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상적이다'라는 지적에 대한 답
지유야, 온유야.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니! 하루라는 것은 작은 삶이기도 하다. 항상 행복할 수는 없지. 아마 이 글을 읽는 너희의 지금도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하루 종일 힘들었을 수도 있고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들아, 기뻐하렴. 그 하루는 이미 지나갔다. 너희가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 이미 너희를 힘들게 했던 하루는 지나갔으니 말이다. 남은 것은 그 고통을 그보다 더한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미래 뿐이다. 또 미래를 맞이하며 눈을 붙이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보려무나. 정말로 행복한 순간이 하나도 없었는지 말이다. 아주 소소한 것도 상관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호등의 초록불이 타이밍이 딱 맞았다든지, 시계를 봤는데 시간이 11:11이나 12:34처럼 좋아하는 숫자들의 조합이었다든지, 그런 황당할 정도로 소소한 것도 말이다. 행복을 주체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만큼, 어쩌면 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덕목은 없을지도 모른다.
읽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번 글은 아빠의 걱정거리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다름 아닌 너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걱정이다. 기술은 발전하고 문명은 꽃 피우니, 문화는 더욱 더 다채롭고 아름답게 발전해가며 지식은 점점 늘어가고 있겠지. 그건 아빠가 살았던 시대나 너희가 살아갈 시대나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모두가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천하기에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덕목이 무엇인지는 고대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만, 아무도 그것을 행하려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니? 잠시 생각해보렴. 그리고 이 다음을 읽어보려무나.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빠가 살아가는 세상을 잠시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 것 하나 나아지리란 보장을 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그것은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부분도 그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숨겨진 부분들도 그러하다.
지금 세상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터지는 경쟁을 해야 한다. 누군가 꿈을 노래하는 것은 사치가 되었고, 꿈이라는 단어는 명품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결과만 만족스럽다면 과정은 어떻든 누구도 신경쓰지 않으며, 힘든 사람을 돕기보다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미덕이 된 세상인데, 그렇다고 섣불리 도와주면 정말로 더한 고난을 겪게 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손가락만 움직이면 금세 답을 얻을 수 있지만, 누구도 어려운 문제를 캐물으려 하지 않는다. 깊이있는 질문보다는 일차원적인 호기심을 해소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으며, 때문에 올바른 곳으로 모두를 이끌어야 할 사람들은 자극에 눈 먼 눈동자들을 붙잡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도저히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될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구나.
아주 쉬운 이야기다. 세상이 점점 더 유치하게 바뀌어가는 것이다. 나이, 성별, 또 출신지에 따라 다양했던 장래희망은 이제 남녀노소 관계 없이 하나의 답변으로 수렴한다. 돈을 잘 버는 직업. 사람들도 글을 읽기보다 요약본을 보고 넘기기에 바쁘니,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자들도 긴 글보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선부터 끄는 데에 열중하고, 정작 내용은 사실과 같든 다르든 신경을 쓰질 않는구나. 그런 소식들에 단련된 눈들이 향하는 곳은 뻔하고, 정치인들도 그 수요에 맞춰서 점점 저급한 소재로 서로의 편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남자가 잘못했다, 혹은 여자가 잘못했다. 노인들이 잘못했다, 젊은이가 잘못했다, 그것도 아니면 중년이 잘못했다. 너희는 왜 이런 잘못을 했니, 왜냐하면 너희가 먼저 그랬으니까! 초등학생들도 하면 선생님께 혼나는 변명들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 누구도 신경쓰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적어도 절반은 잘못한 쪽의 편이거든.
