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를 찾거라
지유야, 온유야.
오늘은 아빠가 너희와 하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 하면서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사실 하나로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워낙 많으니까 말이다. 너희와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싶고, 극장도 가보고 싶었고, 여행하며 여기저기 좌충우돌 부딪혀도 보고, 또 근처 카페에서 각자 보고 싶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어. 또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피아노를 치면서 영상도 찍어보고 싶었지. 아빠는 이 아픈 순간에도 철이 덜 들어서 말이다, 너희와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단다.
그리고 그 중에 또 하고 싶었던 것은 게임이다. 아빠가 아직 세상에 발 붙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게임이 참 많이 발달해서 말이다, 혼자서 하는 게임도 있는가 하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하는 게임도 많지. 그래서 아빠는 너희가 자라서 게임을 하게되면, 같이 하면서 너희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 또 함께하는 그 자체로도 너무 즐거울 것 같아서 말이다. 협동하며 서로 의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아쉬움이 있다면 서로 가르쳐주고, 그렇게 게임을 통해 너희들의 긍정적인 역량을 길러주며 즐거움도 누리고 싶었단다.
다만, 아빠가 게임 이야기를 한 건 그냥 아빠의 소원만 얘기하고자 그런 것은 아니다. 너희에게 진짜로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다. 너희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거라. 아무 때나, 너희가 필요할 때 능동적으로 시간을 갖고 할 수 있는 취미 말이다. 후에 다른 글에서 또 쓰겠지만, 그것은 술처럼 너희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누가 봐도 이상하다 볼 수 없는 건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취미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원할 때 능동적으로 찾아서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 그렇다. 너희도 살아가며 언젠가는 직장을 갖고 회사를 다니며 하루의 절반을 그에 쏟을텐데, 그렇게 되면 필히 그런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 취미는 너희가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 될수록 더욱 더 필요한 것이다.
아빠가 처음으로 혼자 해외에 나갔던 날이 있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보다가, 서울 시내 아파트 상가만한 크기의 장난감 가게를 본 적이 있다. 위로 5층, 지하로 두 개 층이나 있는 큰 빌딩이 전부 장난감과 간식을 파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놀라웠지.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곳이니까 말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작은 매장으로 있을 수는 있어도, 아예 빌딩 하나가 다양한 장난감을 판매하는 곳은 웬만해서는 찾기 힘들었거든. 서울 근교에 나가야 보일까 말까 했지.
하지만 그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 안의 광경이었다. 그래, 너희도 생각해보거라. 오층 짜리 장난감 백화점이 있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보이는 광경은 어땠을 것 같니? 여기저기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자제시키려고 노력하는 부모님이겠지? 어딘가에서는 아이가 떼를 쓰고 울고 있겠고, 또 어딘가에서는 하나만 사라고 당부하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올 거다. 우리가 보통 예상하는 장난감 가게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 곳은 달랐다. 아빠가 처음 마주친 사람은 어떤 할아버지였다. 던지면 무조건 돌아오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비행기를 던지고 노는 할아버지말이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랬다. 나이, 성별, 인종과 관계 없이 말이다, 다들 섞여서 놀기 바빴어. 정장 차림의 아저씨는 외투를 벗고 모형 자동차를 움직이고 있었고, 스웨터 입은 아기 엄마는 레고를 조립해보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한 장난감을 던지고, 또 작동시키면서 뛰어놀고 있었고, 심지어 직원마저도 바퀴달린 외발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이런 저런 장난감을 시연하고 있었지. 실로 장난감 천국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광경이었다. 물론 가장 달콤했던 것은, 노년의 부부가 젤리 코너에서 서로의 취향에 맞는 맛을 고르면서 킬킬거리고 있었던 장면이었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도 사고 싶었던 것이 참 많았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검도 있었고,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술지팡이, 안고 자면 딱 좋을 것 같은 강아지 인형, 차체가 뒤집혀도 그대로 굴러가는 자동차,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 실로 아빠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물론이고 그냥 호기심으로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지만 아빠가 손을 내밀지 못하고 눈으로만 쳐다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하고 싶은 장난감을 만져보고, 때로는 줄을 서서 기다리며 눈을 빛내고 있었단다.
