


“시험 잘 봤다며?”


입을 열기 어려운 건 대호와 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색할 정도로 큰 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조심스러울 뿐이다. 어떤 질문을 해야 그가 시험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을지,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야 그가 자괴감을 덜 가질 수 있을지. 하지만 때로는, 시원하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는 대호에게, 별 다른 말없이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며 물잔을 채워줬다. 나라면 수년간의 고시준비를 제정신으로 해낼 수 있었을까? 계속해서 줄어가는 휴학기간, 아직 졸업까지는 좀 남은 학점, 동아리나 학회 등 다양한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기들과 벌써 취직에 성공한 친구들. 핸드폰을 꺼놔도 들려오는 소식들, 컴퓨터를 버려도 알게 되는 이야기들. 애초에 시작도 하지 못한 건, 그만큼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만약에 시작했다면, 일단 합격만 하면 인생 역전이다! 라는 생각 하나로 버텨낼 수 있었을까?


세숫대야같은 큰 그릇에 자장면이 나오고, 비슷한 크기의 다른 그릇에 탕수육이 나왔다. 그릇크기에 훨씬 못 미치는 양의 자장면을 비비고, 각자 첫 탕수육을 입에 넣을 때까지도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호준이 직장 그만뒀다면서?”


쫄깃한 탕수육을 열심히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호준이는 이제 뭐하는데? 글 쓴대.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다른사람들의 소식들로 번져갔다. 누구는 취직했대, 누구는 이번 학기도 졸업 유예했대. 내 고등학교 친구 누구는 고깃집을 차려서 대표 자격으로 명함도 팠더라! 누구는 외제차를 샀는데, 알고 보니 리스라더라…….


자장면은 금방 줄어들었다. 남은 국수가락 아래에서 처음 먹다 남은 단무지 조각을 발견해냈을 때 쯤, 대호는 천천히 속내를 털어놨다.


“나도 그냥 졸업하고 취직이나 할 걸.”

“에이 왜. 이번에 존나 잘봤다며.”


어색함을 넘기려 욕을 섞어봐도 몸 전체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벗겨낼 수는 없었다. 피식 웃으며 어차피 2차 가봐야 안다고 대답하는 대호에게, 자신감이나 기대감보다는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 몇 개 더 있을 뿐인 축 처진 등산가의 어깨가 보이는 듯 했다. 문득, 앞에 있는 이 친구의 마음에 대한 배려보다 더 커진 궁금증이 생겨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왜 행시 준비 한 거야?”


그냥, 나는 애초에 엄두도 못냈는데 너는 어떤 계기로 준비했나 해서……하는 부가적인 설명을 곁들이려다가 말았다. 괜히 구차하게 느껴질 것만 같아서였다.


“나야 뭐……. 할 거 없어서 한 거지.”


취직은 자신 없고, 대학원에도 뜻이 없고. 공부는 더 이상 할 자신이 없는데 사회생활 역시 그러하니, 집에서 행시 준비를 시켰다고 한다. 공부하는데에 필요한 건 대줄테니 열심히 하라고. 또 나름대로 서울 안의 명문대에 입학했으니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 하나만큼은 다른 것보다 자신이 있기도 했단다.


“차라리 취준을 했으면 동아리도 하고 이런 거 저런 거 해보기도 하고……. ”


행시 준비라는 명목 하에 학교생활마저도 대부분 포기했고, 때문에 행시에 붙더라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경험하나 없다고 탄식하는 대호였다. 물론 행시에 붙기만 하면, 대호가 이렇게 내뱉는 시간에 대한 아까움은 배부른 소리라고 여기저기서 비난을 받게 될 요즘 사회다. 하지만 그렇다고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일일이 설명하기엔 대호 역시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고싶은 걸 해볼 생각은 없어?”


탕수육이 가루가 되도록 한참을 우물거린 대호는, 천천히 한숨처럼 대답을 내뱉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그 말과 함께 마주쳐오는 눈이, 어쩐지 내 눈을 보는 것 같아 나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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