과연 이런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아빠는 아직 희박하게나마 믿고 있다. 분명히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너희도 얕게나마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만큼이나 암울했던 시기는 과거, 수천년 전 인류의 시작부터 있었다는 것을. 위대한 발전이 있었던 시기에는 그만큼 중대한 위기가 함께 했던 시기이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희망이 없었다면 아빠가 너희를 두고 떠나는 이 과정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거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을까? 이 모든 문제를 아우르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정치를 장악하면 될까? 아니면 문화 대통령 같은 사람이 새로운 유행을 이끌고 세상을 바람직한 곳으로 선도하면 될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더욱 혼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아빠는 그렇기 때문에 삶이 더 재밌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도 드는 구나.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법을 통해 이 세상이 다시 한 번 더 멋진 곳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고, 기대한다면 지유와 온유가 그 흐름을 만들어내거나 그 흐름에 편승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답이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눌거다. 그것은 유치원의 한 교실일 수도 있고, 대학가의 구석진 어느 술집일 수도 있으며, 어느 중소기업 사무실의 탕비실일 수도 있지. 답이 어찌되었든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분명 더 나은 길로 나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유야, 온유야. 아빠는 요즘 사람들이 토론하면서 내세우는 변명 중에 하나를 언급해보려고 한다. 그건 바로 “그건 너무 이상적이야” 라는 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때,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라는 지적은 종종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정된 예산으로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때를 생각해보자. 비행기는 퍼스트 클래스를 왕복으로 예약하고 1박에 몇 천만원이 드는 세계 주요 호텔을 예약, 미슐랭 3스타의 식당들을 골라서 예약한다면 그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마땅할 거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 좋아하는 곳, 가보고 싶은 곳, 너희가 갖고있는 감성과 어울리는 장소 등을 검색해본다면 그건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말한 지적이 나올 수 있지. ‘그건 너무 이상적이야. 예산이 얼만데? 그러면 비행기 값 얼마 계산하면 여기가 딱이야.’ 이런 식으로 말야. 얘들아, 아빠가 지금부터 당부하는 것은 사실 이 모든 글 전체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너무 이상적이다’ 라는 지적만큼 잘못된 지적은 없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현실과 이상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있다. 현실과 이상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야. 왜냐하면 이상은 길을 찾기 위한 이정표이지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옛 현인들은 바다나 사막을 여행할 때 별을 길잡이로 삼았다고 한다. 바다에서 눈 앞의 파도를 피하는 데에 급급하며 항해하면 같은 자리를 빙빙 돌게 될 것이고, 마찬가지로 사막을 걸어가면서 눈 앞의 언덕만 피해가며 앞만 보고 걷는다면 같은 곳에 갇히게 되겠지. 하지만 별을 보고 여행한다면 당장의 파도와 언덕에 멀미가 나고 다리에 진통이 오더라도 결국에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별을 보고 여행을 했던 것은 별이 변치 않고 같은 자리를 지키며 반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별을 보고 여행했던 것은 별을 통해 목적지에 가기 위함이지, 별에 닿기 위함이 아니란다. ‘너무 이상적이다’라는 지적은, 별을 보고 여행하는 사람에게 ‘별에 닿을 것도 아닌데 왜 별을 보고 여행하냐’고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지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것이 어려운 길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 앞의 파도가 크니 피해가자, 당장 눈 앞의 언덕을 오를 힘이 없으니 돌아가자. 당신의 대안은 너무 이상적이니, 일단 눈을 낮추자. 그래, 그것이 우리를 목적지로부터 멀어지게하는 치명적인 핑계이자 변명이다. 같은 곳을 맴돌지 않으려면 힘들어도 가야하는 길이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유야, 온유야. 너희는 이상적이라는 지적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무엇이 옳은지, 이 세상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잊어버리지 않는 너희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언제나처럼 모든 기준은 사랑이다. 어느 누군가 아무리 현실적으로 보이는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합리적으로 보이는 말을 하더라도 만약에 사랑에 배치되는 의견이 있다면 그것은 곰곰이 생각해보고 너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능력으로 반박하도록 해라.
그렇다, 항상 답은 사랑이다. 지유야, 온유야. 어떤 문제에서든, 사회적으로 회자되는 어떤 이슈에서든 너희는 그것을 놓치지 말거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누군가를 욕하고, 또 우르르 몰려가 다른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더라도 너희는 먼저 참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너희의 기준을 세우고 너희의 삶을 살거라.
아빠는 어떻게 살았느냐고? 아빠는 사실 이상에 다다랐단다. 엄밀히 말하면 별을 보고 길을 찾다가 목적지가 아닌 별에 닿은 셈이지. 바로 너희들이란다. 별을 하나도 아닌 두 개씩이나 찾아서, 세상의 그 누구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끼고 있단다.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얘들아, 저 하늘의 별보다도 반짝거리는 지유야, 온유야. 아빠 인생의 가장 반짝거리는 순간도 너희의 빛 앞에서는 성냥불만도 못하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작은 별인 얘들아.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바다를 항해하다가 별에 닿는 행운을 얻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항해자인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