생각이 참 많은 아빠는 그 때 너희의 할아버지를 떠올렸단다. 아빠가 어렸을 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나온 적이 있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사람과 괴물과 외계인이 각자 자원을 모아 군대를 양성해서 싸우는 전쟁 게임인데, 너희 할아버지께서는 퇴근하고 오면 그 공략을 출력까지 해오셔서는 공부하고, 우리가 잘 때 게임을 하곤 하셨단다. 하지만 때때로 너희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혼내곤 하셨지. 다 큰 어른이 무슨 게임을 하고 노냐며 말이다. 그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빠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다. 그래, 나이가 들면 게임도 안하게 되겠지, 말이다. 아빠는 아직도 게임을 하다니 신기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당연히 생각을 고쳐먹었지. 애초에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놀이라는 것, 즉 능동적인 스트레스 해소라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그 놀이라는 것은 아이든 어른이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어른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놀이다. 너희도 살아가며 느끼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포기해야하는 것들, 희생해야하는 것들, 또 참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 울분을 점점 더 주체적으로 해소하고, 건전하게 풀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오히려 어른의 놀이일수록 더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봤다. 나이들었으니 그만하고 얼른 철이나 들어, 가 아니라 나이먹고 고생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즐길 줄 알아야지, 그렇게 말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래, 너희도 능동적인 너희의 놀이를 반드시 찾아보도록 해라. 그런 수단을 찾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매번 부정한 해소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때로 폭식이나 음란함과 같은 일차원적인 욕구 해소로 빠지게 될 수도 있고, 술이나 담배 같은 몸을 해하는 것으로 향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빠에게는 게임이 있었고, 또 글이 있었다. 때로는 축구와 농구같은 운동도 했었고, 아주 때때로는 야트막한 야산을 오르는 거나 혼자서 노래방에 가는 것이 해소 방법이 되기도 했다. 너희도 반드시 찾아내도록 해라. 한 개여도 좋고, 두 개여도 좋다. 다양할수록 그 때 그 때 가능한 것을 선택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 좋은 법이다.
그러니 얘들아, 부디 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너희가 설령 이 글을 읽을 때 직장을 다니고 있든, 결혼을 했든 말이다. 무턱대고 놀기만 하는 것은 당연히 지탄 받을 일이다만, 너희의 삶을 살아가며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올바른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다. 꼭 찾아내고, 틈틈이 누리거라. 밥솥도 제 때에 증기를 배출해야 밥이 맛있게 되는 법이다. 너희의 마음에 화가 쌓이지 않도록 하고, 미루지 말고 그 때 그 때 소소하게나마 즐기면서 꼭 스트레스를 능동적으로 관리하거라.
아, 너희와도 저 장난감 백화점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가서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보여주고, 너희 엄마가 좋아하는 것도 사주고. 당연히 너희가 고르는 것도 꼭 사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물론 경제관념을 위해 딱 하나만 고르게 하겠지만 말이다. 아니, 그래도 해외까지 갔으니 두 개까지는 허락했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은 너희가 눈을 깜빡이며 사달라고 했다면 아마 너희가 고른 건 전부 다 사줬을 거야. 지금은 빚을 내서라도 다 사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지금도 너희와 함께 놀면서 하루를 다 보내고 싶은 아빠가.
추신: 혹시나 그 곳이 어딘지 궁금하다면, 엄마에게 아빠의 “퇴직유랑기”를 보여달라고 하거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숨겨둔 글이다만 엄마에게만 보여준 글이다. 너희가 읽기에도 부족함이 많은 글일 수 있으니 참고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