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5일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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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썼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무렵일 거라 생각은 했는데 8월 5일이면 엊그제였네요. 엊그제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집 안에 콘센트가 펑펑 터졌습니다. 저는 '에너지가 바뀌면 쓰던 물건이 망가지거나 부서진다'는 걸 믿는 편이에요. 몇 달 전 샤워기가 망가진 뒤로는 나름 평화로운 나날이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습니다. '아. 나를 둘러싼 전류들이, 내 안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들이 완전히 바뀌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딱 8월 5일이었어요.
일 년 전 저는 짜파게티와 복숭아를 먹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네요. 2020년의 저는 <1년 동안 일을 구하지 말고 스스로의 시간을 가져보자>라는 약속을 깨고 조급함에 이미 직장을 구했고요. 예상과는 달리 2017년과는 더 이상 비교하지 않아요. 일 년 전 8월 5일에 그랬듯, 2020년 8월 5일에도 빗소리를 들으며 감사한 밤을 보냈습니다.
'이번 일 년은 뭔가를 하라고 하지 않을 거다. (...) 알아서 풍요로워질 거다.'라고 쓴 것을 보고 웃음이 났어요. 2020년엔 태어나서 가장 많이 그리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거든요. 뭔가를 엄청 하라고 한 것 같아요. 알아서 풍요로워진 건 맞네요. 일 년 전보다 풍요로워졌어요. 내면과 주변 환경이.
2019년에 제가 고민했던 것들은 '체념하는 태도'와 '스스로를 다그치는 태도'였어요. 둘 다 태도의 문제네요. 마침 근래 제가 스스로 다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역시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일 년 전에 편지를 써두면 일 년 후에 자연스레 그것에 감응하게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두 가지가 들어맞아요.
1. 절대 스스로를 욕하지 말 것
예전에 저는 저녁 무렵만 되면 스스로를 비난하곤 했습니다. '오늘 네가 한 게 뭐 있어? 오늘도 의미 없이 보냈네.' 그런 말들로 자신을 괴롭혔어요. 그 비난에 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비난하지 않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저녁 무렵에 하루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이때가 제일 위험해요) 그때 다짐합니다. '퇴근하고 내 시간이 시작되잖아. 그때부터 하면 돼. 아직 하루가 다 간 거 아니야. 오늘 눈 감기 전까지 절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을 거야.'
이래 놓고 눈 감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했다? 그 감정이 뭔지는 알겠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뭐라도 했을 겁니다. 유튜브를 보든 멍을 때렸든. 그럼 무조건 잘했다고 해줘요. 퇴근하고 3시간 동안 유튜브를 봤어? 네가 그게 필요했나 보다. 잘했어. 멍을 때렸네? 너에게 꿀 같은 휴식이 되었을 거야. 잘했어. 그럼 나라는 인간은 '어... 잘했어? 우왕... 잘한 거구나.' 하고 일단 마음이 편해집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편안한 마음은 다른 뭔가를 하는 발판이 되어줍니다.
평생 스스로를 비난해놓고 그 비난이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달은 걸까요? 그동안 '지금 여기'를 보지 않으려 했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자 그 비난도 쓸모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이때까지는 그 비난이 필요하다고 여겼어요.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비난받으니까 비난받을 만한 삶을 살아도 된다고 합리화했어요. 깨닫고 난 뒤에 써보면 이렇게나 이상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저의 생생한 현실이었습니다.
2. 스스로를 보호할 것
일상에서 일어나는 조그만 소음이나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어요. '누구나 다 그러지 않아?', '너만 유별난 듯이 굴지 마' 하는 말들로 저의 스트레스를 못 본 척 넘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오면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든 '나를 보호한다'는 생각을 해요. 이게 스트레스받을만한 상황이야? 왜 이런 거에까지 스트레스받아? 하며 스스로를 더욱 공격하지 않습니다.
일 년 전의 내가 보내준 메시지 덕분에 일 년 동안의 내가 잘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2021년의 나를 위해서 오늘의 나로서 편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년의 나에게>
안녕. 반가워. 2021년 8월의 나는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길 바랄게. 그만둘 준비도 잘하고 있길 바라. 1년 간 네가 쓰고 싶은 글을 써서 출간했으면 좋겠고 좀 더 내면의 자아들과 가까워졌으면 좋겠어. 글과 자아, 그것들과 지금보다 더욱 소통하길 바라.
2020년의 나는 초를 켜고 향을 피우고 명상을 해. 향이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춤을 추기도 한단다. 어젯밤에는 명상 방석에 앉아 간절히 기도했어. 그동안 나는 간절한 기도를 하지 않았거든. '발원'하기보다는 내게 오는 것들을 '감당'할 수 있길 바랐어. 그런데 이제는 간절히 기도하고 싶어 졌어. 바라고 싶어 졌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누리며 사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나도 원하고 싶어 졌어.
어제 나는 이렇게 기도했어. '허황되지 않되 자신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간절한 기도에 내면이 물었어.
'왜 허황되지 않길 바라지?'
나는 답했어.
'허황된 건 무서우니까요. 허황된 건...'
그 순간 깨달았어. 허황되었다는 생각조차 거짓임을. 나는 커다란 꿈을 갖는 것이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그것들을 '허황된 것'이라고 불렀던 거야. 그것들은 허황된 것이니까 이루어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허황된 것이니까 무너져버릴 거라고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큰 꿈과 떨어뜨려놓고 있었던 거지.
내면은 말했어.
"허황된 것은 없다."
알겠지? 네가 내면과 이어져 있는 한 허황된 것은 없어. 무엇이든 이루어질 거야. 그러니 내면을 잊지 말고 너의 큰 꿈을 품길 바라. 네가 원하는 집에 살면서 네가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살길 바라. 너는 그렇게 될 거야.
*
이제 이 메시지가 일 년 동안의 저를 움직여 주겠죠. 한 번 써보세요. 일 년 후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요. 우리가 잊고 있는 동안에도, 그 메시지는 부지런히 우리의 삶을 이끌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