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을 때 해야 할 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단다.

by 봄단풍

지유야, 온유야.


오늘 하루는 어땠니? 아빠는 요즘 매일 매일이 놀랍구나. 아빠가 말하는 요즘이라함은 이 글을 쓰고 있는 과거의 요즘이 아니다. 너희가 살아가고 있는, 너희가 이 글을 읽는 바로 지금을 말하고 있는 거란다. 비록 모진 세상 때문에 당장 너희의 곁에 없지만, 아빠는 매일 매일, 하루 하루 너희들이 살아가는 삶을 지켜보고 있다. 정말이야. 그리고 여기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에 대한 자랑을 매일 늘어놓고 있지. 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우리 딸, 우리 아들. 오늘 하루는 잘 보냈니?


다 지켜보면서 굳이 물어보는 것은, 아빠가 봤을 때 너희들은 참 잘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여서 말이다. 그래서 너희들이 느끼는 하루는 어땠는지 궁금해. 즐거웠는지 슬펐는지, 힘든 일이 있었는지, 그것을 잘 이겨냈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실망했고 그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소소한 기적을 경험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지 말이야. 그래서 오늘 하루의 삶이 참으로 만족스러웠는지, 혹은 그러지 못했는지가 궁금하구나.


너희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라면 아마 살아가며 많은 경험을 누렸을 것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겠지. 하지만 사람이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묻혀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항상 겪는 일이 있다. 바로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 말이다.


모든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은 너희도 잘 알 거다. 다만 어느 순간 너희들 눈 앞에 등 돌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너희가 가진 전부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 돌아서는 이유가 너희가 뱉은 한 마디 말이 됐든, 혹은 너희가 저지른 한 번의 행동 때문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삶이 되는 법이고, 그 삶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것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거란다. 사람은 사람끼리 모여 살게 되어있으니, 가까운 사람이 있든 없든 우리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서 살게 된다. 그건 대체로 행복한 일이다만 나이가 들수록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아빠가 너희를 낳은 다음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겠니. 차라리 우리 네 가족이 농사지으면서 자급자족하면서 살고 싶다고. 혹은 아빠가 아직 세상에 있을 때 하나의 장르나 다름없었던 좀비 사태로 인한 아포칼립스가 실제로 구현되면, 사람들 없는 곳에서 우리 가족끼리 생존하며 사는 것이 가끔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이다. 물론 그 말 직후에 엄마의 매서운 눈빛을 받았지만 말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가까웠던 누군가가 너희를 떠난다면, 먼저 내가 실수한 것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거라. 혹시 그 사람이 실망할 말을 했는지, 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든 행동을 했는지 말이다. 나의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해 그 사람이 실망한 것이 명백하다면 당연히 먼저 사과하고 오해를 풀거나 화해해야겠지. 이는 오히려 쉬운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에 그 사람이 사과를 받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부디 시간이 그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기를 기다리거라.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이 앙금처럼 남아 화해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뿌연 먼지를 차분히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견뎌야하는 일이지. 너희라면 사과를 할 때 진심을 담아 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란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것이 그렇다. 모든 일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인과관계로 이루어져있지는 않은 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잘못이 없는데 누군가 나를 미워할 수도 있는 법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단순한 기분, 혹은 느낌만으로도 너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잘 지내다가도 자기 혼자만의 이유로 네게 거리를 두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순간에 아빠가 택했던 방법을 나눠보고자 한다. 누군가 특별한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할 때, 그래서 혼란스러웠을 때 말이다.


그럴 때는 먼저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회피라는 단어에 맞서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뜻이 내포되어있어 많이들 언급을 자제한다만, 기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회피하면서 살아간다. 누군가 길에서 담배를 피울 때, 처음 보는 사람이 물건을 팔려고 하거나 시비를 걸 때, 신호를 위반한 차량이 횡단보도를 지나가거나 반대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설프게 잘못의 뿌리를 뽑으려는 섣부른 대응이 외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듯 내 잘못이 없는데도 너희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굳이 너희가 좋은 사람이라고 시간을 들여 설득하고 고칠 필요는 없다. 지유야, 온유야. 너희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마음에 안식이 오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있는지를 떠올려 보거라. 우리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챙기기에도 시간은 참으로 촉박한 법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빠도, 너희 둘과의 시간이 아까워서 밤을 새우며 글을 쓰고 있잖니. 심지어 잠든 너희를 바라보는 이 시간도 아까워서 말이다.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과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영영 헤어지는 경우도 있는 법인데, 어찌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떠올리며 시간을 낭비할 수 있겠니. 굳이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을 설득하려고 애쓰지 말거라. 그 사람 본인도 너희를 왜 미워하는지 근거를 찾지 못할 수도 있고, 찾더라도 너희가 고칠 수 없는 부분일테니까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고찰은 이미 수천년 전의 사람들도 해왔던 것이다. 아마 너희도 책을 읽었으니, 옛 현인들의 문구 중에 인간관계에 대한 언급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중에 몇 문장을 골라 곱씹어보는 것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이 된다. 생각해보거라. 굳이 인간관계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단순한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선 속에 우리를 가두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개도 없을 거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수많은 시선 속에서 살아가면서, 때로는 남이야 뭐라하든 옳다고 믿는 신념을 우직하게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삶은 길고, 또 짧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아빠는 짧다고만 느끼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 지금 내게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 병원에서도 몇 주 남지 않았다고 하고, 아빠도 시시각각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프지도 않은 관절은 삐걱거리고, 걸을 때마다 근육도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는 것 같구나. 그래도 끝까지 이를 악물고 너희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누려보고자 한다. 이렇듯,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참으로 부족하다. 그 짧은 시간,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끔한 지적을 통해 자신을 바꿔나가고 고쳐나갈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만, 그렇게 고쳐가는 나 자신조차 싫어하는 사람까지는 신경을 쓸 수는 없지 않겠니. 눈 앞의 관계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너희의 삶의 방식을 믿으며 그대로 행한다면, 오히려 그 고고한 자세를 보고 더욱 더 끈끈하고 소중한 관계가 생기리라 믿는다. 너희는 다름아닌 바로 지유와 온유잖니. 아빠는 너희를 믿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가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사랑한다, 우리 딸, 우리 아들.

오늘 걷느라 많이 피곤했을 너희들의 발을 주무르며,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