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그냥 설레발만 안 치면 돼요. 연락 한 번 했다고 그 다음 단계인 이걸 해야지, 전화 왔으니까 다음에는 이걸 해볼까, 둘이서 밥 먹었으니까 담에는 이걸 해야해! 이런 설레발. 그냥 그 때 그 때 함께하는 것들에 너무 오바하고, 의미부여하고, 이건 날 좋아하는 거라고 막……. 그러지만 않으면 돼요.”
첫 연락 이후로 종종 조언을 구하게 된 주현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 남자에게 당한 기억이 있기라도 한 듯.
그 조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리와 나는 지난 몇 주간 단 둘이 식사를 할 정도로 친해졌다. 임용고시를 보는 대신 사설 유치원에서 일할 생각이라는 주리와, 한 때 취직 준비만 일년 넘게 했던 나는 직장과 진로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참 많았다. 저는 이렇게 준비했는데, 오빠는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거에요? 물론 어느 것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식사가 지나자 대화의 주제는 점점 서로에게로 번져갔다. 좋아하는 음식, 음악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서로 살아온 이야기, 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곧 서울에 있는 집을 처분할 것 같아요.”
퇴근 후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던 어느 날, 주리는 그렇게 말했다. 더 이상 서울에 있는 집을 유지할만한 여력이 되지 않아 집을 처분하고 온 가족이 원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이번 하반기까지는 서울에 작은 원룸이나 하숙을 구해서 직장을 알아보겠지만, 만약에 찾지 못하면 자신도 함께 원주에 내려가서 살게 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아니면 면접있을 때만 서울로 올라올 수도 있겠네요.”
주리는 또 다시 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을 마쳤다. 맘 같아서는 바로 아파트로 들어오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주현이의 조언을 따라 참기로 했다. 내가 호의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쩌면 주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 그보다, 애초에 같은 건물로 들어와서 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다른 속셈이 있어 보일 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쉽게 나왔던 ‘같이 살자’는 제안이, 주리의 앞에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럼 지금처럼 자주 못 만나겠네.”
아쉬움에 한탄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게 되니까 가능해진 거다. 대답 하나, 추임새 하나에도 한참을 생각하며 대답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주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주 만났어요, 우리?”
“어…….”
동상이몽인가. 나는 분명 연락도 자주 주고받고, 만나기도 자주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보는 것 같으니까. 아니 두 주에 한 번인가? 물론 단 둘이서 만난 횟수가 아직 열 손가락을 채우진 못하지만, 그래도……. 대답할 거리를 찾으며 눈을 한참 굴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주리는, 이내 픽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농담이에요. 그러게, 지금처럼 갑자기 연락해서 만나고 그러진 못하겠다.”
다시 한 번 주리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잡았다. 매일 천장에 몇 번이고 그려보던 그림같은 눈웃음. 아, 그런 말을 할 때는 쓴웃음을 지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랑 만나지 못하는 게 너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 같잖아. 아니면 그런 거니? 그게 너에게는 당연한 일인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