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는 단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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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미 기발하고 이미 뛰어나야 할 것 같다.
때문에 이 제목이 더욱 나의 눈에 들어왔다.
크리에이티브가 단련되다니, 가능할까.
나는 목차가 쉽고 아름다운 책을 좋아한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목차에 보이는 책이어야 한다.
이 책의 목차는 매우 아름답다.
1. 순수한 마음
2. 관찰하는 눈
3. 기록하는 손
4. 편집하는 머리
5. 단련하는 몸
나를 두근거리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은 소소한 습관이었다. 누가 시켰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즐기면서 오랫동안 해왔다. 새벽마다 영화 위시리스트를 한 편씩 지워나가는 일, 매일 아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내려 종이 신문을 보면서 스크랩하는 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음악을 스마트폰으로 붙잡는 일, 산책을 하면서 엉뚱한 풍경과 대상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일, 틈만 나면 소셜미디어 앱의 스크롤을 내리며 최신 이슈를 캐내는 일, 서점에서 책을 훑어보며 꽂히는 키워드를 찾아보는 일, 땀이 쏙 빠질 때까지 러닝머신 위를 힘껏 달리는 일...이렇게 소소한 행동들을 연결해서 꿰다 보니 그 자체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 나만의 '단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크리에이티브는 대상에 눈길을 주기 이전에 자신의 일상에,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눈길을 주는 사람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무얼 발견하느냐. 거기서부터 창작은 시작한다.
나는 어떤 '단련'을 하고 있나? 저자의 습관들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명상을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열심히 책을 읽긴 하지만. 그것을 '단련'이라고 할 수 있나? 머뭇거린다. 여기서부터 버벅거린다. 태도의 문제다.
사실 우리는 이미 크리에이터가 되는 법을 알고 있다. 무엇이든 열심히 보고 듣고 느끼고, 관심과 애정을 퍼붓고, 다르게 보고, 깊게 파고 들고, 진심을 담아 표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꾸준히 하면 된다. 크리에이터가 되는 법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성공하는 법'이라는 타이틀을 갖다붙여도 무방하다. 어떤 분야든 이 방법은 통한다.
이미 아는데 왜 자꾸 이런 책이 나오고 나는 자꾸 이런 책을 읽는 걸까?
아직 내 삶에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녹아들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될 때까지 나는 이런 책을 고를 것이며 이미 삶에 녹여내 습관이 된 누군가는 이런 책을 써낼 것이다.
결국 크리에이티브를 단련하려면 몸이 먼저 단련되어야 한다.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러닝머신에서 빨리 걷거나 달리기만 해도 생각의 근력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면 지금 당장 운동화부터 신어보자.
이 말이 내게 위안이 된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헬스장에 갔다. 가만히 있느니 몸이라도 움직이자는 심정이었다. 그러다보니 글쓰는 시간보다 운동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내가 글을 쓰려는 건지 운동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쓰기를 회피하여 헬스장으로 오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체력이 조금씩 늘면서, 알 것 같았다. '글을 쓸 수 있는 몸'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자에 앉는 데만 해도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덤벨을 들면서 혹은 스쿼트를 하면서 문득 소재가 떠오르기도 한다. 글쓰기 역시 몸으로 하는 일이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건, 글쓰기를 위한 쉐도잉이랄까.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시간을 견디고 나면 글도 그렇게 견디며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처음부터 능숙한 것은 없다. 지금은 숨쉬듯 타이핑을 하지만, 처음 컴퓨터를 접했을 때를 떠올려보라. 독수리 타법으로 시작했다. 그러니 나의 능력이 보잘 것 없고 더디다고 여겨질 때도, 낙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알면서도 낙담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바로 그 낙담의 순간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터닝포인트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울면서 달리고, 울면서 쓰고, 울면서도 무언가를 했던 시간들 속에서 당신은 이미 유일한 존재로 단련되고 있다는 걸 기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