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야, 온유야.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니! 지금까지의 삶은 어땠니, 경이와 놀라움이었니, 혹은 불안과 두려움이었니? 앞으로 다가올 삶은 또 어떠니? 기대와 설렘이니, 걱정과 한숨이니? 아마 너희가 읽는 순간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지. 어느 때에는 행복으로 가득찬 것이 세상 같다가도, 어느 때에는 날 해코지하려는 숙적과 함정으로 가득찬 것이 세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걱정마라. 너희가 두 발을 붙이고 담대하게 버텨만 낸다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 이 세상이기도 하단다.
오늘은 그런 웅장한 이야기 말고 소소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너희에게 주는 작은 당부이기도 하지. 아빠가 글에서 당부를 한 적은 별로 없었지? 무엇이냐하면, 바로 발톱을 잘 깎는 일이다. 발톱, 그건 정말 관리를 잘 해야하는 것이지. 잘 관리해야 예뻐 보이기도 하고, 또 위생적으로도 바람직하긴 하다만 그것이 발톱을 잘 깎아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주기적으로 해야하는 일 중에 귀찮은 일 중 하나이기도 하지, 발톱을 깎는 일은 말이다. 아마 너희도 이제 스스로 손톱과 발톱 정도는 깎을 수 있게 됐을테니 알 것이다. 손톱보다 발톱이 훨씬 어렵지 않니?
일단 시작하는 자세부터가 불편할 거다. 의자에 앉아서 하자니 발이 너무 먼데다가 바닥 여기저기 발톱이 뿌려질테고, 바닥에 앉아서 하자니 허리나 골반이 불편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너희가 공감을 할지 모르겠다만, 나이가 들수록 보통은 배가 나와서 점점 숙이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아빠도 아프기 전에는 숨 좀 참고 허리를 숙이면 발톱 정도는 깎을 수 있었다만, 그래도 항상 반성하곤 했다. 운동 좀 할 걸, 배 좀 들여보낼걸, 하고 말이다.
어떻게든 편한 자세를 잡았더라도 발톱을 깎고 다듬는 것 자체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깔끔하고 싶다는 이유로 가장자리를 너무 깨끗하게 잘라내면 나중에 내성발톱이 생겨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얀 부분을 많이 남기자니 그리 깨끗해보이지도 않지. 가장자리를 남기면서 하얀 부분을 깎아내려고 하면, 깔끔하게 발톱을 잘라낼 각도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겨우 각도를 찾아냈더라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내나가 발톱 아래 살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따끔한 통증에 몸서리를 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자른 발톱을 붙일 수도 없으니,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것은 둘째치고 건드리기만 해도 계속 아픈 상처가 되어버리지.
그럼에도 발톱은 반드시 깎고 다듬어야 한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말이다. 기르다가 금이 가거나 부러지기라도 하면 이걸 떼어내야하나, 밑에서 새로운 발톱이 자라길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부러진 각도에 따라 자다가 이불만 스쳐도 벌떡 일어나는 통증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발톱을 다듬지 않고 평소에 딱 맞는 신발을 신다가는 한 발가락에서 쌍둥이처럼 둘로 갈라진 발톱을 구경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집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 혹은 너희가 사랑을 나누는 상대에게 발톱으로 상처를 남기게 되면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
하지만 그 발톱을 관리하기 정말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의 발톱을 다듬어줄 때다. 자세도 내가 편한 자세로 깎아줄 수 있고, 필요하다면 가까이에서 보면서 조심조심 다듬어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려는 일의 시작과 준비가 수월해지면, 그 이후의 작업은 물론이요 추가적인 서비스에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기 마련이다. 세세하게 훑어보면서 튀어나온 부분을 다듬어준다든지 말이다. 내가 내 발톱을 다듬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데 작업 환경도 편리하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발톱을 다듬어 준다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위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일단 발톱을 깎아주고 다듬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꽤나 아낀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아빠는 엄마의 발톱을 다듬어주곤 했단다. 발톱도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른데, 엄마의 발톱은 유독 다듬기가 어렵지 않았겠니? 재미삼아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사명감을 갖고 하게 됐지. 왜냐하면 너희 엄마와 만나고, 결혼하고, 곧 얼마되지 않아 엄마가 너희를 뱃 속에 키우게 됐거든. 배가 점점 불러오니 혼자 발톱을 깎기가 더욱 어려워져서, 아빠가 항상 도와주게 됐단다. 아빠가 나름대로 깔끔하게 다듬어주기 위해 유심히 발을 보고 있으면, 엄마는 부끄러우니까 자세히 보지 말라며 혼내기도 했었지.
