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김영희씨는 오늘도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녀가 계획한 주차장 합병 안건이 바로 집행되리라 생각했던 동 대표 회의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대표를 맡자마자 업적을 세울 기회를 허무하게 놓친 것이다! 사실 회의랄 것도 없었다. 관리사무소 직원, 관리소장, 그리고 각 동 대표가 함께 차를 한 모금 했을 뿐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생각보다 크고 깔끔했음을, 김영희씨는 그 때 알았다.
단 하나 문제가 있었다면 101동 동대표가 오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직원 중 누구도 그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영희씨가 묻자, 그들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대충 흘려 넘길 뿐이었다. 같은 아파트인데 우리 소관이 아니라니?
“거긴 다른 아파트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더 물어보려 했지만 관리소장은 그렇게 이어진 질문을 막아버렸다. 직원들도 그렇고 관리소장의 태도에는 어쩐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권면이 깃들어있는 것 같아서, 영희씨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원장을 역임하고있는 그녀의 자존심에 금이 갔음은 두 말할 나위 없었다.
“요즘 아파트 근처에 노숙자 분들이 많이 돌아다니더라고요.”
“역 안에 상가를 안 들여서 그래요, 그게. 자리가 있으니까 다들 눕고 보는 거지.”
“역도 많은데 하필 이 근처람. 어휴.”
영양가없는 대화가 삼십 분 정도 오고갔다. 아파트 근처에 울타리를 둘러야 한다, 정문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경비업체 직원을 늘려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갔고, 영희씨도 간간이 대화에 참여했다.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 함부로 내치고 그러면 밖에 소문나서 이미지 더 안 좋아져요.”
“아파트 노인정같은 걸 만들어서 모셔야하나?”
“아유, 부지도 없어요. 지어도 주민들 가기도 좁지. 그리고 그 분들이 뭐라고 모셔요?”
회의 내용과는 반대로, 회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101동에 대해 물어봤을 때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황당할 정도로 좋은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 속에서도, 영희씨는 오늘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반드시 성취하고 말리라 다짐하며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아 그리고, 주차장 민원이 많아서……. 지하 주차장을 합치는 건 어때요?”
다시금 소장을 포함한 관리사무소 직원 전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영희씨만큼 촉이 좋지 않더라도, 혹은 수 년간 사람들을 상대하며 노하우를 축적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만한 태도의 변화였다. 식당 음식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한 손님처럼 불편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하던 소장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좀 힘들겠습니다.”
“아니, 뭐가 힘들어요? 페인트 조금만 칠하면 되는데.”
실제로 101동과 102동 지하주차장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지하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사람 주먹 두께만한 빨간 페인트가 그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선 위에 주차장 바닥과 같은 회색 페인트를 덧칠하기만 하면 주차장을 함께 이용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여놓은 경고문도 뗀다면. 「지하 주차장 이용 관련 중요 공지 : 101동 구역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거긴 다른 아파트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해요.”
“속 편하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이해가 안 되네. 동대표 회의인데 대표는 오지도 않고.”
같은 아파트지만 다르다고 생각해라. 의미는 알겠지만 김영희씨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동도 겨우 두 개밖에 없는 아파트인데 그 둘이 다르다고?
“101동은 자체 관리사무소가 있어서 그 쪽에서 관리를 하는 터라 저희도…….”
“어흠.”
명진씨라고 불리던 직원이 한 마디 하려하자, 소장이 재빨리 입을 막았다.
“저는 이제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하시죠.”
뜨거운 녹차를 한 번에 들이킨 관리소장은 그렇게 후다닥 사무소에서 나가버렸다. 동 대표 회의는 불과 몇 시간 전 그렇게 어영부영 끝났고, 영희씨의 아파트 개혁의 첫 발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기고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사소한 일처리가 늦어지는 것, 그리고 동 대표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때문에 영희씨는 유치원에 와서도 마음을 쉽사리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원장선생님, 오늘 면접 있어요.”
때문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무렵, 한 선생님이 전해준 말에 영희씨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달 출산휴가를 들어간 교사 한 명이 있어서 교사 채용 공고를 올렸었다. 사실 남은 선생님들만으로도 운영에는 큰 문제가 없어서 따로 채용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 남은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차마 그대로 근무를 시킬 수가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참 인내심이 부족하단 말이야. 어차피 매일 하는 일은 똑같은데 하는 사람이 한 명 줄어들었다고 일이 그렇게나 많아질 수가 없지 않은가?
정작 할 일이 많은 건 난데. 면접을 위해 교실로 이동하며 영희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학부모 면담도 밀려있고 아이들 등록도 신경써야했는데 동대표가 되지를 않나, 동대표로 일 좀 처리하려고 했더니 다들 뭔가 숨기는 눈치고! 게다가 지금 만약에 새로 교사를 채용하게 되면 급여를 비롯한 계약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렇게 짜증이 난 상태에서, 한 명뿐인 지원자의 수업 시연이 영희씨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짜증을 애써 억누르고 수업 시연에 집중하려 했다. 지원자는 다소 긴장한 듯 말 끝을 떨면서도 막힘없이 수업을 진행했고, 만 3세에서 5세까지의 아동의 눈높이에 어울리는 대본을 잘 준비해온 듯 했다. 영희씨는 재빠르게 지원자의 모습을 훑었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검은 머리, 보일 듯 말 듯한 옅은 화장. 검은색 정장 치마에 장식없는 하얀 블라우스. 교과서였다. 어쩌면 어렸을 적 김영희씨가 상상하던 교사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이윽고 수업이 마무리되고 선생님들이 질문이 이어졌다. 집은 어디냐, 전공은 무엇이냐, 채용 정보는 어디서 알게 되었느냐,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인가, 야근이 많을텐데 괜찮겠느냐, 주말에도 출근할 수 있겠느냐 등. 하얀 얼굴의 지원자는 말을 흐리는 법 없이 또박또박 잘 대답해나갔고, 선생님들도 조금씩 마음을 여는 듯 편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영희씨는 그제야 지원자에 대한 서류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학교 이름이었다. 언뜻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애매한 학교의 이름. 나중에 선생님들한테 어디있는 학교인지 물어봐야지. 성적은 준수했다. 대부분 A, 간간이 콩밥의 콩처럼 박혀있는 B. 뭐, 요즘은 다들 성적은 잘 받으니까. 성적표를 찬찬히 훑어보던 영희씨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대학교 성적표에도 생활기록부가 필요해. 도대체 이런 것들로 사람을 어떻게 믿는단 말야? 동대표로서의 야망을 제고하느라 모의 수업을 흘려들은 영희씨는 자신이 유치원 원장이 아니라 대학교 총장이 되었어야한다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