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도 있단다.
지유야, 온유야.
여태까지 역시나 정말 멋지게 살아왔더구나! 역시 아빠는 필요없는 걱정을 예로부터 참 잘해왔다는 것이 너희 둘의 삶으로 인해 여실히 증명됐어. 학교도 졸업하고, 대학을 갔든 안 갔든 이제 둘 다 당당히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기쁘다. 너희 둘이 자리한 그 곳, 혹은 벌어들이는 수입, 사람들의 기준에서의 너희 위치와 수치가 어떻게 되었든 지유와 온유, 너희 둘은 아빠가 누구에게나 꺼내서 보여주고 싶은 자랑이란다.
지금의 그 곳까지 다다르기에 정말 고생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너희에게 조금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나. 아마 앞으로의 삶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될 수도 있단다. 그렇지 않은 축복이 너희에게 함께하길 항상 바라지만, 고난과 역경은 또 다른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빠는 잘 알고 있기에, 너희도 그걸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단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느끼겠지만, 혹은 이미 시작했다면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답답하고 억울할 일들이 참 많이 생긴단다. 그 일이 크든 작든 말이지. 때로는 사소한 오해로부터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에서 빚어진 사고일 수도 있지. 또 가끔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악의에서 비롯된 사건일 수도 있고 말이야. 이번에 아빠가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운가, 이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언제나 그렇듯 아빠의 말은 정답이 아니니 너희들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시작하기 전 아빠가 잘 아는 어떤 사람에게 벌어졌던 일을 얘기해줄게. 아빠의 잘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야. 그 사람도 아빠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사랑스러운 아이를 가지게 되었단다. 첫째를 낳고 둘째를 낳게 되었을 때의 일이야. 그 분은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자 곧바로 부서 상사에게 이를 알리고, 예상 출산 시기와 그에 맞춘 배우자 출산 휴가 계획을 공유했단다. 부서에서는 당연히 축복하는 분위기였고, 그 당시 휴가에 대한 결재권을 가지고 있던 상사도 별 탈 없이 승낙했지.
그로부터 몇 달 후 아내가 다행히 병원에서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에 들어가자, 이 분은 계획대로 상사에게 배우자 출산휴가를 사용하겠다 이야기했지. 하지만 하필이면 출산을 한 직후 그 상사의 마음이 바뀌었단다. 그 당시에는 바쁜 일이 있으니 두 달정도 후에 쓰면 안 되겠냐고 한 거야. 예를 들어, 그 분이 1월에 둘째를 낳았다면 3월에 출산휴가를 쓰면 안 되겠냐고 역으로 물어본 셈이지. 법적으로 그 분은 그냥 출산휴가를 강행해도 괜찮았단다. 하지만 그 분은 굳이 회사에 적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다른 부서원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어. 그래서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힘들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 여기까지는 괜찮았단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지. 아까 내가 1월에 아이를 낳았으면 3월로 출산 휴가를 미뤄달라고 한 격이라고 비유했었지? 그랬더니 2월 마지막 주에 인사발령이 난 거야. 3월 1일부터는 다른 부서로 이동해서 다른 업무를 보라는 지시였지. 그 분은 몹시 당혹스러워했어. 왜냐하면, 새로운 부서에 가면 최대한 빨리 새로운 업무를 익혀야 했고, 그러려면 배우자 출산휴가를 쓰기에도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니? 그 때 이 분에게 훨씬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단다. 바로 그 인사발령을, 출산휴가를 미뤄달라고 부탁했던 상사가 요청했다는 소식이었지. 이 분 입장에서는 기껏 요청에 협조를 해줬더니 뒤통수를 맞은 격이 아니겠니. 당연히 상사에게 찾아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당신이 양해를 좀 해라.” “우리 부서는 바쁜 부서라, 출산휴가를 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당신의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말도 안 되는 답변이었다.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양해를 하라니. 더군다나 그럼 다른 부서는 출산휴가를 써도 괜찮다, 그말인즉슨 다른 부서는 바쁘지 않다는 말이니? 그건 그 사람을 모욕하면서 다른 부서도 모욕하는 최악의 답변이었어. 하지만 인사팀에서는 이미 내놓은 공문을 회수할 생각이 없었지. 그 분은 이를 악물고 새로운 부서에 갈 수밖에 없었어. 게다가 그 분이 출산휴가를 써야한다는 소식은 새로운 부서장은 처음 듣는 얘기였지.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분은 출산휴가를 결국 다 쓰지도 못했단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을텐데 말이야. 그 분을 다른 부서로 보냈다는 그 상사 말이지, 종국에는 그 분이 어딘가에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놓을까봐 겁이 났던 모양이야? 그 분에 대해서 이런저런 뒷담화까지 하기 시작한 거야. 일을 못한다, 답답하다, 그래서 요청했다는 식으로 말이야. 출산휴가를 보내주기로 했다가 막상 보내려고 하니 안 되겠어서 발령을 요청했다, 그런 소문으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걱정했던 거지. 그 때문에 그 분은 그 다음에 오랜 시간을 더 힘들어야 했어.
