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우리 그런데, 반장 같은 걸 정해야하는 거 아냐?”
다이어트 중이라며 술은커녕 치킨조차도 입에 대지도 않는 예은누나와 달리, 맥주를 두 잔째 원샷한 두성이 형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뭐라고 하더라, 동장? 반상회장? 동 대표?
“승민이가 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호준이가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다들 먹느라 바쁜지, 아니면 듣고도 관심이 없는 건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사실 나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애가 탔다. 내가 주인인데 나 말고 누가 해? 아니 잠깐. 내가 주인이라고 내가 대표를 하라는 법 있어? 물론 하면 좋긴 하겠지만……. 아니 좋은가? 괜히 귀찮은 거 아니야? 건물주처럼 나는 소유만 하고 대표는 따로 뽑아서 일을 시켜야 하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투표 같은 거 해볼까? 거수로라도.”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주현이와 유화, 호준이가 찬성이라며 손을 들었다. 분위기상 두성이형을 제외한 모두가 그 다음에 금방 손을 들었고, 그렇게 투표는 마무리 됐다. 아무래도 두성이형은 뭔가 하려던 것이 있었던 모양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이 불편한 듯 했다.
“우리 회칙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조용히 치킨과 맥주를 섭취하던 대호가 말을 꺼냈다. 사실 별 조건없이 들어와서 사는 아파트에 회칙이 필요하겠냐만은, 대호의 의견은 예은누나와 두성이형의 동의로 다들 생각해볼 거리가 되었다. 잠시 말 수가 적어진 탁자 위로 포크를 딸깍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내 한 사람씩 회칙에 필요할 것 같은 내용을 꺼내기 시작했다.
“민원 같은 건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지 않을까?”
“주차장 이용도.”
“주차장은 자리 많잖아.”
“통금 같은 걸 정해놓을까?”
“기숙사도 아니고…….”
동 대표가 된 나는 필요하다 싶은 내용을 하나씩 받아 적기 시작했다. 서기나 회계도 뽑고 반상회비도 걷어야하나 고민할 때쯤, 두성이형이 갑자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장 중요한 걸 먼저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일동 침묵. 발랄하게 학교 회칙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이어가던 주현이는 포크를 입에 물고 얼른 눈치를 살폈다. 맥주가 성에 차지 않는 듯 연신 술만 들이키던 준상이형도,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대호도 눈을 두성이 형에게로 돌린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 말고도 계속 다른 사람을 아파트에 받을 거야?”
동시에 예은이 누나를 포함한 일곱명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마침 목을 축이던 나는 이사 첫 날 짐을 옮길 때의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성이 형의 시선을 곧바로 받아내며, 천천히, 꼴깍, 술을 목 너머로 넘겼다.
“오빠, 다른 세입자도 받을 거에요?”
대답이 늦자 주현이가 재차 대답을 재촉했다. 내 아파트인데 더 받고 말고는 내 마음대로 결정해야 할 사항 아닌가? 사실 두성이형의 연이은 질문에 나는 오늘의 반상회를 한 순간에 후회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늘 그러했듯, 내가 당연히 가질 권리를 또 다시 다른 이에게 넘겨주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맥락이다. 그래선 안 된다.
“그럼. 계속 늘려가야지.”
두성이형이 원하는 대답이 뭔지 알고 있지만, 애써 마음이 밟으려는 브레이크를 무시한 채 주현이에게 대답했다. 잠시 얼어붙었던 공기가 다시 녹아내리며 다들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세입자라고 하지 말고, 식구라고 합시다, 식구. 이웃!”
“그래, 우리가 월세를 내는 것도 아니고.”
“오늘도 친해지려고 모인 거잖아.”
하지만 치킨집에 어울리지 않는 정자세로 나를 계속 바라보는 두성이형의 시선은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할 말이 더 있지 않니. 마치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네가 해야 할 말이 더 있지 않니.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첫 멤버니까. 앞으로는 다 같이 논의를 해서 받을까?”
그렇게 나는 또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서야 두성이 형의 날카로운 눈이 잠시 사그라드는 듯 했고, 다른 사람들은 다시금 던져진 논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냐, 아파트는 네 거니까. 받고 싶은 사람을 받아야지. 우리랑 모르면서 네가 아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예은이 누나가 침묵을 깼다. 그러자 주현이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호준이도 그래야지하며 그 흐름에 편승했다. 그렇게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내가 다음 식구를 어떻게 하든 알아서 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당연한 거다. 이 아파트가 전부 내 집인데. 다음에 사람을 들이든 말든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고, 누굴 어디에 들이게 되든 그 또한 내가 결정할 일인 거다. 만약에 민원이 생길 여지가 있다면 당사자와 협의를 해본 뒤에 들이면 될 일이고.
그 날의 반상회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넉넉히 시킨 치킨을 깨끗이 비웠고, 분위기도 끝까지 화기애애 했다. 하지만 두성이 형의 표정은 마지막까지 석연치 않았고, 대호 역시 한 번도 미소 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