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view moments

태양 아래 새로운 것

by 사색의 시간

에클레시아스테스, 당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당신 역시 태양 아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나요. 당신이 쓴 시 역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아니던가요. 왜냐하면 당신 이전에는 그 누구도 그것을 쓴 적이 없었으니까요. 당신의 시를 읽는 모든 독자들 또한 태양 아래 새로운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시대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그것을 읽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당신이 그 그늘에 앉았던 사이프러스 나무 역시 세상의 시작부터 거기서 자라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비슷하지만, 바로 그 나무는 아니었던, 다른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 나무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에클레시아스테스, 나는 당신을 만나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지금 태양 아래 새롭게 쓰고 싶어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요? 아직 생각을 정리하고 있나요? 혹시 그 생각들 가운데 일부를 부정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 적은 없나요? 당신이 과거에 쓴 서사시에서 환희를 느낀 적은요? 그 일시적이고 덧없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쩌면 태양 아래 새로운 당신의 시는 바로 그 환희에 관한 것은 아닌지요? 벌써 초안을 잡고 메모를 시작했나요? 설마 이렇게 말하지는 않겠죠. "모든 것을 다 썼다.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고......이 세상의 어떤 시인도 이렇게 단언할 수는 없잖아요. 특히 당신처럼 위대한 시인이라면 더욱 그렇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 중-


이 글을 읽을 때 하늘이 흐렸어요. 읽고 나니 흐린 하늘에서 태양이 나타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차가운 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깨끗하고 빛나보였고요. 소감 연설을 이 정도로 하는 경지가 되어야 노벨상을 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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