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작품 소개에 글쓰기와 관련 있는 구절이 있으면 자동으로 클릭하게 된다. <반쪽의 이야기>가 그랬다. 주인공 앨리가 폴의 연애편지를 대신 쓰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사랑 이야긴가? 싶었는데 앨리가 영화 초반에 못박는다.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아주 야물딱진 성장영화였다.
영화 중간 중간 검은 화면에 흰 글씨로 명언을 띄우는데, 그 타이밍과 문구가 매우 적절하여 재밌었다.
In love, one always starts by deceiving oneself...and ends by deceiving others. That is what the world calls a romance.
사랑은 늘 자신을 속이면서 시작하고, 남을 속이면서 끝난다. 세상은 그걸 연애라 부른다. -오스카 와일드
딱 한통만 쓰고 끝내려 했는데, 폴이 좋아하는 애스터가 앨리와 코드가 맞았다. 앨리는 처음으로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 애스터와의 편지를 이어나간다. 한편으로는 폴에게 애스터가 좋아하는 책, 그림 등등을 설명해주면서. 애스터 역시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래서 폴에게 조금씩 호감을 느낀다. 그때의 심란한 앨리의 내면이 잘 묘사된다. 둘이 잘되니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오묘한 기분.
오묘한 기분은 앨리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폴 역시 내내 앨리와 붙어 있으면서 앨리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애스터 역시 앨리에게서 직감처럼 무언가를 느낀다. 얽히고 설키는데 이게 다 이해가 된다. 맞아. 저럴 수 있을 것 같아. 하면서 보게 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그래서 전 사랑합니다.] 자기애로 가득한 트리그가 이렇게 운을 띄우며 애스터에게 청혼을 한다.
사랑을 모르지만 전기세를 내기 위해 돈을 받고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한 앨리. 앨리는 연애편지를 쓰면서 '사랑은 무엇인가' 깊은 고찰을 하게 된다. 그리고 트리그의 청혼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겸손한 게 아니에요. 사랑은...사랑은......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에요. 완벽한 반쪽을 찾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거에요. 그리고...손을 내밀고 실패하는 거에요. 사랑은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는 거에요. 훌륭한 걸 그릴 기회를 위해서.
이 시점부터 어....앨리와 애스터의 퀴어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역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폴과 앨리와 애스터는 이어진 듯 떨어진 듯 각자의 삶을 살아나간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는 거다. 이해되는 관계. 그것은 한 인간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용기를 준다. 덕분에 셋은 저마다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앨리가 영화를 보며 '멍청이 같아'라고 했던 장면을 나중에 폴이 그대로 재현해주자 앨리는 그걸 보면서 펑펑 울었다. 애틋함이란 그런 거 아닐까. 옆에서 보면 멍청이 같지만 직접 느끼면 울고 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