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좀 애매한 무교인 편이다. 혹은 애매한 기독교이거나. 세상이 오롯이 스스로 진화했을 것이라 믿지는 않고, 어딘가에는 이를 조정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을 것이라 믿긴 한다. 다만 그것이, 세상 많은 종교가 이야기하는 알라나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이런 존재는 아닐 것 같았다.
덧붙여 말하자면 교회는 사실 그동안 여러 종교중에 가장 거부감이 많이 들었던 곳이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전도문구는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졌고, 또 마음의 안식을 주기보다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느낌이었다. 어딘가 있을 절대자에게 삶의 의문을 묻고, 따지고, 그에 따른 마음의 평화를 얻기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주말의 반나절 정도와 함께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관념은 직장에 찌들어 살아가는 나에게는 정말 와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된 계기는 딱 하나다. 내가 믿고 따르는, 존경할만한 사람이 교회에 다녔고, 또 그 사람이 나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예은이누나였다.
“오랜만이네?”
취미로 음악을 꾸준히 해서인지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냥 지나칠만한 인사 속조차 또렷하고 선명하게 귓가에 파고드는 건, 안정적인 발성이나 타고난 목소리 뿐만 아니라 어쩐지 늘 긍정적인 사람의 인품도 한 몫하는 듯 했다.
손을 흔들어보이자 펑퍼짐한 살구색 원피스 차림의 예은이 누나가 금세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누구에게나 웃어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떠오르는 옷차림이었다. 항상 그랬다. 눈에 띄는 장신구 없이 수수하게, 가방도 학교 어디선가 자주 본듯한 흔한 가방을 들고다니면서도 누나의 모습은 어디서나 뚜렷하게 느껴졌다. 흔하지만 깨끗한 옷, 단정함, 그리고 또 밝은 성격 때문이리라.
“얼굴이 많이 안좋네? 일이 많이 힘든가봐.”
누구나 할 수 있는 안부 인사에도 기분이 좋고, 진심이 느껴진다. 지금은 누나의 살며시 좁아진 미간과 목소리에서 그 마음이 느껴졌다. 이런 사람은 정말 주변에 드물다. 나도 모르게 속을 털어놓게 되고, 나도 모르게 안부를 물어 온 그 사람의 걱정까지 하게 되는 사람.
“똑같지 뭐.”
직장에 들어온 이후 한 가지 생겨난 버릇이 있다면, 힘드냐는 질문에 더 이상 괜찮다고 무마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힘든 것이 당연하며 일상이고, 그것을 최대한 아무렇지않게 표현할 뿐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는 못하게 됐다. 사실 그건 내가 유독 징징거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아유……. 밥은 먹고 다니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오는 누나였지만, 사실 그런 예은누나의 상황이 나보다 더 절박함을 알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누나가 일하는 학원의 수입은 삶을 영위하는데에 아슬아슬한 도움을 주었지만, 그 다음의 순서가 문제였던 것이다.
“형이랑은 별일 없지?”
두성이 형과 예은이 누나. 교회에서 알아주는 커플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직업 때문. 두성이 형은 계약직이고, 예은이누나는 미술을 전공했고. 양가에서 모두 만족을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두 가족이 전부 같은 교회를 신실히 다니는 신자라는 것이 더 마음이 답답했다. 그렇게 세상과 구별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자는 사람들도 결혼 앞에서는 세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건가……. 애초에 교회에 별 애정이 없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비판하기보다 세상이 그토록 각박해진 건가 한탄을 좀 더 하고 싶었다.
급격히 어두워진 누나의 얼굴에서, 이내 어디선가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그토록 밝고 명랑한 누나에게조차 양가의 반대는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었던 걸까. 내가 대답을 기다릴까봐 그런 건지 고개만 끄덕끄덕한 예은누나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짜 그냥 둘이 손잡고 어디 가버릴까…….”
“갈 데는 있고?”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대화를 하다보면 간혹, 의도랑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꺼내면 듣는 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문제는 이런 말들은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튀어나와서, 말을 하고 나서야 아, 상처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아니 그게 아니고 하고 변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예은 누나가 먼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있으면 진작 그랬지.”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누나에게 말을 해주는 게 좋을지. 아파트 이야기를 들으면 누나는 이 곳에 들어오고 싶어할까? 누나에게만 말을 해주는 게 좋을까, 두성이형과 같이 있을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아무래도 준상이형이나 호준이처럼 얼마든지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절박한 두 사람이라, 생각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 나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나, 두성이 형은 언제 와?”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예은 누나 뒤로 익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직장이나 교회나 어디에서든 정장을 입고, 머리는 항상 단정한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는 두성이형. ROTC 출신이라 그런지 항상 깍듯하고 예의 바르며, 말투나 행동거지가 군인처럼 절도 있게 나오는 편이라 동생들보다는 어르신들의 총애를 받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후배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허나 그러한 매력도 결혼이라는 중차대한 일 앞에서는 쉽게 힘을 못 쓰는 듯 했다.
두성이 형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에, 나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형, 누나. 한 번 잘 들어주세요. 두 분 다 저한테 참 소중한 사람들이라서…….
처음에는 둘 다 회의적이었다. 애초에 부동산의 소유권이 왔다갔다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들어와서 살라는 것이 쉽게 이해되리란 생각은 안했었기 때문에, 나는 꾸준히 두 사람에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아파트가 통째로 내꺼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오시면 된다, 편히 계시다가 두 분만의 집이 필요하시면 그 때 나가도 상관없다. 관리비나 집세 걱정 안하셔도 되고…….
다소 의심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살피던 형과 누나는, 서서히 얼굴에 미소를 드리우며 그들만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나만 괜찮으면 평생 있어도 상관이 없는 것이냐, 아니다 나중에라도 다른 곳을 구해서 나가겠다, 그건 둘째치고 집은 어떤 집이냐, 평수는 어떻고 계단식이냐 복도식이냐……. 점점 이야기는 둘 다 동의하는 쪽으로 흘러갔고, 부모님께는 나를 통해 잘 아는 분 중개사를 만나 싸게 매입했다고 하기로 했다.
“……세를 좀 줄게.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 할테니…….”
그 말을 남긴 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만 조금이라도 세를 준다는 걸 한사코 거절했지만, 두 사람의 힘을 견뎌낼 수 없었기에 처음만 받기로 했다. 다음달에 또 어떤 방식으로든 챙겨 주시겠다는 건가. 묘하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수입이 생겨서 나쁠 건 없기에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 순간만큼은 이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또 살아갈지는 전혀 고민되지 않았다. 다른 데보다 훨씬 싸게 받을테니 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고, 공짜로 사는 것도 아니니 죄책감도 덜고, 나는 용돈벌이가 되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거 아냐?
다만 걱정이 하나 생겼다. 세 때문에 괜한 분쟁이 생기면 안 될텐데. 지금이라도 세 기준을 통일해야 하나? 예은누나와 두성이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머리에 스친 생각을 나는 억지로 누르며, 그냥 기준을 정하지 않기로 했다. 가만, 이렇게 된 김에 모든 세입자들한테 계약서를 받아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