자,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 일이 벌어졌던 건 2025년이니, 너희가 이 글을 읽을 때로부터 아마 십수년은 지난 이야기일 거다. 이십년이 더 지났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 때에는 없을 상황일 수도 있지만, 너희 세대는 또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억울한 일을 겪을 수가 있단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억울한 일이 생겼다면 그 즉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명하렴. 적극적으로 말이다. 이 세상을 험악하게 만드는 건 악의를 가진 누군가 때문이 아니야. 저마다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위로 올라가야한다고 착각한 채 얕은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그렇게 서로를 잡아당기고 있는 수백 명의 무고한 사람들 때문이지. 사회생활에서 무조건 참고, 순응하는 것은 절대로 능사가 아니다. 네가 억울한 사유로 누군가에게 짓눌리고 있다면, 너를 누르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뭔가 오해를 하고 진심으로 살기 위해 너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당연히 해명해야지. 즉시, 가장 빠른 시일에, 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게 되지도 않고, 모든 일의 인과 관계가 눈에 잘 보이게 이루어지지도 않지.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네가 해명을 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네가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어. 참을 수밖에 없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굳이 그 분함과 화를 오래 갖고 있지 말고 떨쳐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풀지 못한 억울함은 반드시 복수심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런 감정은 쉽게 버리기가 어렵다. 이후에 찾아온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불현듯 떠오르면서 너의 평화로운 풀밭을 순식간에 불태우는 매서운 불길이 되기 마련이야. 아무리 작게 숨기고 아무리 땅에 파묻어도 네 의식이 닿기만 하면 타오르는 불길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시 나중에 너에게 화가 된다.
아까 전 이야기했던 억울한 일을 당했던 그 분도 한참을 고민했지. 회사 안과 밖의 신고할만한 부처를 찾아 상담하면서 신고를 마음먹고 증거를 모았고, 실제로 변호사도 도와주겠다고 했단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결과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았어. 이유가 뭐였을까?
이미 출산휴가를 쓸 수가 없었거든. 법적으로 시한이 지나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신고는 결국 그의 뒤통수를 때렸던 상사를 혼내주는 목적으로 진행이 될텐데, 그는 그것이 의미없다고 느꼈어. 사실 그 때의 아빠는 다르게 생각했지. 잘못한 사람을 응징하는 것도 신고의 충분한 사유가 된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그렇게 했다면 그 상사를 아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
그 사람이 참은 이유는, 그런 분노의 소용돌이에 잠식되고 싶지 않아서였단다. 신고를 하게되면 조사를 하고, 조사 후에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릴텐데 그 긴 시간 내내 복수심을 불태우며 살아야 하잖니. 그리고 신고를 당한 사람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까? 온갖 더러운 술수를 부리겠지. 더 안 좋은 소문을 내거나, 높은 지위를 활용해 그 분의 앞길을 가로막는 등 나쁜 수작을 부릴테고, 그렇다면 또 그런 공작들에 대항하기 위해 더 긴 시간을 싸워야 했을 거야.
그 분은 기도했단다. 복수와 응징은 온전히 맡겨드릴테니, 부디 마음과 삶에 평화를 달라고.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 그 사람은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업무와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며 조용히 일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었어. 덕분에 그 이전부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수당을 받으며 가정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단다. 그것이 해피엔딩일까? 알 수 없지.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아마 그 분이 직접 응징에 나서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겠지?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속이 시원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 분의 삶이 행복했을까? 아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일이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의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기 때문도 있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해.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지, 이 세상을 만든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 당연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올바르게 바로잡으려 노력해야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 상황을 감안했을 때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르게 너의 분노를 내려놓고 주어진 일에서 너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다. 그 효과적인 해결책이라 함은 너의 삶을 보다 덜 불행하게 만드는, 궁극적으로는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이 될 거란다.
물론 쉽지 않을 거다. 결국 분한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참고 견딘다는 뜻이고, 그것은 순전히 잊어버린다는 것과도 어떻게 보면 상통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지. 그토록 억울한 일은 가만히 잊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딱 너희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정도로만 기억하도록 하거라. 그렇게 해야 너희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에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언제나 기억하렴. 아빠의 말은 정답이 아니고, 그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참아야 하는 순간과 맞서 싸워야하는 순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텐데, 그것은 아빠가 지금 말해줄 수가 없구나. 다만 자연히 알게 될 거다. 또 너희가 살아가며 자연히 그 선을 그리게 될 거다. 난 너희가 분명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으로 기준을 세울 수 있으리라,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단다. 그러면 오늘도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자꾸나.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너희들이 어떤 순간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너희는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란다.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너희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