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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이 되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by 사색의 시간

11월이 흘러갔다.

한달동안 요가를 하고

퇴직금을 받고

실업급여 신청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인데도 이상하게 자존감이 낮아지는 퇴직금과 실업급여)

무용워크샵을 다녔고

전주를 갔다왔고

마음챙김 워크샵을 마쳤고

듄을 봤고

네일과 피부관리를 받았고

헤어졌던 이의 연락을 받았고

그래서 춤을 추다 달려갔고

그렇게 또 헤어지고

마지막 날은 홀로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팀의 내한 공연을 보았다


이렇게나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가장 인상적인 일은

청소였다.


나는 이 좁디 좁은 방조차 청소어플의 도움을 받은 적이 두어 번 있다.

방을 치우러 왔던 사람은 내 방에서 무기력을 읽었는지

청소를 마친 후

'식사 잘 챙겨 드시고 힘내서 지내시길 바라요'

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청소도 굉장히 깨끗히 해주셨는데

내가 또 다시 식사를 거르고 힘 없이 산다는 사실을 알릴 수가 없어서

그 사람을 부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11월 내내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방을 치워나갔다

치우면 또 더러워지고

치우면 또 더러워지고

조금 깨끗해지나 싶다가 어김없이 돌아오는

그 반복되는 풍경을 보는 것이

한심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고

그렇게 청소를 했다


그래도 그렇게 날마다 더러워지는 와중에도

옷장 정리를 했고

책정리를 마쳤다

물론 분리수거도


매일 치우는데도 완벽하게 깨끗해지지 않는 방처럼

나의 인생 자체가 그런 모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발버둥쳐도 어딘가 한 군데쯤은

여전히 늪에 잠겨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주 조금씩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뿐이다


아 그리고 쇼핑도 많이 했는데

쇼핑을 할수록

내 중심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원하는 제품을 검색할수록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기나 할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싫었다면

지금은 이런 나조차 좋아졌다는 게

달라진 거라면 달라진 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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