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6화

아파트

by 봄단풍

내게 대학원은 늘 미지의 공간이었다. 학부를 마치기 전에는 나의 또 다른 미래가 될 수 있으니 관심이 있었지만, 막상 공부가 계속되니 도저히 대학원까지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늘 궁금했다. 도대체 매일 공부만 하면서 돈을 어디서 받고 생활은 어떻게 받는 걸까, 그 많은 학비는 어떻게 부담하는 걸까. 적당히 생활비 나오면서 학비도 버틸 수 있다면 직장 생활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하고 약간의 환상을 품고 있기도 했다.


물론 그 환상을 속절없이 깨부숴준 친구가 바로 이 친구다.


“이유화!”


조선시대 아리따운 여류 시인이 생각나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작 이 부름에 응답한 사람은 꼬불꼬불한 모태 곱슬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였다. 지저분한 머리에 대조적인 하얀 피부는 이 친구가 늘 연구실에 박혀있어서 그런 듯 했다. 아니, 그냥 갈수록 안색이 안 좋아지는 건가.


힘없이 손을 흔들어보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 유화가 슬리퍼를 천천히 끌며 걸어왔다. 아니 두 발로 기어왔다. 본래 걸을 때는 손과 발이 엇갈리게 걷는 것이 과학일진대, 헐렁한 회색 츄리닝 주머니에 들어간 손에서는 다리와 이미 일체가 된 듯 그 자신의 힘과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껄껄. 힘없는 그 표정에 힘을 싣고자 실소를 터뜨리고, 의지 없는 그 어깨를 툭툭 치며 안부를 건넸다. 잘 지내냐. 뭐하냐. 다행스럽게도 대답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일단 밥부터 먹자. 도대체 대학원이 어떤 곳이길래 너를 좀비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란 말이냐. 껄껄, 실소를 또 터뜨려보지만 그 표정에는 힘이 깃드는 대신 나와 같은 실소가 새어나온다.


“아니 교수님이…….”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한탄은, 오랜만에 찾아온 학생회관 식당에 자리잡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힘이 없다가도 교수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는 친구다. 하루에 세 번씩은 새로운 망언과 망발이 업데이트 된다고 하며, 가끔가다 연구실 후배나 동료에게 그 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학식 질리지 않냐?”

“겁나. 당연히 겁나 질리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화는 익숙하게 식권을 뽑는다. 맛난 걸 사주고 싶은데 저녁때는 시간이 안 맞고, 점심인 지금은 자기도 얼른 먹고 들어가봐야 한단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놨다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돌려놓고 그 틈에 밥을 먹으러 잠깐 나온 듯하다.


“출퇴근은 언제야?”

“나 아홉시에 나와서……. 보통 열시 열한시에 집에 가.”


원 세상에. 웬만한 직장이랑 다를 게 없다. 왜 대학원생이 학교에 가는 걸 출퇴근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직장인은 돈이라도 버는데 대학원생은 학기별로 학비에 생활비도 따로 나가니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 좀 더 나을 수는 있으려나. 물론 이런 내 걱정과는 달리, 수업별 조교 장학금, 방비 등 장학금이 꽤 많이 나오며 맡은 일에 따라 생활비도 일정 부분 지원이 된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루 종일 하면서 일도 하고, 내가 열심히만 하면 학비도 나오고 생활비도 충당이 된다면. 대학원 생활은 할만한 걸까? 물론 열심히 한다는 기준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을 것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그 정도로 탐구하고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아직 확신이 없다는 게 문제다. 어쩌면 공부 자체에 확신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은 또 교수님과 식사를 해야하고, 식사 후에는 바로 교수님과 미팅이 있다며 유화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때문에 오늘은 하루종일 논문을 읽어야 한다고. 자세히 들어보면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부분과 분명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읽을 논문도 산더미고 그걸 교수님도 아는데 대체 왜, 어떻게, 남의 논문을 내가 써줘야하냐고.”

“애초에 불법 아냐?”


내말이! 혹은 그러니까! 라는 표정으로 돈가스가 꽂힌 포크를 흔들어보이던 유화는 힘겹게 입에 있는 밥을 삼키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한 편에 얼마 정도 들어오긴 하지만 시간을 너무 뺏긴다, 그거 말고도 일이 너무 많다, 돈이 다가 아니다, 아니 그럼 미팅을 좀 널럴하게 하든가…….


문득 유화가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을 생각해봤다. 학업에 위대한 뜻을 가지고 도전하고 싶다며. 언젠가는 취직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전에 하고 싶은 공부를 실컷 하고, 새로운 것도 알아가고 싶다. 학부의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 언뜻 들어본 대학원 수업이 어렵지만 상당히 흥미롭더라. 만약 기회도 시간도 된다면 박사학위까지 도전하고, 그 후에 교수를 노리든 다른 기업체를 노리든 해보고 싶다며.


그리고 입학 후 약 두 주 뒤, 유화는 고개를 저으며 회사 앞 치킨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못해먹겠다고. 무조건 석사만 따고 취직을 하겠단다. 도저히 공부는 자기 체질이 아니라나. 학부 4년동안 4점을 넘는 학점을 받은 네가 공부 체질이 아니면 누가 공부 체질이란 말이냐, 라고 물어봤지만 유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세상에, 이 쯤되면 대한민국 교육의 전부가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수능으로 귀결되는 초중고 12년, 취업여부로 의미가 판가름나는 대학 4년 혹은 5, 6년, 그리고 그 너머 대가수준의 학문을 공부하게 되는 대학원조차. 정말 공부에 뜻이 있어서 순서대로 모든 학업의 절차를 모범적으로 밟아온 사람조차 적응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니면, ‘모든 일에는 힘든 구석이 있는 법이다’라는 낡고 낡은 이야기를 여기에도 적용시켜야 하는 건가?


“고생한다.”


직장인의 한탄은 유화 역시 많이 들었음으로,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토닥토닥 위로를 건넸다. 햄버거마냥 띵동 소리와 함께 뚝딱 나온 학식을 버릇처럼 허겁지겁 먹으며, 유화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더 하자고 했다. 학교 안의 카페는 냉방도 시원하고 커피값도 저렴하니 유익하다며.


“너 집에서 여기 오는 건 다닐만 하냐?”


유화는 또 다시 교수님 얘기를 꺼냈을 때처럼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기숙사를 신청하고 싶은데 대학원생이 들어갈 자리는 없으며, 애초에 된다 하더라도 자신도 학교도 같은 서울이라 신청도 할 수 없단다. 그런데 서울도 서울 나름이라, 자신의 집은 학교의 정 반대여서 지하철 시간과 걷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학교로 오는 데만도 한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자취 해볼까도 했는데……. 생활비도 빠듯하고. 집에 손 벌리기도 싫고…….”


유화는 씁쓸하게 씁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제는 물보다 커피가 익숙하다고도 했다. 매일 졸음을 참아가며 프로그램도 돌리고, 공부까지 하려면 어쩔 수 없다나. 그런데 통학도 오래 걸리니 매일 피로가 쌓여만 간단다.


“그럼 여기 정도면 어때?”


스마트폰 지도 앱으로 내 아파트 바로 옆의 지하철 역을 보여줬다. 여기 정도면 땡큐지, 대답하며 커피를 한 번 또 홀짝 들이킨 유화는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왜왜, 여기 괜찮은 데 있어?”

매거진의 이전글아파트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