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view moments

분출하라

감정 다스리기를 위한 글쓰기 4

by 사색의 시간

'이번 단원은 분출하는 것에 대해 다룬다.' 첫 문장과 단원 제목을 읽으며 오늘도 외친다. 그게 됐으면 내가 이 책을 사서 이걸 쓰고 있겠냐구요...어쨌든 계속 읽어가본다.


'분출이라는 것은 감정이 발달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막히거나 고립된 감정은 그 중간에 멈춘 것이다.'


조금 놀랐다. 분출이 사라짐의 과정이며, 그 과정 중에서도 마지막 단계라니. 그동안 내가 겪었던 숱한 감정들을 돌아본다. 그 중에서 과연 분출된 감정은 얼마나 있을까? 당연히 눈꼽만큼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분출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그럼 그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보이지 않으니 어디론가 갔겠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모두 멈춰있다고 하자 갑자기 좀 무서워졌다.


이 책이 싫기도 하면서 결국엔 좋은 점은, 약간 냉정하다는 거다.

'감정을 한 번씩 분출할 때마다 감정의 양이 반 정도 없어지는 것과 같아서 점점 작아지기도 하고 분출의 절차가 조금씩 더 쉬워지긴 하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될 기술은 그 절차를 따라가는 것을 도와줄 것이지만, 하나의 감정을 완전히 절대적으로 사라지게 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 부분에 줄을 그어놓고 옆에 이렇게 썼다. 존나 냉정하네...

하지만 이런 냉정함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도와준다.


정서의 분출은 '신체적 과정'을 우선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의 첫번째 과제가 [1분 동안 신체적인 글쓰기]라는 거다. (과거의 나는 이 짓을 정말 싫어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손가락을 글쓰는 듯 놀리되, 아무 내용도 쓰지 않는 것. 펜으로 노트에 쓴다면 그냥 의미 없는 기호나 선을 긋는 거고, 키보드로 쓰는 거라면 ;ㅣㅁ니ㅏㅇㄹ젿햐ㅕ니아러ㅗ쟈ㅐ뎌홎ㅎ 이런 식으로 내용 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거다. 신체로만 글을 쓰는거다.


그동안 나는 이런 행위를 극혐해왔다. 왜냐면 글쓰기라는 행위에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이 흘러가는대로 나오는대로 써내려가는 글쓰기 또한 혐오하여, 내 의식을 언제나 컨트롤하려고 무진장 애써왔다. 반드시 정리된 글로 써낼 수 있도록 말이다. 써놓고 보니 엄청 말이 안되는데, 여튼 나는 그런 짓을 해왔다.


그런데 이것이 첫번째 과제라니 나는 좀 통쾌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이게 잘못된 게 아니구나. 이것도 나에게 다 도움이 되는 행위구나. 안도감을 느꼈다.


1분 동안 신체적 글쓰기를 마치고 나면 감정을 쓰는 글쓰기로 진입한다. 그러니까 신체적 글쓰기는 다음 단계에서 벌어질 감정과의 대면을 어려워하지 않도록 만드는 워밍 업의 개념인거다.


감정 쓰기 과제는 (물론 하지는 않았지만) 두 종류의 정서적 분출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첫째, 묻어 두었던 정서를 발견하는 것과 둘째,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온 오래되고 낡은 정서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두 사항에 대해 밑줄을 그어놓았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지무지 하기 싫다. 그래서 안했다. 이런 것들을 해야만 나아진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고 싫다!


감정이 어떻게 막히는가? - 감정은 왜 막히는가? - 감정이 막히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에 대해서도 단원별로 다루고 있으나 결국 '나한테 안좋은 감정이라 막았다. 근데 감정이 막히면 나한테 안좋다' 로 정리할 수 있다. 감정을 막는 것 또한 마냥 나쁜 작용이라 볼 수만은 없다는 거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거니까. 근데 그게 또 나중에는 문제가 되는거고.


나라는 인간은 모든 순간 나를 위해 일한다. 그리고 이 나를 또 돌아보면서 나를 위해 잘못된 부분을 해소해줘야 하는 거다. 나를 사랑하려면 겁나 부지런해져야 한다. 매 순간 스스로를 보호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어그러짐과 억압들을 풀어줘야 한다.


'정서를 붙들고 있는 대신 분출하게 되면, 몸과 마음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


나는 항상 경직되어 있고 위축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는 대체 뭘 붙들고 있는걸까? (그걸 왜 모르는 걸까?) 여러가지 고민이 필요한 4장이었다. 물론 귀찮아서 이 물음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생각난 김에 해볼까 한다. 나는...자꾸 고모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내 기억에 그토록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걸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을 써보라했을 때 나는 내가 당연히 아빠라고 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빈칸에 고모라고 썼다. 내가 쓰고도 내가 깜짝 놀랐다. 어린 나에게 고모들은 시끄러운 어른들, 싸우는 어른들, 공평하지 못하고 치사한 어른들이었다. 지금 보면 뭐 그들도 다 살려고 그랬던 거겠지 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시절의 불편함과 억울함과 수치심을 붙들고 있는 듯 하다. 그런 감정에 휩쓸리면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 거 같아서. 억압할수록 억울하고 수치스러웠던 어린 아이를 점점 더 외롭게 만드는 거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분출해야하지?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글쓰기를 제시한다. 쓰고 쓰고 또 쓰고. 좀 지겨운데. 근데 또 써봐야겠다. 그 어린 아이가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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