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의 번역가는 오직 나 뿐이다
고3때 중국어과를 택하면서 고민했던 건 중국어가 '남의 언어'라는 점이었다.
20대의 몇 년간을 '남의 언어' 배우는 데 써도 되나? 싶었다.
중국어에 미쳐 있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긴 했다.
지금은 기껏 배운 중국어를 써먹지 않는다.
내가 백수가 될 때마다 주위에선
'중국어 할 줄 아는데 왜 취직 안해?'라고 묻는다.
이상하게 중국어를 가지고 취직하고 싶진 않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려나.
중국어과를 갓 졸업하고 번역을 할 때가 생각난다.
학교를 졸업하고 전전한 많은 일들 중에
그나마 가장 애정을 담아 열심히 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온 힘을 쏟아 문장을 고르고 고르다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남의 언어가 아닌가.'
중국어에, 다른 누군가가 쓴 글을, 한국어로 옮기는 '나'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중국어는 내가 좋아하는 언어였고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미련없이 놓아버릴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남의 언어'라는 생각 때문에,
말하자면 '나의 언어'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단 생각이 든다.
나의 언어는 무엇인가?
이제와서야 의문이 들었다.
한국어를 쓰고 중국어를 쓰고 영어를 쓰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나의 언어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방식으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본 적이 있었는지.
그래서 춤을 췄던 걸까.
나의 언어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몸부림 치던 시간들 속에서.
이제 그 춤을 언어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도 언어가 되어본 적 없었던 것들에게
언어라는 옷을 입혀주고 싶다.
나는 기꺼이 나 자신의 유일한 번역가가 되어줘야 한다.
나에게는 창작 역시 번역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나'라는 원문이 존재하는 한, 예전처럼 방황하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