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친구들과 엠티 장소를 물색하던 성훈이에게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두어 시간이 지난 뒤였다. 감정이 북받친 대호를 달래다가 성훈이를 챙기지 못할까봐 걱정했지만, 자꾸 시계와 핸드폰을 손에 쥐고 흘끗거리던 내 모습을 보고 눈치를 챈 것인지 대호는 옷만 갈아입은 채 나를 집에서 내보냈다. 결국 나중에 호준이와 함께 셋이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나는 재빨리 성훈이와 친구들이 묵을 집을 골랐다.
다행히 빈 집에도 필요한 건 있었다. 기본적으로 부엌의 싱크대와 전기레인지는 준비가 되어있었고, 가스와 수도도 잘 나오고 있었다. 하나 걱정인 것은 놀다가 자는 것이 문제였는데, 마침 부모님이 거처를 지방으로 옮기시기 전 쓰시던 이불과 깔개가 몇 개 남아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런 봄비를 피해 달려온 후배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듯 했다.
오늘 처음보는 후배도 몇 명 있었다. 일일이 소개를 하긴 했지만 귀찮은 덕에 한 귀로 흘려버렸다. 후배들 노는 자리에 낀 눈치없는 선배가 되어보는 것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형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뭐가?”
어느덧 술이 몇 병 비워지고 나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끝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들 중에는 벌써 얼굴이 빨갛게 물든 후배도 있었다. 통통한 얼굴에 갈색 머리가 어깨에 닿을까 말까한 그 후배의 이름은 주현이라고 했다. 원래 성격이 시원시원한 건지, 처음 술잔도 직접 돌리고 인사도 가장 먼저 했었지.
“벌써 취직해서 돈도 잘 벌고 집도 있고.”
“여자친구만 있으면 되겠네.”
“시끄러, 임마.”
나름 진실과 진심이 담긴 묵직한 직구를 던진 후배를 다그치며 그 녀석에게 술을 한 잔 더 권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 녀석은 한 숨에 들이켜버렸다. 나도 신입생 때는 그랬었나……. 이미 소맥을 대여섯잔 비워놓고 헤롱거리는 녀석이 또 원샷이라니.
이야기는 한참 이어졌다. 요즘에 캠퍼스가 어떻게 바뀌었다, 어디 새로운 카페가 들어왔더라, 요즘에는 뭐하고 논다, 놀 때 뭘 먹고 마신다. 내 때는 이랬다, 세대차이가 난다 혹은 나지 않는다……. 용케 이야기를 맞춰주는 아이들이 고맙기도 했지만, 애들 노는데 와서 괜한 행패를 부리는 것 같아 얼른 일어나야만 할 것 같았다.
“너네는 나중에 뭐하고 싶냐?”
흔한 토크쇼에서 손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듯 무심히 입을 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그냥 각자 간단하게 대학원가요, 취직해요, 여행갈래요 결혼할래요 같은 의례적인 답변을 대충 듣고 집에 갈 요량으로 잔을 내려놓던 나는, 갑작스레 무거워진 분위기에 미처 엉덩이를 들지 못했다.
대답 대신 다같이 합을 맞춘 듯한 무거운 한숨이 새 집 바닥에 낮게 깔렸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내 속사포처럼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뭘 해야 잘하는 거에요?”
“취직을 하긴 해야겠는데, 솔직히 어느 회사를 가도 똑같을 것 같고…….”
“사실 취직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뭘하든 생계유지만 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근데 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어.”
“아니, 일과 삶, 직장과 삶이라는 게 도저히 함께 할 수가 없는 거에요?”
마치 내가 이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대변인이 된 기분이었다. 불쾌했다. 나도 이 세상이 맘에 안 들어, 얘들아.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온 질문을 가라앉히고자,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절반은 끄덕 끄덕, 절반은 갸우뚱. 그래,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저 사촌 형도 취직하고 결혼했는데, 얘기 들어보면 너무 막막해요. 형 말이, 어떻게든 취직해서 돈 벌다가 결혼 할 때가 됐는데 할 수가 없대요.”
