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구해보겠습니다 2

시드니에서 집 구하기

by 사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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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구할 때 소개글에 이런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다 패스한다.

warm, kind, friendly, welcome.

'가족같은 회사'가 정말 가족 같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dry한 게 좋다. 물론 dry라고 써 놓은 한 군데도 없었지만.


오늘 처음 본 집은 공원 바로 앞이고 집도 꽤 넓어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엘리베이터 없이 30kg 캐리어를 옮길 수 없다. 두번 째로 본 집은 여태까지 본 집 중에 가장 깨긋했다. 값도 저렴하고 위치도 괜찮아서 거기로 하고 싶었는데 방세를 오직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며 영수증이나 계약서도 줄 수 없다고 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도 별 문제 없어요."

여자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겁쟁이라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영수증도 계약서도 없다니.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집 괜찮았는데.....


그 다음 집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마스터와 대화가 잘 안통했다. 그의 영어 발음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서로 할 말만 반복하다가 지쳐서 헤어졌다. 네 번째 집에서는 기분 나쁜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와 대화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매우 불쾌해져서 그 집에 들어갈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았다. 마지막 인스펙션(*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것)을 위해 대기하는 동안 빌고 빌었다. 제발 괜찮은 집이길. 이제는 결정할 수 있길. 더 이상 집을 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네 번째 집에서 너무 불쾌했기에 그에 대한 반사 작용인지 다섯 번째 집주인이 천사처럼 느껴졌다.

"처음 시드니에 오면 얼마나 힘든지 저도 잘 아니까요. 꼭 이 집에 살게 되지 않더라도 제 번호로 궁금한 것들 물어보세요."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들을 묻게 되었다. 호주에서 택배는 어떻게 받는지, TFN이나 RSA는 어떻게 발급 받는지,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죄다 꺼내놓게 되었다. 집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사람이랑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다른 곳에 살며 이 집은 쉐어만 해준다고 했다.

"호주에 친구 없어요?"

"없죠."

"아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왔어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오긴요, 그냥 왔지요.


집이 엄청 맘에 든 건 아니었지만 위치도 괜찮고 다른 조건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집을 더 보러 다닐 기력이 없었기에 다섯 번째 본 집에서 살기로 했다. 엄마가 집 구했냐고 묻길래 '집주인이 착한 것 같아'라고 했더니 착한지 어떻게 아냐고 너무 믿지 말라고 했다. 그렇구나. 믿으면 안되는구나.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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