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27화

아파트

by 봄단풍

어느새 다른 선생님들은 할 만한 질문을 다 했는지 영희씨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원장선생님은 서류를 한참 동안이나 차분히 읽었다. 그녀가 분위기를 장악하고 싶을 때 종종 쓰는 방법이었다. 지원자를 효과적으로 긴장시키면서 주위 모두의 집중을 환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원자의 태도를 슬쩍 살필 수도 있었다.


“진주리씨?”

“네.”


이윽고 영희씨는 안경을 벗어 오른손에 든 채 입을 열었다.


“일단. 유치원에 올 거면 화장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선생님들 몇 명이 슬쩍 원장 선생님의 얼굴을 살피고는, 다시 지원자를 훑었다. 대부분 의아하다듯 고개를 갸우뚱했고, 그건 지원자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주위의 시선을 살피던 지원자는, 누가 먼저 입을 열기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그리고 치마. 누가 유치원에서 그렇게 몸에 딱 붙는 치마를 입어요?”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지원자뿐만이 아니었다. 원장선생님과 나란히 앉은 선생님들조차 감히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했고 조용히 책상에 무언가 끄적일 뿐이었다.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화장 별로 안 진한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렸지만, 옆에 앉은 다른 교사가 팔을 툭 친 덕에 영희씨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원자의 얼굴에는 잠깐 당혹감이 스쳐지나갔지만, 그녀는 이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얼굴은 왜 그렇게 하얗지? 어디 아파요?”

“아뇨, 건강합니다!”


영희씨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젊은이들은 준비가 부족했다. 그 말은 영희씨에게 바로 성의가 부족하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가 아니다. 수업 시연으로는 볼 수 없는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야하며, 그것은 자신처럼 오랜 경험을 통해 갖춘 안목이 필요한 일이었다.


“면접이 있다, 그런데 내 안색이 좋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화장을 하든, 분칠을 하든 활기 있어 보이도록 노력을 했어야지. 내가 괜한 얘기 하는 것 같아요?”

“아니, 아닙니다.”

“여기서 일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어딜 가든 똑같아요. 주리씨같은 사람들 보면 자꾸 어렸을 때 내 생각이 나서 그래. 그런 사소한 것 하나도 신경 쓰고 노력해야지. 수업만 잘 하면 다에요? 요새 아이들이랑 학부모들이 얼마나 예민한데.”


교사들 중 한 명이 ‘아까는 화장…….’ 이라며 중얼거렸지만, 다시 툭 치는 소리와 함께 그 목소리는 사라졌다.


영희씨는 참아왔던 짜증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젊은이들이 어떻게 미래를 이끌어 나간다는 건지.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말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더불어 한 명의 젊은이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준 것 같아 묘한 뿌듯함도 영희씨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사실 이 쯤되면 얼굴을 잔뜩 붉힌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하며 자존심 상해 할만도 한데, 이 지원자는 별 말없이 담담한 얼굴로 들을 뿐이었다. 그 점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은 낫다고 영희씨는 생각했다.


“일단 오늘은 수고했고. 이번 주 중으로 결과를 알려 줄게요.”


신입 교사 면접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이름을 진주리라고 밝힌 지원자는 마지막까지 똑바른 자세로 유치원을 걸어나갔고, 선생님들은 한숨을 푹 쉬고 야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뒷정리, 교육 계획안 작성 등 선생님들이 남아서 처리할 일은 아직도 많았다.


“저……. 원장선생님. 주리씨는 어떻게 할까요?”


샛별 유치원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했던 선생님이 원장실의 문을 두드리고는 고개를 슥 들이밀며 물었다. 김영희씨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방금 떠나간 지원자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단정한 머리카락, 복장, 똑바른 자세,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는, 하지만 밝은 얼굴. 긴장한 듯 떨렸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까지. 참으로 이상적인 지원자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희씨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녀의 경험에 입각하면, 그런 아이들은 꼭 그 얼굴 값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지원자는 없어요?”

“그게……. 학교마다 다 연락하긴 했는데, 그게 삼월부터 연락한 거라…….”


‘아마 마지막일 거에요’ 라는 말을 차마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한참 바라보던 김영희씨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생님은 어때요? 채용 해야할 것 같아요?”

“그게……. 정선생님 나가고부터 일이 많이 몰려서…….”


고개만 빼꼼 들이민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영희씨는 그 말의 진심을 읽으려는 듯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책상으로 돌리며 무심히 대답했다.


“일단 생각 좀 해보고. 이번 주 안에 결정하는 걸로 할게요.”


문이 조용히 닫히자마자 영희씨는 짜증이 솟구침을 느꼈다. 몰릴 일이라는 게 없는데. 일하는 교사가 다섯 명에서 네 명이 된 것뿐인데 일이 많이 몰린다고? 평소에 매일 언제 퇴근하나, 시간만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영희씨는 마지막으로 진주리 지원자의 서류를 한 번 훑어보고, 이내 서류 뭉텅이를 책상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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