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이렇듯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받는 일도 계속됐다. 몇 명의 학교 동창과 교회의 인맥들, 군대에서 만났던 선임과 후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 어느새 90세대 중 스무 세대 정도를 채울 수 있게 됐다. 물론 내 기준에서 가까운 사람, 또 다른사람에게 발설하지 않을만한 믿을만한 사람을 철저하게 가려냈고, 또 그 중에 새로운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골라냈다. 이 작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승민아, 형 왔다!”
그 중 가장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바로 승찬이 형이었다. 입대 후 이병 시절 소위로 임관하고 첫 근무지를 발령받은 최승찬 씨는 당시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장교였다. 초임소위는 이병보다 못하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일을 잘했지만, 그 중 단연 뛰어났던 점은 병사들을 한 명 한 명 잘 챙겨줬다는 거였다. 애초에 갓 임관한 터라 나이차도 많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 했다. 나와는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똑같다는 이유로, 또 전입일자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많이 친해졌었고, 그 덕에 전역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던 사이였다.
서울 토박이답게 표준어를 구사하면서도 경상도 남자의 시원스러움을 갖춘, 동네 좋은 형. 그런데 그 남자 중의 남자가 얼마 전 전역을 하고 바리스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누군들 믿겠는가. 엄밀히 말하면 자격증이 있으니 자격은 있는 셈이다. 정확히는 카페 사장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직접 만난 것은 오랜만인 탓에 정신없었던 첫 인사 후에, 나는 형의 짐 정리를 도와줬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형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세상에, 형이 전역할 줄은 몰랐다. 너는 전역하더니 혼자 잘 먹고 잘 살더라. 그렇게 말하고 웃던 승찬이 형은 천천히 전역 후의 삶을 풀어놓았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후 카페 아르바이트를 돌던 그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규모의 프랜차이즈 중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통해 매니저를 길러내는 회사를 찾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주6일 근무 중이며, 매일같이 밤 11시를 넘긴 시각에 퇴근한다고. 그동안 바빠서 나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은 허풍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딱 위치가 좋은 곳에 집이 생겨서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고 형은 거실 바닥에 대충 이불을 깔고 누워버렸다. 옛날 함께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던 터라 나도 바로 그 옆에 이불을 깔고 누우려 했다. 그리고 그 때 마침 핸드폰의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이 한밤중에 누구지, 로 시작한 의문은 순식간에 주리에게 뻗쳤다. 두근대는 마음을 누르려 애쓰며, 나는 재빨리 핸드폰의 잠금을 해제했다. 그 사이에도 알림은 계속 울려서 더욱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기대는 늘 사람을 실망시키는 법이다.
『승민아, 오늘 또 새로 들어온 거야?』
『아까 보니까 맞는 듯.』
『근데 그럼 그 분들 여기 초대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고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입자들이 다같이 있는 단체 메신저가 있었지. 아직 아파트 점검이나 수리 등 모두에게 공지할만한 내용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지만. 아무튼 여기를 통하면 일일이 직접 만나서 인사할 필요도 없을테니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지, 여기 초대하면 안 되지.』
그 때 갑자기 두성이 형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우린 초기 멤번데. 엄연히 우리랑 다르지 않아? 공지 방은 따로 파고 이건 우리끼리 유지하자.』
어……. 이건 생각 못했는데.
읽고 있던 사람이 많았는데 그 뒤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몇 주간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사람들이 의견을 표출하지 않을 때에는 제시된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동대표로서, 혹은 아파트의 주인으로서 내가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찬이형은 다른 입주자들에 비해 늦게 들어 온 편인데, 후속 세입자에 대한 문의가 이제야 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시험을 보다가 두 개의 답 중에 어느것이 맞는지 헷갈리는 문제를 마주친 것 같았다.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이 맞을 것 같고, 그렇다고 썼다가 고치면 또 처음에 골랐던 것이 맞게 되는 딜레마. 그럴 때에는 그냥 대충 찍고 넘어가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또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곤 한다.
『그래요 그럼.』
게임중에는 그런 게임이 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도중 내가 택한 대화 하나, 행동 하나 때문에 게임의 결말이 극명하게 갈리는 게임. 어쩐지 중요한 분기점을 지난 듯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미련을 버리고 넘어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오늘은 오랜만에 만난 소중한 인연과 하루를 마무리 할 참이었다. 별 것 아닌 고민으로 마음의 여력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무턱대로 초대하는 것보다는 신중하게 따로 운영하다가 필요할 때 합치는 게 분명 분란의 여지가 적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