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삼월의 꽃샘추위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달이 바뀌면서 추위는 금세 사라지고 어느덧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더위가 오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았지만, 바로 며칠 전 패딩이나 코트를 꽁꽁 여미던 모습은 그 커다란 서울 구석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늘 무채색으로만 느껴지는 도시에 사람들의 옷으로 빛깔이 입혀지기 시작하는 시기.
아파트에 온지도 어느덧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아파트에 이사를 온 후 좋은점은 더 이상 월요일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거였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 백수인 호준이야 늦잠을 자지만, 준상이형과는 출근 시간이 비슷해 아침마다 함께 역까지 가곤 했다. 방향은 달라도 의지가되는 누군가와 함께 시작하는 아침은 그 전에 비해 훨씬 견딜만 했고, 그것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도 동일했다.
물론 항상 모두와 함께할 수는 없었다. 준상이형은 웬만해서는 퇴근이 열두시를 넘어갔고, 대호는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탓에 누군가를 만나는 데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예은누나와 두성이형은 부부니까 아무 때나 불러내기는 눈치가 보였고, 남은 건 유화와 호준이인데 이 둘은 너무 자주 만나서 만나도 별 감흥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나 호준이는, 늘 사람이 그립다며 누군가를 만나고 다니기 일쑤였는데 곧 인맥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나를 자주 불러냈다.
사람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쯤이었다. 31평짜리 집이 90세대나 있는데 아직 열 명도 채 못 들였다니! 확 아무나 다 연락해서 들어오라고 해버릴까. 편하게 있다가 편하게 가라고 초대를 한다면……. 내 대학생활만 회고해보더라도 집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꽤 많을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새로운 사람을 받는 건 주의가 필요한 일이었다. 행여 내가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게 소문이라도 난다면 정작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요구를 해올 수도 있고, 성격상 거절을 잘 못하는 내 입장에서는 또 내 본심과는 상관없이 뜻대로 하소서, 하며 집을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내가 거절을 한다 하더라도, ‘있는 놈들이 더 아낀다’며 온갖 욕을 먹을 수도 있게 될 일이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하지만 오늘처럼 평소와 달리 운 좋게 일찍 퇴근하는 날은 간혹 외로울 때가 있다. 평소라면 집에서 열심히 플레이 스테이션을 하거나 컴퓨터로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서 멍 때리거나 할텐데, 아파트로 이사를 온 이후에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유일한 위안, 유일한 낙. 그냥 집에 들어가기에는 못내 아쉬운,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든 시간대. 학교 후배인 성훈이에게 전화가 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형, 지난 번에 숙소 구해주신 곳 있잖아요.”
아, 그랬었다. 동생들끼리 MT를 간다고 했을 때 대신 예약을 해준 적이 있었지. 아마 성훈이가 연락을 해온 건 내가 그 때 숙소비를 절반만 받았기 때문이리라. 이들에게는 아는 사람을 통해 싸게 구했다고만 하고 정작 나머지 반을 내가 댔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능력있어 보이기도 했고, 진짜 다음에도 한 번쯤은 내줄 의향이 있었고. 대신 후배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몇 명인데? 그 때 그 친구들이에요. 성훈이의 대답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좋은 숙소를 찾고 예약해서 돈을 쓰느니, 그냥 집 하나를 내주고 애들을 좀 모아볼까.
“너네 뭐할 건데?”
“그냥……. 음식같은 건 시켜먹고 안에서 이야기하고 놀려고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파트 위치를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성훈이도 역 근처이고 서울 한복판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 듯 했다. 그래, 엠티가서 고기 굽고 술먹는 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그냥 편하게 먹고 떠들고 쉴 수 있는 게 다음날 일정에 차질도 없고 좋지. 나는 이미 전입한 사람들과 최대한 먼 쪽으로 집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성훈이와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 이 사실을 말해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자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 세대 정도는 방마다 침대나 세면도구만 몇 개 진열해놓고 손님방으로 만들까? 후배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초대하고, 아니면 아파트 사람들과도 반상회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또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놀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나중에 여력이 생긴다면 다트게임도 사고, 작은 바도 만들어서 커피와 칵테일을 만들어서 함께 한 잔 하고. 좋아, 돈 많이 벌어야겠다.
아파트 건물로 향하는 작은 언덕을 지나서 걷자니 아파트 입구가 나왔다. 그리고 평소에 잘 볼 수 없던, 대호가 건물 한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져서인지 평소보다 얼굴에 더 그늘이 진 듯한 그 모습에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사로잡았지만, 나는 애써 생각을 뿌리치며 밝게 대호에게 다가갔다.
뭐해, 아무렇지않게 던져진 한 마디. 대호는 마침 들이마시던 담배를 천천히 입에서 떼면서 이쪽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동안 대답없이 서있던 대호는, 갑작스레 픽, 하고 허탈하게 웃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1차 붙었다.”
“야이씨!”
깜짝 놀랐잖아 임마. 붙었으면 얼굴 좀 펴라. 불길했던 감이 한 순간에 안도감으로 바뀌자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세상에, 한 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나도 모르게 신나서 대호의 손을 거칠게 붙잡아 악수를 했지만, 그토록 허탈한 미소를 짓던 대호는 손을 뿌리치더니 갑작스런 포옹으로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하……. 이제 좀 살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담배를 몇 개를 태운 걸까. 내게 무너지듯 안긴 채 한숨을 길게 내뱉은 대호에게서는 독한 담배냄새가 났다. 하지만 어쩐지 그 독한 한숨이, 그동안 시험을 준비하며 그가 쌓아온 독이 전부 빠져나오는 느낌이라 나는 잠잠히 등을 토닥여줬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친구야.
“야이씨……. 오늘 좀 마셔야겠는데?”
평소에 술을 잘 못하는 대호는 그 말에 허허 웃더니 포옹을 풀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대호씨의 나이는 스물 아홉. 사 년여간의 공부와 세 번의 시도 끝에 행정고시 1차에 합격한 것이다.
“우냐?”
눈치없게 말이 멋대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때로는 그럴 때도 필요한 법이다. 웃을 수 있을 때에는 웃을 수 있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런데 정작 대호는 앉아서 뭔가 중얼중얼하고 있다. 자꾸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움직이는 그가 불안해서 어깨를 살짝 잡고 흔들었다.
“……그랬어.”
“뭐라고?”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던 대호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더니 약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다들 1차는 체질이라 그랬어. 될 사람은 잘 붙고 안 될 사람은 안 된다고.”
말문이 막혔다. 대호는 지금, 지난 사년 여 간의 고통을 하나씩 풀어놓고 있었다. 행시를 비롯한 각종 시험 준비에는 발도 들여보지 못한 내가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거나, 혹은 가로저을 수 있는 깊이의 고통은 아니었으리라.
툭. 흙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제 막 따뜻해지려는 날씨에 마지막 훼방을 놓으려는 것인지, 툭 으로 시작한 봄비는 곧 후두둑이 되어 도시를 가득 메웠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겨울의 마지막 인사일까? 진달래꽃 따다 임 가는 길에 뿌려놓는 심정의 눈물겨운 마지막 손짓일까.
바닥에 앉은 대호는 그렇게, 한참동안 일어날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