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view moments

한 주 동안 본 것들

에 관한 수다

by 사색의 시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이 취소되었다. 공연, 연극, 무용수 오디션 등등의 취소 공지도 속속 떴다. 문화 예술계 역시 힘든 시기. 그 와중에 몇몇 작품들이 <온라인 상영>으로 대체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온라인 상영으로 본 것은 예술의 전당에서 상영한 <발레, 심청> 이었다. 일단 한복을 입고 발레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인당수 아래 계신 용왕님이 너무너무너무 잘생긴 발레리노였다...


그 다음으로 본 것 역시 예술의 전당에서 상영한 <지젤>. 춤에 미쳐 패가망신한 여자의 이야기라길래 혹하여 봤는데, 어떻게 사람의 몸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몸짓이 압권이었다. 하지만 심청과 지젤을 보면서 생각했다. 발레는 아름다운 무용이지만 발이 너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완전히 몰입하기가 조금 어렵다고. 몸짓이 아름다울수록 그에 비례할 그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다가오는 것 같아 마음 편히 볼 수 만은 없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봤다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장면에 자막이 달려있어 이해가 쉬웠고 (그 몸짓들이 다 대사였다니!) 배우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공연장에서 보다 더욱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예술의 전당에서하는 클래식 연주도 봤다. 앞서 상영한 발레 공연들은 지난 작품 영상을 틀어준 데 반해 클래식 연주는 실황을 그대로 생중계하는 것이었다. 무관중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송출해주는 형태였다. 무관중이어서인지 다소 편한 복장으로 나온 연주자들의 모습, 마스크를 낀 페이지 터너의 모습이 새로웠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유튜브 실시간 채팅을 통해 관객과의 대화를 하기도 했다. 아이패드 악보가 세련되었다고 느꼈는데 악보를 가져오지 않아 벌어진 헤프닝이라는 거, 아이패드 악보는 블루투스 페달로 넘긴다는 거, 연주자들의 경력과 의도치 않은 나이공개 등등 깨알 같은 정보를 묻고 듣는 재미가 있었다. 다들 힘들고 지친 시기에 이렇게 좋은 공연을 준비하느라 애써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만큼 연주도 세팅도 멋진 공연이었다.


온라인 상영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네이버TV에서 상영하는 <금란방>에도 도전해보았다. 옛 한국을 배경으로 책 읽어주는 전기수를 소재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다. 금기에 도전하는 이야기라는 예고에 혹했는데, 오히려 금기를 강화하는 것 아닌가 싶은 대사들이 불쑥 불쑥 나와서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여자가 먼저 용기를 내게하다니! 난 정말 모자란 남자군!' 이런 식의 대사들) 내 취향은 아니었던 걸로.


읽은 책으로는 이승우의 <소설가의 귓속말>이 있다. 이승우 작가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에 반가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그러고보니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를 읽은 것은 2016년이고, 그때 나는 과연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열심히 의심하고 있던 시절이었다...ㅋㅋㅋ)


사람이 무엇인지 말하는 장르인 소설은 소설가 자신을 파헤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책은 '꼭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어떻게 소설가가 되는지 알아낼거야'하는 다짐 없이 그냥 편하게, 작가가 하는 말을 듣는다는 태도로 읽어갔다. 그걸로 좋았다. 특히 스스로를 믿는 것을 인생 과제로 삼고 있는 나에게 깊게 와닿는 글이 있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좌충우돌과 회오리, 혼란이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욕망을 가진, 예측 불가의 가능성이니까. (중략)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알려준 사람은 나이다. 나는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후략)


이 글을 읽으며 아, 나를 믿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를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구나! 싶어서 마음이 시원해졌다. ㅋㅋㅋ


나는 왜 더 제대로 읽을 수 없을까? 나는 왜 더 제대로 쓸 수 없을까? 하는 자책은 이제 그만 내려두고 내가 읽을 수 있는 것들을 읽어가고 쓸 수 있는 만큼을 쓴다. 나는 딱 나만큼 살아간다. 내가 읽고 쓴 만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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