“상대가 없어서?”
눈치없는 한 녀석이 농담을 던져보지만 순식간에 단체 욕설이 쏟아졌다. 진지한 얘기하는 중이니 좀 닥쳐보라고.
“솔직히 취직하면 이십대 후반인데, 진짜 아무리 돈 빡세게 모아도 결혼할 때까지 1억 모으기가 힘들대요. 근데 결혼하려면 집이 필요하고, 집 사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까 대출 껴야하는데 그것도 힘들다고 막…….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 꿈꿨던, 막 그런 거 있잖아요. 회사 들어가고 결혼해서 사랑하는 사람이랑 사는 거. 그런 걸 하려면 빚쟁이가 된다면서…….”
열심히 말을 쏟아내던 아까 그 친구는 목이 타는 듯 소맥으로 살짝 목을 축이더니, 이내 차분해진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그 와이프되는 분, 형수, 그 분이랑 되게 사랑하고 좋았는데 결혼할 때가 되니까 갑자기 막 결혼을 하지 말까 싶더래요.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굳이 빚 안 내도 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하나 싶고, 하고 애까지 생기면 애들 키우느라 내 삶이 더 없어지고, 돈은 더 없어지고…….”
문득 오대리님이 생각났다. 그렇게 치이고 치이면서도 직장에서 꿋꿋이 버티는 오대리님. 어쩌다 한 번씩, 그러니까 매일 시간 여유가 조금 생길 때마다 기계실 한 구석에 쓰러지듯 앉아서 몰래 훔쳐보던, 핸드폰 바탕화면의 갓난 아이. 그 아이는 대리님의 짐인가요, 힘인가요? 미처 그에게 던져보지 못한 질문도 같이 떠올랐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후배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에 빠진 듯 했다. 멍하니 술잔을 바라보는 친구도 있고, 그걸 꿀꺽 들이키는 친구도 있고, 그 와중에 전보다 더 빨개진 얼굴로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는 여자아이도 있고.
“오빤 어떠세요? 지금 다니시는 회사…….”
나를 향해 열릴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조그만 입이 열렸다. 주현이란 친구는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있는데 정신은 말짱한 듯 했다. 목소리도 그랬고, 동그랗게 떠진 눈도 그대로였고.
“나야 뭐……. 경제를 워낙 좋아했고,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했으니까. 조건으로만 보면 내가 원했던 직장이랑 딱 맞지.”
거짓말이다. 경제학 전공도 수능 성적 맞춰 지원했고, 처음보는 사람을 접대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부럽다. 대단해요 형.
“형은 언제부터 경제가 좋았어요?”
“어떻게 지금 회사를 지원하게 된 거에요?”
모두의 선망을 받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에 답을 하는 건, 아니 정확히는……. 내 생각, 내 경험과 정반대되는 대답을 해야하는 질문에는 그다지 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되잖아? 어쩐지 질문들이 기업 입사 면접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뭐……. 야 나 때문에 괜히 분위기 무거워진 것 같다. 너희들 재밌게 놀라고 방 구해본 건데. 나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슬슬 가볼게.”
“와 형, 형! 근데 아파트를 어떻게 구했어요?”
성훈이는 참 눈치가 없다.
“아 사실, 구한 게 아니라……. 여기도 내 집이야.”
그리고 나는 허세가 참 많다.
동그래진 눈동자들이 이쪽을 바라봐왔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츄리닝 바지에 손을 찔러넣은 채, 내 이성이 말리기도 전에 마지막 말을 굳이 내뱉고야 말았다.
“근데 안 쓰는 집이니까……. 앞으로 혹시 쓸 일 있으면 편하게 놀러와.”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이 말을 하면, 혹은 이런 행동을 하면 후에 엄청 후회를 할 것 같은데 당장은 감이 안 오는 경우. 막연한 불안감이 들지만 지금 당장 하지 말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 보이지 않는 멀리서 나를 향해 던져진 창이 날아오는 것처럼, 예리한 불안감이 뒷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술기운과 함께 그 자리에 털어버리고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