너희의 발톱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엄마 배에서 나올 때 이미 너희에게는 정말 고사리 끝부부마냥 작은 발가락과 발톱이 붙어있더구나. 갓난아기인 너희가 얼굴을 쥐어 뜯기라도 할까봐 손톱을, 또 이불이나 손수건에 쓸려서 아플 까봐 발톱을 열심히 깎아주곤 했지. 처음에는 너무 얇아서 작은 가위로 잘라내야 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땀을 어지간히 흘렸더랬지. 나중에는 불 꺼놓은 침실에서도 자를 정도로 숙련되기도 했는데, 그렇게 자른지 얼마 되지 않아 너희 발톱은 금방 두꺼워지더구나. 그건 너희가 일어나서 걷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가만히 보면 발이란 것은 꽤나 역설적인 신체부위다. 우리는 발을 통해 세상으로 나간다. 길을 걷고, 뛰고, 나아가서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개척하며, 목적지로 마음 먹은 곳에 다가간다. 그리고 사람인 이상 삶의 목적지는 필시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렇게 오래도록 험한 길을 여행하는 발은 고작 그 끝에 달라붙은 몇 조각의 발톱 때문에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다. 참으로 재밌지 않니? 더욱더 재밌는 것은, 바로 그 발톱을 다듬는 것은 스스로 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해줄 때 훨씬 편하게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아빠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자신의 발톱을 쉽게 관리하는 방법은 바로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과도 같고, 관계를 정립하는 방법과도 통하는 바가 있으며,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법, 인생을 살아가는 법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내가 먼저 허리를 숙이고 다른 사람의 발톱을 다듬어주는 것이다. 너희를 임신했던 엄마를 위해 내가 허리를 숙이고 땀을 흘렸던 것처럼, 너희들의 발톱을 깎아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노파심이 드는 것이, 그렇다고 무조건 순종하고 굴종하라는 것은 아니다. 허리를 숙인다는 표현이 다소 헷갈릴 수도 있겠다만 다른 사람 앞에서 아래를 청하며 섬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칫하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유의하도록 하거라. 목적 혹은 저의를 둔 호의와 선의는 그 의도가 상대에게 명백히 보이는 법이다. 그저 그 사람을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그 사람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고, 또 가만히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다.
너희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아아, 지금도 잠깐 눈을 돌려 잠들어 있는 너희의 발가락을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나 둘 셋 넷 다섯. 너희는 손가락 다섯 개를 세면서도 열까지 세고 만세를 하곤 했었지. 아, 계속 보고 싶은데. 이 발가락들이 쭉쭉 자라나서 멋지고 예쁜 구두를 신는 것도 보고 싶은데, 예쁘게 다듬은 발톱 위에 귀여운 스티커나 물감을 칠하는 것도 보고 싶은데 말이다. 비록 지금처럼 내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아빠는 항상 너희의 곁에서 보고 있을게. 직접 보지 못하는 모든 실망감과 아쉬움은 아빠가 가지고 갈테니 너희는 그저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을 향해, 또 사람을 향해 나아가거라. 그렇게 너희의 삶을 담대히 살아 나가길, 아빠가 곁에서 지켜보며 항상 기도하고 있을게.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너희의 깎은 손톱, 발톱마저도 버리기 너무나 아까워서
발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고 있는 주책맞은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