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지적을 받을 때 해야 할 일

겸손에 관하여

by 봄단풍

지유야, 온유야.


어제도, 오늘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우리 지유야, 온유야.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니? 밥은 꼭꼭 씹어 먹고 있는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또 때로는 공부를 잊고 스트레스도 잘 풀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사실 뭘 굳이 잘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눈 앞에 주어진 과제를 잘 해결하고,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긴 인생길을 계획하면서 묵묵하게 걸어나가면 잘 하고 있는 것이야. 너희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말이다.


너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끝없이 되새겨야 할 덕목이 있단다.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겠지만, 그건 바로 겸손이다. 사회적으로도 참 중요하면서도, 정작 진짜 그 덕목을 온전히 실천하는 사례는 드물지. 오죽하면 겸손은 힘들다는 노래도 만들어졌겠니. 겸손이 중요한 것은 너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관계적인 측면에서 아주 중대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덕목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너희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고, 사람들로부터 외롭게 떨어져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겸손은 무작정 자신을 낮추는 것과는 다르다. 만약에 네가 오랜 시간 노력한 무언가에 대해 칭찬이 주어졌다면, 그것에 아니라고 손사래치기보다 감사하다며 받는 것이 맞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시라며 겸양을 떨며 거절해야 할 칭찬은 너의 노력 없이 너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것일 때다. 왜냐하면 그런 칭찬의 태반은 빈 말이요, 남은 절반의 절반 정도만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탄일진대, 그것을 받는 것은 네 능력에 대한 교만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누군가 아빠에게 ‘잘생겼다’라는 칭찬을 했다면, 나는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라면서 받지 않았을 것이다. 웃으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유지를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곧장 그 사람에게 똑같은 칭찬을 돌려줬겠지. ‘어쩜 늙지를 않으시네요’, ‘잘생긴 사람 눈에는 잘생긴 사람만 보인다더니.’ 식으로 말이다. 아빠가 이 칭찬을 받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는 알고 있거든. 아빠의 장점은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설령 아빠가 정말 그런 축복을 받고 태어났더라도 아빠는 거절했을 것이다. 아빠가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 아빠의 글을 읽고 ‘잘 읽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이런 칭찬을 했다면 아빠는 함박 웃음으로 그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사했겠지. ‘감사합니다’, ‘제게 정말 큰 의미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진심을 담아서 말이야. 그것은 아빠가 글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칭찬이 정말 진심이라고 믿어서도 아니다. 외모에 대한 칭찬만큼이나,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칭찬도 당연히 빈 말일 수 있지. 아빠가 그런 칭찬을 받는 것은 적어도 빈 말일지언정 그 평가에 대해 내가 떳떳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내가 글을 잘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얘들아, 칭찬에 대한 것은 겸손이라 논하기에는 너무나 얕다. 저런 것들은 그저 겸양을 표현하는 방법 중 몇 가지일 뿐이야. 아빠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겸손은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짜 겸손은, 내가 듣기 싫은 지적이나 험담을 들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살면서 정말 힘들었던 것도 바로 타인의 지적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단다.


지적을 구분해야 할까? 진심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 지적, 진심으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지적, 혹은 그냥 내가 꼴보기 싫어서 하는 지적, 혹은 그냥 배알이 꼴려서 하는 지적. 앞의 칭찬처럼 타인의 지적도 이를 나누고 다른 대응책을 생각해야하느냐 말이다. 그것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줄도 모르겠어. 칭찬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기준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적을 구분하려면 그 기준은 반드시 그 지적의 주체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생각, 마음, 의도, 그 모든 것들을 우리가 알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지적을 구분하지 않기를 권장한다. 지적은 지적일 뿐이야. 우리가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는 가장 현명한 자세는 감정을 섞지 않는 자세다. 네가 동의를 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군요’ 라고 말하며 넘어갈 수 있는 유연한 자세 말이다. 그리고 진짜 겸손이 빛나는 때는 그 때다. 설령 네가 동의할 수 없는 지적일지라도,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일 수 있는 여유. 그래, 겸손은 결국 네 맘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때로는 상대방의 의도가 보일지라도, 또 때로는 그 지적에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자세 말이다.


왜냐하면, 지유야, 온유야. 지적이 주어지는 것 자체가 실은 감사한 일이란다! 누군가 너에게 지적을 한다는 것은 너를 지켜봤다는 것이고, 너를 지켜봤다는 것은 너에게 시간을 투자했다는 일이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그 감사에 의미를 둬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니 유념해라. 진정한 겸손은 나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내가 이룬 것, 또는 나에 대한 지적이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이다. 그 지적이라는 것에 휘둘려서도 안 되지만 대충 흘려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먼저 주어진 지적과 평가의 내용과 관계없이 감사를 표한 다음, 그것의 수용 여부는 네가 홀로 차근차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점검하도록 해라.


다시 한 번 강조하마. 사람들이 추앙해 마지 않는 겸손의 미덕은 너희가 칭찬을 받을 때가 아니라 지적을 받을 때 나타날 것이다. 어떤 지적이 주어지든, 또 누가 그런 지적을 하든 너희는 여유를 가지고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과 지적에 감사드린다는 표현을 하거라.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고치든, 혹은 그 지적이 악의를 가진 것이라 판단하고 무시하든 그것은 철저히 너희가 개인적으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적을 한 사람에게 너희가 반박하기보다 그 지적이 나온 근거와 배경을 들으며 그만큼이나 너희와 너희의 결과물을 지켜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다.


괜히 글이 무거워졌구나. 솔직히 말하면 아빠도 너희에게 말해준 것들을 제대로 지키기 힘들었다. 그러니 부담은 갖지 말거라. 그저 이건 아빠가 살면서 느낀 바를 편하게 쓴 것이니, 이 또한 아빠의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다. 그렇다, 이 글을 통해 한 번 연습해보는 것도 좋겠구나. 여유를 가지고, ‘그래, 아빠는 이렇게 생각했군요. 비록 요즘 세상은 아빠가 있던 세상과 다르지만 말이에요.’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또 강조하고 싶구나. 너희에게 지적을 하는 사람이 너희를 지켜보듯, 아빠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너희를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 너희와 이렇게 재밌는 말을 주고받으며 평생 함께하고 싶었는데. 글을 쓰느라 잠시 눈을 모니터와 노트로 돌렸는데 벌써 너희가 보고 싶구나. 지유야, 온유야. 아빠의 삶은 이렇듯 이래저래 부족했고 또 미숙했다. 너희도 살아가며 느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만 기억하렴. 너희는 이미 너희 아빠보다 훨씬 낫다. 아빠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너희는 아빠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었어. 그러니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말고, 항상 고민하며 살도록 하려무나.


오늘도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내일도 너희를 사랑할, 그리고 너희가 이 글을 읽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희를 사랑하고 있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