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너희의 삶을 살거라.
지유야, 온유야.
왜 편지에서는 항상 받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한 줄을 바꾸는지 몰랐었는데, 너희들에게 글을 쓰고 있자니 어렴풋하게나마 이유를 알겠더구나. 너희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행복해진단다. 하다못해 글을 쓰면서도 너희의 이름자를 써놓고 잠시 손을 떼고 있으면 꼭 너희 이름이 메아리가 치는 것 같아서 괜히 너희들 사진도 한 번 꺼내보고, 너희 목소리를 녹음한 것도 들어본다. 너희들도 한 줄 한 줄 읽으며 잠시나마 아빠 얼굴도, 목소리도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그래, 이 짧은 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아빠는 예전부터 참 청승맞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툭하면 울었지. 아련한 작품을 읽으면 혼자 이불을 덮고 가만히 그 감정을 되새김질하곤 했고,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질질 흘리기도 했지. 하다못해 친구와 놀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는, 그 날 그 친구와 무얼 하고 놀면서 그토록 행복했는지 한참동안 곱씹으면서 터벅터벅 걷기도 했단다. 너희 엄마와 처음 영화를 같이 봤던 날이 떠오른다. 스파이더맨의 꽤 오랜 시리즈 중 하나로 십 수년 전의 늙은 스파이더맨들이 총출동하는 영화였지. 그런 멋진 액션영화를 보고 아빠가 감격해서 울고 있으니 엄마가 귀엽다며 쳐다보던 그 때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구나.
그렇게 마음이 약하다 보니 아빠는 참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삶을 살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많이 신경쓰고 말이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를 가꾸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 억지로 외향적인 척을 해보기도 했다. 또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서 유머도 연습해보고, 그렇게 많은 이들을 이끌고 싶은 마음에 자리도 맡아보기도 했지. 하지만 사람이란 것이 참 모순적이면서도 입체적인 것이,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면서 살다보니 어떤 구석에서는 혼자만의 고집도 생겨나곤 하더구나. 옷을 입는 방법이라든지, 내 개인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라든지 말이다. 쉽게 말해 쓸데 없는 것에서는 고집을 부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이상한 삶을 살아낸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아무리 신경을 써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의 삶을 살면서 바쁜 그 순간, 어떻게든 내 삶의 중심을 잡고, 내 신념을 지키기에 급급하며 세상의 풍파에 휘청거리면서 사는 그 순간의 나를 사람들은 더 좋아해주더구나.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잘보이려고 만들어낸 나보다, 세상 앞에 담대히 나가서 혼자 부딪힐 때의 내가 훨씬 더 특별해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많았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모종의 이유로 멀어지기 마련이다. 인생이란 각자의 배와 각자의 항해지식, 그리고 각자의 목적지를 가지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때로 비슷한 목적지를 가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붙어서 항해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헤어지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가족뿐이며, 가족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인생의 절반은 헤어지게 되지 않니? 중요한 것은 내가 되는 것.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항해하는 것이다.
그래, 아빠가 앞에서 길게 썼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너희들은 너희의 삶을 살려무나.
엄마와 아빠가 너희를 사랑하는 건 너희가 어떻게 되어서, 어떤 존재라서가 아니라, 너희가 너희라서다. 엄마와 아빠가 가장 서로를 뜨겁게 사랑할 때 만들어진 결과물이라서.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삶을 살든 엄마와 아빠는 너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거라. 그저 아빠가 언급한 소중한 것들, 또 너희가 살아가면서 느끼고 깨달은 소중한 것들을 지키면서 살거라. 그거면 족하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 받으면 좋은 일이지. 다른 사람들의 미움? 받지 않으면 또한 좋은 일이다. 다만 그것에 얽매이지 말거라. 너희가 중요하다는 가치를 세우고, 때로는 바꾸기도 하면서 그저 열심히 살다가, 스쳐가는 사랑과 미움에는 무심히 고개를 숙여보이며 겸손하게 앞으로 나아가거라.
앞서 쓴 글들은 얘들아, 부디 쉽게 생각하렴. 잔소리다. 그래, 아빠가 세상을 뜨면서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너희에게 미리 보내놓은 잔소리라고 생각하려무나. 그토록 청승맞고 철이 덜 든 아빠라서 아득바득 남겨놓은 잔소리. 이건 하지 마라, 저건 이렇게 해라, 아빠가 그렇게도 지겨워하던 문구들을 이제 너희에게 예약 발송까지 걸어두며 남겨놓는 잔소리란다. 너희도 잔소리가 지겹겠지만, 아빠도 그걸 알지만 실은 더 길게 남기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고 또 아쉽구나. 이 잔소리를 듣고 너희의 삶의 방식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중요한 것은 하나다. 아빠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가 어떤 삶을 살든,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든, 수많은 사람이 너희를 사랑하든 미워하든, 아빠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으로 너희를 항상 바라보고 있단다. 너희가 이 글을 읽는 지금도 말이다. 그것 하나만 기억해주렴.
그 때, 우리가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때에는 너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안아주고 또 안아줄게. 지금 아빠가 너희를 안아주듯이 말이야. 아마 청승맞은 이 아빠는 그 때도 엉엉 울 수도 있으니, 혹시 가능하면 그 때 꼭 목욕 수건 하나를 챙겨와주렴. 기왕이면 짙은 초록색이면 좋다. 눈에도 좋고 아빠한테도 잘 받아서 참 좋아하던 색이다.
지유야, 온유야. 이 세상에서 아빠의 변하지 않는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얘들아,
아빠의 허름하고 낡은 하늘을 세상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비단으로 바꿔준 내 별들아.
사랑한다.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자꾸나.
너희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