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때도 꼭 해야 할 일

삶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by 봄단풍

지유야, 온유야.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하구나. 맑은 날씨처럼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하루였을 수도 있고, 꼭 구름 낀 하늘마냥 흐리멍텅한 하루였을 수도 있겠지. 아빠는 항상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단다. 하늘은 참으로 놀랍고 또 아름답지 않니? 맑을 때나 흐릴 때나, 해가 뜰 때나 질 때나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또 그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우니 말이다. 마치 인생과도 같지. 항상 맑을 수는 없지만, 맑지 않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너희가 살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너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아빠가 보기에는 하늘처럼 다양하게 아름답고 예쁜 모습이란다.


너희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벌써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겠지. 그러다보면 이렇게 하늘을 잠시 올려다볼 시간을 갖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경쟁, 그렇지.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경쟁아니겠니. 그리고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아주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기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시간표, 일정표를 빼곡이 채워서 살지 않으면 게으른 것처럼, 혹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여기곤 하잖니. 그 모든 것이 경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는 없겠다만 경쟁이 그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아빠도 그랬다. 하루하루 꽉 채워 살지 않으면 시간을 버리는 것처럼 느끼는 때. 수능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때가 그랬고, 대학생활 내내,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그랬다. 그러면 직장을 다니게 됐을 때는 좀 덜 했을까? 아니, 전혀. 회사에 다니면서는 더욱 하늘을 바라볼 틈이 없었다. 그 때는 해 뜨기 전에 출근하고 해 진 다음 퇴근 하는 것이 당연했었거든. 이미 하늘조차 새까만 이불을 덮고 누운 때, 굳이 고개를 들어보면 눈을 깜빡거리는 밤 비행기나 채 눈을 감지 못한 별 한 두 개만 보이는 때. 심지어 그렇게 어두운 출퇴근 길에서도 새로운 역량을 갖춰야한다면서 인강을 듣거나 또 다른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기도 했었지.


물론 그런 시간이 나중의 나를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을 내내 그렇게 살라고 하면 필시 오래 살기는 힘들 거야. 이전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꽉 채운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만, 또 때로는 비어있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말이다, 정작 그렇게 일분일초를 꽉 채워 살다 보면 내가 누군지 돌이켜보기 어렵게 되거든. 지금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 뭉뚱그려서 설명하자면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시간은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눈 앞의 파도만 넘겠다는 생각으로 항해하면 결국 같은 곳을 빙빙 돌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사막을 지날 때도 똑바로 앞으로만 걸으면 되겠지, 하고 내 발밑만 보며 나아가다보면 또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있지. 길을 걸어 간다는 것은 중간에 몇 번이고 확인하고, 돌이켜보고, 또 앞으로 가야할 길을 고민하며 걸어가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말인 것이야. 그리고 그 시간은 자극으로 가득 채워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지. 지도를 확인하고 나침반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으려는 그 모든 행위는 가만히 서서 길잡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니, 이렇게 세상의 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멍하니, 자신의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너희도 살면서 아빠처럼 가만히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종종 누렸으면 좋겠다. 때로는 구름 한 점 없이 텅 빈 하늘처럼,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 말이야. 너희들이 바라보는 것이 굳이 하늘이 아니어도 괜찮다. 천장도 괜찮고, 바닥도 괜찮아. 중요한 것은 세상이 주는 자극으로부터 잠시나마 떠난 시간이지. 요점은 그것이다. 자극으로부터의 자유. 가만히 앉아서, 또는 누워서 너희의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 공상과 몽상으로 눈 앞으로 가득 채워보는 시간 말이다. 쉽게 말해 여백. 그래, 삶에도 여백이 필요한 법이다.


하루 하루에도 그런 여백을 두고, 또 살아가는 삶에도 이런 여백을 두었으면 좋겠다. 분명 시간은 귀하고 또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시간에 의미를 두고 꽉 채우기만 한다고 삶이 아름답고 다채로워지지는 않아. 좋은 그림에도 여백이 있고, 널리 듣는 음악에는 간주가 있기 마련이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그저 흘러가는 잔잔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빌딩으로 꽉 들어찬 도시에도 공원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하다 못해 하나님이 만든 이 경이로운 자연에도 때론 빈 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너희의 삶도 그렇지 않겠니.


긴 인생을 넓게 보아도 당연히 그런 여백들이 필요하고, 하루 중에도 그런 여백을 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 말이다. 핸드폰이나 컴퓨터, 책은 물론이요 음악과 사람들과의 대화 등 모든 감각의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워서, 혼자 온전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 아빠는 아침에 일어난 직후의 5분, 그 다음 잠에 들기 직전의 5분을 추천한다. 아침에 갖는 여백의 시간에는 그 날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게 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놓칠 뻔한 중요한 일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잠들기 전 갖는 여백의 시간에는 하루 종일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돌아보며, 혹시나 나중에 반복하게 될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꼭 그 시간마저도 뭔가를 생각해야 해, 뭔가를 떠올려야 해 강박을 갖지는 말려무나. 공상으로 채워도 좋고, 몽상으로 채워도 좋다. 그러면서 삶을 살아가는 아이디어를 낚아챌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여백의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시간이야. 점점 자극적이고 저속해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지. 점점 더 퇴폐적이고 허울없이 반짝거리기만 하는 것들이 시선을 끌고 그럴수록 점점 더 저속해지는 요즘 세상 말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람들의 우매한 흐름에 휩쓸리거나 폭력적인 흐름에 나도 모르게 편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길게 쓰긴 했다만, 결국 요점은 하나다. 아침과 밤에 오 분씩,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생각에만 잠기는 시간을 꼭 가지거라. 원한다면 더 길게 시간을 보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주는 휘황찬란한 것에서 벗어나, 눈을 감고 온전히 너의 머릿속, 때로는 가슴 속으로 침잠하는 것이다. 그래, 그 여백이 주는 시간은 짧을지언정 너희의 남은 인생에 주는 효과는 절대 짧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확신한다.


하지만 이 아빠도 도저히 너희들이 주는 자극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수가 없겠더구나. 너희를 바라보는 것, 너희의 목소리와 숨소리를 듣는 것, 그보다 자극적인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니? 그래서 지금도 밤을 새워 글을 쓰면서, 너희의 머리를 쓸어주고, 등을 토닥이고, 또 어디 잠을 깨우지 않으면서 만질 수 있는 구석이 없나 고민하고 있다. 아, 이렇게 앞으로 수십 년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유야, 온유야, 너희는 어쩜 자는 모습도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단 말이니.


보고 있는 지금도 보고 싶구나, 듣고 있는 지금도 듣고 싶구나. 지유야, 온유야. 아빠는 항상 곁에 있을 거란다. 눈 앞에 당장 아빠가 없어도, 아빠는 곁에서 너희를 보고, 듣고, 만지고 있으마. 그러니 담대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간혹 멍하니 있는 시간도 꼭 갖도록 하려무나. 그러면 아빠도 옆에서 멍하니 너희를 바라보고 있을테니.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지금도 너희에게서 눈과 손을 떼지 못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