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직시하면 달라지는 것

by 사색의 시간

지금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은 질리도록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저는 거의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왔었습니다. 항상 '저걸 해야 하는데', '집에 가서 그거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지금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았어요. 그러니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고, 마음에 찰 리도 없었습니다.


명상을 하는 동안 마음을 비우긴 했지만, 또 눈을 뜨고 일상을 시작하면 자연스레 '그래서 오늘 저녁엔 뭘 해야하지?' 전전긍긍했습니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죠.


저에게 '글 써야 하는데' 보다도 오래된 역사를 가진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청소해야 하는데' 입니다. 어렸을 때 정리를 잘 하지 못한다고 자주 혼이 났어요. 아빠는 제 방을 보며 '그 사람의 방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알 수 있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저는 '청소해야 되는데'하는 생각을 항상 머릿 속 한 구석에 띄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완전히 그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제 방이 전혀 더럽지 않았거든요.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아...청소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청소하기가 싫고, 그대로 방을 외면해버려요. 잠이 들거나 책을 읽거나 뭔가를 하죠. 그런데 그때는 그냥 힐끗, 방을 바라보았습니다. 와. 그 상태로 얼어버렸어요. 방이...깨끗했거든요.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알겠더군요. 지금 여기 이 순간, 제 방이 깨끗하다는 사실을요. 예전에 엄마가 해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네가 정리를 잘 못하는 게 아니라 방이 너무 좁고 수납공간이 없어서 그런거야'. 제가 정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 상황이 그랬을 뿐이었던 겁니다. 제 방을 보고 정신상태를 운운하던 아빠는, 사실 아빠 자신의 정신 속에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 방은 더러워.

내 몸은 바뀌어야 해.

나는 글쓰기가 힘겨워.


이런 것들은 모두 지금 여기가 아니라 저 어딘가에, 지금 여기보다 더 익숙한 어딘가에 존재하는 생각들입니다. 나는 항상 그것들만을 바라봤어요. 지금 여기가 어떤 줄도 모른 채.


저는 '지금' 제 방이 깨끗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두근거렸어요. 지금 제 방이 깨끗하다는 건 지금 제가 아름다운 사람이자 좋은 작가일 수도 있다는 거거든요.


생각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이 어떤 것인지 체득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방 뿐만 아니라 내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어요. 내 몸, 내 얼굴, 내가 앉아 있는 사무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나의 애증인 글까지.


나쁜 생각이 들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 내가 익숙한 곳 어디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건지도 몰라요. 너무 익숙해서 사실인 줄 착각하게 만드는 바람. 저도 시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늘 같은 바람을 맞고 있어요. 지금은 '아, 바람이구나.' 하고 알아차리지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또 모르죠. 그 바람을 붙잡고 이것이 나라며 울게 될 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늘 좋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해요. 덜 먹고 더 달려요.


조금만 용기를 내서, 조금만 시간을 내서 지금 여기를 돌아본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엉망이지도 최악이지도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 그동안 명상을 해왔나봐요. 고요 속에 머무르는 연습을 차곡차곡 쌓은 뒤에야 지금을 보는 힘이 쬐금이라두 생겼으니까요. 다행이에요. 내 인생이 엉망이 아니라서. 내 인생이 최악이 아니라서. 엉망이라도 나를 바라볼 수 있어서. 최악이라도 지금 여기 발 붙이고 존재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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